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금융기관 지배구조 '빨간불'…낙하산 인사·임원 다양성 부족
기관장 장기 공석, 정책금융 실행력 저해
이사회 독립성 위협하는 비상임이사 거수기화
"임명은 투명하게, 부적격은 평가 통해 해임해야"
2025-08-22 15:30:52 2025-08-22 16:05:35
[뉴스토마토 이지우 기자] 정책금융기관의 지배구조는 법적 틀 안에서 자율성과 책임성을 보장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공공기관운영법은 기관장과 임원의 임명 절차, 이사회 및 감사위원회 운영, 주요 경영사항 공시 의무 등을 규정해 경영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기관장이 장기간 공석이거나 낙하산 인사 관행이 반복되며 의사결정 공백과 전문성 부족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대부분 기관장이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비상임이사의 역할도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여성 임원 비율 또한 낮아 양성 평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로 인해 기관 전반의 책임성과 투명성 확보에 어려움이 있어 지배구조 제도의 보완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는 22일 주요 정책금융기관 13곳의 지배구조를 분석하며 기관장·임원 인사, 내부통제 기능, 이사회 운영, 여성 임원 현황, 청렴도 평가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봤습니다. 
 
수장 공석 장기화…정책 집행력 저하 우려
 
(그래픽=뉴스토마토)
 
가장 큰 문제는 주요 정책금융기관의 수장이 장기간 공석인 경우가 많아 조직 내 의사결정 공백과 공공서비스 차질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산업은행은 강석훈 전 회장이 지난 6월 퇴임한 후 현재까지 회장 자리가 공석입니다. 윤희성 전 한국수출입은행장도 7월 임기를 마친 후 후임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두 은행 모두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산업은행장은 금융위원장의 제청을, 수출입은행장은 기획재정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 있어 금융당국 개편이 먼저 마무리돼야 합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지난 13일 임명됐지만,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예산·재정 개편과 경제 현안 대응에 집중하면서 정책금융기관 인사 결정은 상대적으로 뒤로 밀려 있는 상황입니다. 금융위원회의 정책과 감독 기능 분리를 둘러싼 조직 개편 논의가 길어지고 있는 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공백이 길어질수록 새 정부 정책금융의 실행력 저하와 현장 대응 지연은 불가피합니다. 당장 조 단위 기금들의 자금을 집행해야 하는 상황인데요. 지난 7월 국회 정무위원회는 100조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 설치와 산업은행 법정자본금을 30조원에서 45조원으로 확대하는 산업은행법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수출입은행 역시 지난해 2월 법정자본금을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증액했고, 운용 중인 공급망안정화기금의 기능도 확대되고 있어 정책금융을 이끌 핵심 기관장 선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사장 자리도 공석입니다. 유병태 전 HUG 사장은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2년 연속 '미흡(D)' 등급을 받아 해임 건의 대상에 오른 뒤 지난 6월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이 밖에도 주요 기관장의 임기 만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최원목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8월28일, 김성태 중소기업은행장은 내년 1월 초 임기가 끝날 예정입니다. 김종호 기술보증기금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임기가 끝났음에도 후임이 없어 여전히 현직입니다. 
 
낙하산·보은 인사 논란 반복…전문성 부족 지적
 
강석훈 전 한국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강 전 회장은 6월 퇴임했으며, 현재 산업은행 회장직은 공석이다. (사진=뉴시스)
 
인사 지연과 함께 낙하산 논란도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지난 정부에서 산업은행은 대통령 측근이나 보은 인사 의혹이, 수출입은행은 기재부 출신 낙하산 인사 논란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산업은행은 내부 출신이 단 한 번도 회장에 오른 적이 없으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선 캠프 출신 등이 회장직을 맡아 전문성 부족과 코드 인사 지적이 계속됐습니다. 
 
신보 역시 올해 인사를 둘러싸고 잡음이 있었습니다. 금융산업노조 신보지부는 지난 5월 논평을 통해 새로 임명된 상임이사에 대해 "금융위 출신으로 정책금융 경험과 자질에 의문이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다른 상임이사에 대해서는 "내부 출신 보은 인사로, 과거 갑질 논란이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신보 노동조합 관계자는 "앞으로 낙하산이나 보은 인사로 인한 갈등을 막으려면 직원과의 소통과 내부 검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내부통제 문제도 지속되고 있는데요. 산업은행 2024년도 연간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하반기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부실여신 관련 징계 1건, 주의 22건, 유의 3건, 개선 1건, 의견 통보 5건이 발생했습니다. 2024년 하반기에도 주의 11건, 유의 2건, 인사자료 통보 5건, 의견 통보 7건이 보고됐습니다. 주의 내용 중에는 대여금 검토 미흡, 인사 자료 통보 중에는 여신 심사 업무 태만 건도 포함됐습니다. 
 
기업은행(024110)도 심각한 내부통제 실패를 드러냈습니다. 기업은행은 올해 1월 239억5000만원 규모의 업무상 배임 사건이 발생했다고 공시했으며,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전·현직 직원 다수가 연루된 882억원 규모의 부당대출이 적발됐습니다. 
 
비상임이사 거수기화…이사회 독립성 확보 과제
 
정책금융기관 비상임이사의 실질적 역할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에 따르면, 13개 정책금융기관이 올해 1~8월간 개최한 112회의 이사회에서 상정된 안건은 모두 원안대로 통과됐습니다. 비상임이사가 참여한 안건 316건 중 반대 의견이 나온 경우는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이는 비상임이사가 사실상 거수기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을 뒷받침합니다. 
 
이사회가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데에는 제도적 한계가 있습니다. 공운법은 시장형 공기업이나 자산 2조원 이상 준시장형 공기업의 경우, 선임비상임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아 기관장과 의사결정 권한을 분리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사 대상 13곳 중 이 기준이 적용되는 곳은 HUG가 유일합니다. HUG는 심오택 선임비상임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으며, 임기가 올해 3월 종료됐지만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아 현재 유임 중입니다. 
 
반면 자산규모가 2조원 미만인 준시장형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기관장이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게 됩니다. 한국무역보험공사·기보·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한국주택금융공사·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신보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기타공공기관의 경우 공운법의 이사회 구성 규정이나 공공기관운영위원회 관련 조항이 법적 강제가 아니며, 설립 근거법에 따라 운영됩니다.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한국벤처투자·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한국해양진흥공사가 이에 속합니다. 결국 대부분의 정책금융기관은 자산 규모나 공운법 적용 여부로 인해 이사회 의장과 기관장이 분리되지 않아 실질적인 이사회 독립성이 제약되고 있습니다. 
 
여성 임원 부족·청렴도 하락…지배구조 개선 시급
 
(그래픽=뉴스토마토)
 
정책금융기관의 임원 성비 불균형은 성평등 측면에서 여전히 큰 문제로 지적됩니다. 13개 정책금융기관 가운데 여성 기관장은 한 곳도 없습니다. 공운법 제24조의2는 '공공기관은 양성 평등 실현을 위한 임원 임명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공기업·준정부기관 경영지침 제43조는 임원 중 여성 비율이 정수의 20% 이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올해 2분기 말 기준으로 국책은행 3곳과 무보, 한벤투, HUG, 주금공에는 여성 임원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특히 국책은행의 경우 전체 여성 임직원 비율이 산업은행 39%, 기업은행 51%, 수출입은행 44%로 40%가량 이상인데도, 여성 임원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유리 천장' 문제가 심각함을 알 수 있습니다. 
 
여성 임원이 있는 기관들도 대부분 비상임임원입니다. 신보 여성 임원 2명 중 1명이 비상임임원이며, 기보와 중진공의 여성 임원 각각 3명, 해진공과 KIND의 여성 임원은 각각 1명으로 모두 비상임임원입니다. 캠코는 여성 상임임원 1명을 두고 있습니다. 이는 여성 임원의 수가 양적으로 적을 뿐 아니라 실질적인 의사결정 참여와 경영 권한 측면에서도 한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청렴도 평가에서도 개선 과제가 드러났습니다. 2024년도 종합 청렴도 결과에 따르면 기업은행·신보·기보·무보·주금공이 2등급, 산업은행·중진공이 3등급, 수출입은행·캠코가 4등급을 기록했습니다. 1등급 기관은 없었으며, 산업은행과 캠코는 전년보다 1등급 낮아졌고, 수출입은행은 2등급 하락했습니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권익위 제도 개선 권고 과제 중 상당수가 직원 복리후생 관련 노사 합의 사항으로, 최종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감점과 등급 하락의 주요 원인이 됐다"며 "올해는 교육과 청렴 시책을 적극 시행하고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정책금융기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공공기관장 임명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고, 부적격 인사에 대해서는 경영평가를 통해 적극 해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고유의 공공기관장 임명권은 제한하기 어렵지만, 부적격 인사가 임명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며 "임명 과정에서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정책 검증과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 절차를 투명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경영평가를 통해 부적격 기관장을 해임하고 부적격 기관장 임명에 동의한 공운위원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서재익 한국ESG위원회 회장은 "전통적 관행과 이너서클 구조로 인해 공공기관 인사가 특정 관료 조직이나 정당인에 치우치고 있다"며 "전문가 풀을 만들어 시스템적으로 임명 절차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정재호 K-정책금융연구소장은 두 가지가 급선무가 돼야 한다면서 "첫째, 기관 평가의 핵심은 KPI(핵심평가지표)인데 모든 정책금융기관과 67개 기금운용기관은 기술 기반 중·벤·스를 성장·발전시키는 것을 중심으로 재구조화하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여성 임원 수를 비상임이사까지 포함해 집계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밖에 아니다. 실제 일을 하는 본부장급 이상(흔히들 집행간부라고 칭함) 직원들을 따져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지우 기자 jw@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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