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 걷혔다”…재계, 미래는 ‘암울’
관세 협상 ‘극적 타결’에 재계 ‘안도’
“서로 명분 살리고 대의 취한 협상”
FTA 붕괴·산업 공동화…험난한 앞날
“미 보호주의 끌려가…경쟁력 약화”
2025-07-31 15:28:57 2025-08-01 10:04:17
 
[뉴스토마토 배덕훈·박창욱 기자] 관세 발효 시한을 하루 앞두고 한국과 미국이 상호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기로 극적 타결하자 재계는 불확실성이 걷혔다며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특히 대미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이 관세 시한을 넘겨 고관세 직격탄을 맞을 경우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클 것이란 목소리가 높았던 상황에서 이러한 후폭풍을 비껴간 것만 해도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다만, 이번 상호관세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사실상 붕괴됐다는 점과 관세 인하 조건으로 붙은 3500억달러(486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로 국내 산업 공동화 우려가 여전한 점 등 남은 과제도 만만치 않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국과 미국의 관세 협상이 타결된 31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31일 대통령실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한국이 미국에 3500억달러를 투자하는 등의 조건으로 상호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 관세도 15%로 낮췄고, 추후에 발표가 예고된 반도체·의약품 등 품목 관세에서도 최혜국 대우를 받기로 했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설명입니다
 
이날 이재명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의 협상은 국민주권정부의 첫 통상 분야 과제로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밝혔습니다
 
상호관세 발효 시한을 하루 앞두고 극적 타결이 이뤄지자 재계에서는 안도하는 분위기가 역력합니다. 특히 각 분야 셈법이 복잡한 만큼 이해득실 따지기에 분주한 가운데, 경영 환경의 가장 큰 위협인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옵니다. 재계 관계자는 관세율을 보다 낮췄으면 더 좋았겠지만, 정부 입장에서도 쉽지 않았을 것이기에 선방한 협상으로 본다특히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점만 보더라도 기업 입장에서는 큰 도움이라고 했습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25%의 관세를 그대로 맞으면 국내 산업은 완전히 무너질 수밖에 없기에 중장기적으로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책이라고 보고 협상한 것 같다서로 명분을 살리면서 대의를 취하는 거래의 기술을 통해 협상을 잘했다고 본다고 했습니다
 
7일 경기도 평택항에 철강 제품이 쌓여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경제 6단체도 논평을 통해 환영의 입장을 나타냈습니다경제 6단체는 이번 합의는 수출 환경 불확실성 해소는 물론 우리 기업들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주요국과 같거나 더 좋은 조건에서 경쟁하는 여건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며 우리가 강점을 가진 제조 경쟁력과 미국의 혁신 역량시장을 결합해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이고 수출 시장을 크게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남은 과제 산적…갈 길 먼 경제계
 
다만 50%로 고정된 철강 분야의 품목별 관세가 인하되지 못한 것은 여전한 과제로 남아 관련 산업 전반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불황에 관세까지 겹악재로 신음하는 상황에서 정부 협상에 기대를 걸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결론 나자 우려의 목소리가 큽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현재 고부가가치 제품은 그나마 수요가 있지만 범용 제품은 사실상 수출이 막힌 상황”이라며 이번 협상에서 품목별 관세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점에 대해 아쉽고 향후 추가 협상이 적극적으로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또한 이번 협상 타결로 관세를 낮추긴 했지만 사실상 FTA가 무력화됐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입니다. 한미 양국은 그동안 FTA에 따라 대부분의 상품을 무관세로 교역해왔는데, 15%나 되는 관세가 부과되면서 한국에 실질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까닭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지난 2012년 한미 FTA 발효 이후 10년간 양국 간 상품 무역액은 68% 증가했고, 한국의 대미 투자는 3배 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상호관세를 계기로 FTA가 사실상 반쪽 협정으로 전락해 향후 수출 위축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관세 협상 브리핑에서 “FTA라는 것이 상당히 많이 흔들리고 각 나라의 협상도 세계무역기구(WTO) FTA 체제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아쉬운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3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관련 브리핑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했고 이것을 우리 정부가 인정한 것으로 이는 한미 FTA의 붕괴라도 봐도 무방하다며 “FTA 붕괴는 가격 경쟁력 상실로 이어지고 기업은 경비 절감이윤 축소가격 인상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고 지적했습니다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도 이번 협상은 외형적으로는 선방한 측면이 있으나실질적으로는 FTA 체제 내에서의 전략적 후퇴로 평가할 수 있다며 일부 민감 품목에서 미국의 자국 산업 보호주의 요구에 끌려가는 모양새를 보이며향후 우리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고 짚었습니다
 
아울러 관세 인하 조건으로 붙은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역시 재계의 험난한 미래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분석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3년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 규모는 총 215억달러로 대만을 제치고 이미 미국의 최대 투자국으로 부상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경제가 3500억달러 규모의 막대한 투자 이행을 할 여력도 마땅치 않은 데다, 대미 투자 강화는 필연적으로 국내 투자 약화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산업 공동화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3500억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는 국내 산업 기반 약화 및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특히 조선업계의 경우 수백개의 하청업체가 존재하는데 이를 유지하는 대기업이 미국으로 빠져나가면 하청업체가 줄도산하고 이에 따른 산업 공동화가 우려된다고 내다봤습니다. 그러면서 미국 시장의 중요성과 기업 생존을 고려할 때 국내 투자 여건이 우호적이지 않아 기업들이 미국 투자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국내 투자 여력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이를 막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기업의 이익을 지켜줄 수 있는 각종 정책과 의견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배덕훈·박창욱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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