[뉴스토마토 신유미 기자]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닷새째 이어지는 투표지 부족 사태 시위를 두고 경찰의 소극적 대응과 무대책 논란도 커지고 있습니다. 일부 참가자들이 공원 내 경기장 출입구를 둘러싸고 시민과 출입자들의 짐을 뒤지거나 이동을 막는가 하면 물리적 폭력까지 행사하지만 경찰은 속수무책인 겁니다. 경찰은 '이번 시위는 주최자가 없는 다중 운집'이라는 이유를 들어 질서 유지에만 집중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러는 사이 현장에선 '집회의 자유'를 넘어선 '방종'에 가까운 행태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9일 경찰 등에 따르면,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서 연일 이어지는 시위에선 시민 불편과 위법행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지난 5일 오후부터 9회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계기로 모인 참가자들이 부정선거 진상규명과 재선거 실시를 요구하며 집결 중입니다.
잠실 봉쇄 시위대, 소지품 검사·폭력행위 등 잇따라
현장에선 일부 참가자들이 경기장 출입구를 둘러싸고 출입자를 상대로 신분을 캐묻거나 가방을 열어 짐을 뒤지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목격됐습니다. 이들은 시위 참가자 가운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나 외부 세력(진보 계열 학생단체인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 섞여 있을 수 있으니 현장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적 권한이 없는 민간인이 공공시설 통제권을 행사하려는 황당한 모습입니다.
전날(8일) 오전엔 핸드볼 유소년 국가대표 선수 6명이 경기장에서 훈련용품을 가져가려고 했다가 봉변을 당했습니다. 일부 시위 참가자들이 선수 신분을 확인하겠다며 이들을 막아섰고, 투표용지 확인을 빌미로 선수들의 가방과 비닐백을 검사하기도 했습니다.
여자주니어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들이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내부에 보관 중인 훈련 장비를 가지고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위 참가자들이 외신 기자를 둘러싸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같은 날 오후 중국어를 사용하는 듯 보이는 외신 기자 주변으로 참가자 20여명이 몰려오더니 "중국인 아니냐", "위장 취재 아니냐"라면서 신분 확인을 요구했습니다. 참가자들은 해당 기자로부터 대만 소속이라는 설명을 들은 뒤에야 길을 터줬습니다.
지난 5일에도 한 국내 방송사 여기자에 대한 폭행이 벌어진 바 있습니다. 해당 방송사는 폭행에 가담하는 자들을 대상으로 법적 조치에 나섰습니다.
불법 촬영 사건도 있었습니다. 송파경찰서는 8일 올림픽공원 개표소 인근에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남성 A씨를 현행범 체포하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입니다.
이 밖에도 현장에선 참가자들이 의심 대상이라고 판단한 인물을 에워싼 채 신분을 밝히라고 강요하며 사실상 이동을 제약하는 장면이 수시로 일어났습니다. 이렇다 보니 게임사 넥슨은 애초 핸드볼경기장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던 메이플스토리 여름 쇼케이스 'OVERDRIVE'의 장소를 고양 킨텍스로 급히 변경했을 정도입니다.
경찰 “시위 아닌 다중운집으로 파악 중”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출입구 앞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경찰은 시위 참가자들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제지하기는커녕 이런 상황을 난감한 표정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물리적 폭력과 충돌 등 사건·사고가 벌어졌을 때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법을 집행하기보다는 질서 유지에 초점을 맞추는 모양새입니다.
경찰은 '불법 미신고 집회를 방치한다'는 지적에 대선 "현장은 주최자가 특정되지 않은 다중 운집 상황으로 파악한다"고 했습니다. 송파경찰서 관계자는 "주최자가 없는 만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따른 시위로 보기 어렵고, 이에 따라 신고 사유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경기장 무단 봉쇄 논란에 대해선 "시설 자체가 잠겨 있는 상태여서 점거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무단 소지품 검사에 관해선 "개인 간에 발생하는 돌발 행동까지 경찰이 모두 통제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무법·불법에 가까운 상황이지만, 사실상 사태를 방관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법조계는 시위 참가자들의 일부 행위는 법적으로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주최자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다수가 위력을 행사해 공공시설 출입을 방해하거나 특정인의 이동을 제한한다면 형법상 업무방해나 감금,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특히 시위 참가자들의 폭력은 경찰을 향해서도 나타나고 있어서 경찰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습니다.
시위 참가자들은 경찰을 향해서도 '중국 공안'이라며 신분 공개를 요구하거나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벗으라고 강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은 5명이 경상을 입었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엔 경찰의 얼굴과 신원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청 내부 법률 상담 창구인 현장 법률365를 통해 대응방안을 안내하고, 경찰관 개인이 소송을 원한다면 소송 지원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울러 경찰청은 이날 공지를 통해 "경찰은 헌법상 기본권에 해당하는 정당한 의사 표현은 최대한 존중하고 적극 보호하되, 시민, 기자, 경찰·소방 등을 대상으로 한 폭행·명예훼손·강요 등 명백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조치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신유미 기자 yumix@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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