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앙 한 쌍이 서울 창경궁 춘당지에서 짝짓기를 하고 있다.
온 산하가 울긋불긋 단풍색으로 물들 무렵, 저는 하천이나 호수가에 갑니다. 무리를 지어 겨울을 나려는 국가자연유산 327호인 원앙(Mandarin Duck)을 만나는 행운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원앙은 우리나라에서 번식하는 개체수도 있지만,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번식한 무리들이 추위를 피해 떼 지어 날아옵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시집가는 딸에게 가정의 화목을 기원하며 정성스럽게 만든 원앙 목각과 원앙을 수놓은 베개를 건네주는 풍습이 있지요. 이는 중국 한빙부부(韓憑夫婦)의 설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후한 시대에 쓰인 『수신기(搜神記)』에는 ‘초나라 시절 한빙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 죽어서 원앙 형상으로 재현된 원앙목’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금슬 좋은 한빙의 아내 장원을 초왕이 탐하려 했지만, 이들 부부는 죽음으로 거절했고, 그 무덤에서 나무가 자라 원앙의 형상으로 서로 이어졌다고 하지요.
원앙이 부부 금슬의 상징이 된 이유는 오리과 새 중에서도 자태가 가장 아름답고, 한 쌍의 사랑놀음이 평화롭게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수컷 원앙은 ‘순 바람둥이’랍니다. 암수가 늘 함께 다니니 사람들 눈에는 부부 금슬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번식기에 짝짓기를 마친 수컷은 다른 암컷을 쫓아다니지요. 나무 구멍에 둥지를 튼 암컷은 10개가 넘는 알을 혼자서 품으며, 부화한 새끼들을 홀로 양육합니다. 마지막 새끼가 부화하면, 새끼들은 비교적 한적한 밤에 비좁은 나무 구멍에서 하나씩 뛰어내려 엄마를 따라 물가로 이동합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하천에서 어미를 따라 유영하며, 암컷 어미는 새끼들에게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5~6월이면 10마리가 넘는 병아리 원앙들이 엄마를 따라 하천가를 유영하며 먹이를 먹고, 때로는 어미 곁에서 옹기종기 모여 꿀잠을 자는 모습이 평화롭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가을까지 최종적으로 살아남는 새끼는 4~5마리 정도입니다. 대부분 들고양이 등 포식자에게 희생되거나 먹이 부족으로 도태되지요.
원앙은 몸길이 약 41~49cm, 날개 폭 65~75cm 정도의 수면성 중형 오리입니다. 수컷은 무지갯빛 깃털, 옆구리의 부챗살 같은 깃, 붉은 부리와 눈 주위의 흰 테두리 등으로 화려하지만, 암컷은 갈색빛 위장색으로 차분해 보입니다.
원앙 암컷이 수컷 곁에서 날갯짓을 하고 있다.
번식기가 지나면 화려한 수컷의 깃털은 암컷과 비슷한 색으로 바뀝니다. 번식기가 아니기 때문에 암컷을 유혹할 필요보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위장색으로 변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지요. 잡식성인 원앙은 곤충, 연체동물, 작은 수생식물과 씨앗 등을 섭취합니다. 따라서 이들이 많은 습지·하천의 가장자리, 숲속 연못 주변에 서식합니다.
물갈퀴를 가진 오리류로서는 드물게 원앙은 나무에 앉을 수 있고, 느티나무 구멍을 둥지로 선호합니다. 하천이 가깝고 도토리가 많은 충남 금강, 충북 남한강 주변에 비교적 개체수가 많으며, 한겨울에는 제주도까지 이동하기도 합니다. 여름철까지는 가족 단위로 생활하다가, 낮 길이가 짧아지면 소규모 무리를 형성합니다. 겨울철에는 떼 지어 집단생활을 하고, 북쪽에서 남하하는 개체수가 많기 때문에 사람이 비교적 쉽게 원앙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서울 중랑천, 팔당댐 하류 등 한강에서도 집단 월동한 적이 있답니다.
2018년 10월 초,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 내 작은 호수에 동북아시아에 서식하는 원앙 수컷이 나타나 큰 화제를 일으킨 일이 있었습니다. 뉴스와 SNS를 통해 화려한 깃털의 원앙 사진이 퍼지자,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왔지만 이 원앙은 이듬해 봄 이후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네요. 아마 길을 잃은 철새이거나, 인근 동물원 혹은 개인이 기르던 새가 탈출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세계의 조류 수집가들이 사육하거나 사육을 원한다는 새가 바로 원앙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원앙은 멸종위기종은 아니더라도 국가자연유산(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개인이 사육하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전 세계 원앙의 야생 개체수는 약 6만 5000마리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서도 원앙을 멸종위기종이 아닌 ‘관심 대상종(LC)’으로 분류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개체수가 크게 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선호하는 참나무류 혼성림과 맑은 하천이 점차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태적인 위협은 크지 않더라도, 오랜 설화와 전통 속에서 부부 금슬의 상징으로 여겨온 아름다운 새 원앙이 우리 산하 곳곳에 둥지를 틀고, 2세들이 안전하게 자라 개체수가 더욱 풍성해지기를 바랍니다.
글,사진=김연수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wildik02@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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