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정 거버넌스 2시간 전

아이는 학교에 맞춰지지 않는다: A.S. 닐과 서머힐이 던지는 교육의 경고

“우리는 이 세상 도처에서 다듬어지고 훈련되고 억압된 어린이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마음에 들지도 않는 어떤 학교의 의자에 앉아 있다가 커서는 어떤 회사의 마음에 들지 않는 책상에 앉아 있게 된다. 이런 어린이는 다루기가 쉽고 권위에 순종하고, 비판을 두려워하고, 거의 맹신적으로 형식적이고 정확하기를 원한다. 그는 자기의 모든 콤플렉스나 분노, 좌절감 등을 후에 자기 자녀들에게 발산시키려고 한다.” -서머힐

"학교가 아이에게 맞추어야 하는가, 아니면 아이가 학교에 맞춰져야 하는가?"

1921년, 그가 설립한 대안학교 '서머힐(Summerhill School)'은 이 단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치열한 입시 경쟁과 정형화된 규율 속에 아이들을 밀어 넣고 있는 한국 사회는 이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선뜻 답을 내놓지 못한다.

서머힐의 핵심은 간단하다. 아이 본연의 자연스러운 성장 속도와 행복을 최우선으로 두는 것이다. 서머힐에서는 수업 출석조차 강요되지 않는다. 놀고 싶은 만큼 충분히 놀고 난 아이가 스스로 배움의 필요성을 느낄 때 비로소 진정한 학습이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특히 눈여겨볼 점은 예술교육을 통한 정서적 해방이다.

서머힐에는 정해진 미술·음악 수업이나 점수를 매기는 기교 훈련이 없다. 대신 연극 무대, 목공실, 미술 공방 등 자유로운 창작 공간이 상시 개방되어 있다. 아이들은 대본 작성부터 연출까지 스스로 주도하는 연극과 다양한 예술 활동에 몰입하며 억압된 감정을 해방하고 창의성을 발현한다.

닐에게 예술은 평가받는 과목이 아니라, 아이의 내면을 치유하고 자아를 확립하는 강력한 매개체였다.

그렇다고 서머힐이 무질서한 방종의 공간인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을 선택할 자유'를 주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명확한 한계를 배운다.

매주 열리는 전교 회의에서는 교장이나 어린 학생이나 모두 대등한 '1인 1표'의 의결권을 행사하며, 스스로 정한 규칙을 지키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몸소 체득한다.

이 파격적인 시도는 지난 세기 동안 세계 대안교육 운동의 기폭제가 되었고, 아동을 통제의 대상이 아닌 '완전한 주권을 가진 인격체'로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어냈다.

오늘날, 성적과 효율만을 좇다 아이들의 내재적 동기를 일찍이 고갈시켜 버리는 한국 교육계에 서머힐의 메시지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1. 배움의 주도권과 창의성 회복: 촘촘한 학원 스케줄과 주입식 교육에 갇힌 아이들에게 감정을 발현하고 스스로 창작해 보는 예술적·정서적 여백을 되찾아주어야 한다.

  2. 실질적인 민주주의 경험: 형식적인 자치 활동을 넘어 교사와 학생이 대등하게 소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통해 진정한 시민의식을 키워야 한다.

  3. 다원적 가치의 존중: 단 하나의 서열화된 잣대로 아이들을 평가하는 일을 멈추고, 개개인의 결이 다른 재능을 인정해야 한다.

"행복한 낙제생이 불행한 학자보다 낫다"라는 A.S. 닐의 경구는 오늘날 우리 교육을 아프게 지목한다.

이제는 아이들을 틀에 맞추려 압박하기보다, 스스로 배움의 기쁨을 찾고 자율적인 인격체로 설 수 있도록 교육의 판을 넓혀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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