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한동인·차철우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현지시간) '중국 인민 항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대회(열병식)에 참석해 '북·중·러 밀착' 행보를 보이면서 이재명정부의 남·북·미 대화 로드맵 구상이 초반부터 꼬이는 분위기입니다. 북·중·러 정상이 사실상 반미 연대를 과시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으로서도 외교적으로 보폭을 넓히기가 어려운 상황인데요.
다만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전승절에 참가한 것을 두고 미국과의 대화 재개를 내다보고 중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한 행보란 해석도 나옵니다. 김 위원장이 북·미 간 중국의 중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중국 방문에 나선 것이란 분석인데요. '한·미·일 대 북·중·러' 신냉전 구도가 공고해지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실용 외교가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북·미 대화 염두에 둔 김정은…위상 높여 미 태도 변화 '유인'
3일 오전 9시(현지시간)부터 진행된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부터 열병식으로 까지 이어진 중국 중심의 '반미 연대' 결속의 영향인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미국이 중국에 제공한 막대한 양의 지원과 '피'에 대해 답변해야 한다"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직격했습니다. 그는 "중국이 승리와 영광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미국인이 죽었다"며 "나는 그들이 그들의 용기와 희생 덕분에 정당하게 예우받고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꼬집었습니다.
특히 중국 중심으로 흘러가는 '반미 연대'의 축으로 함께한 북한과 러시아에 대해서도 압박 수위를 높였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대항할 공모를 하는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에게 나의 가장 따뜻한 안부 인사를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에 '반미 연대'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를 낸 것으로 해석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전 부터 김정은 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했으며, 지난달 25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의 '페이스 메이커' 발언에 미소로 화답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노골적인 '친중·친러 행보'를 보이면서 반미 연대에 결속하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 겁니다.
결국 신냉전으로 접어드는 현시점에서 북·미 대화 가능성은 희박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한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도 동시에 하락했습니다.
다만 김 위원장이 2018년과 2019년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방중 일정을 소화했다는 점에서, 지켜볼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실제로 국가정보원은 지난 2일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회의에서 북한이 북·미 대화를 염두에 두고 미국의 태도 변화를 유인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정책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복잡해진 북·미 중재…이 대통령 첫 시험대 '유엔총회'
이에 따라 이번 북·중·러 정상의 조우는 이 대통령의 실용 외교 시험대로 여겨집니다. 회담 등 결과에 따라 남북 관계, 북·미 대화 등 모든 사안에 영향이 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북한과 관계 개선에 힘써왔지만 북한은 지난 2023년 12월부터 한국을 적대적 국가로 규정, 모든 대화를 단절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취임 직후 대북 방송 중단 등 조치를 취했음에도 북한은 여전히 대화 의사가 없습니다. 중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힘쓰고 있지만 현재까지 이 대통령과 시 주석의 직접적 교류는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 경쟁은 날로 심화하고 있습니다.
반면 대통령실은 당장은 북·중·러 정상의 만남에 대해 평가를 유보했습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북·중·러 정상 만남에 대해) 예의 주시를 하고 있다"면서도 "특별한 평가가 없다"고 전했습니다.
한국 외교 공간은 북·중·러 연대와 한·미·일 공조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일 전망인데요. 한국은 남북 관계와 북·미 협상의 직접적 이해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북한이 방중을 통해 '전략적 다자외교'에 나선 만큼 한국 역시 전략적 공간을 마련할 해법이 필요해 보입니다.
특히 이 대통령의 다자외교 시험대는 오는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제80차 유엔(UN) 총회가 될 전망입니다. 이 대통령은 총회 기조연설에 나서며 민주주의 회복과 더불어 한반도 문제에 대해 언급할 예정입니다. 이후 두 번째 한·미 정상회담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까지 포함한 한·미·일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북·중·러 밀착에 대응격으로, 한·미·일 공조를 심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앞서 이 대통령은 한·미·일 공조 강화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북·중·러와 소통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재명식 실용 외교'가 단순한 균형론에 머물지, 국익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곧 판가름 날 전망입니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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