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연속 OECD 자살률 1위를 기록한 한국의 자살률. 2022년 기준 한국 23.2명으로 OECD 평균 10.7명의 두배 이상이다. (사진=OECD 홈페이지 화면 캡처)
[뉴스토마토 임삼진 객원기자] 정부가 12일 ‘2025 국가자살예방전략’을 발표하며 5년 내 자살 사망자 1만명 이하, 2034년 자살률 17.0명(인구 10만명당) 달성이라는 수치를 제시했습니다.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는 범정부 자살대책추진본부를 신설하고, 각 지방자치단체에 자살예방관을 지정하는 등 책임성을 높여 실행력을 강화한다는 구상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숫자는 제시됐으나 과거 국가 계획이 번번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던 구조적 한계를 얼마나 극복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합니다.
목표·조직·예산, ‘양적 확장’ 전면에
이번 국가자살예방전략은 현재 28.3명인 자살률을 2029년 19.4명, 2034년 17.0명 이하로 낮추고, 5년 내 연간 자살 사망자 수를 1만명 이하로 줄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위해 국무총리 주재 자살예방정책위원회를 상위 컨트롤타워로 두고, 부처 합동 범정부 자살대책추진본부를 새로 만들 방침입니다.
응급실 내원 자살 시도자를 대상으로 정보 자동 연계 및 긴급 출동이 가능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며, 청소년·학생 대상 조기 발견과 교육청 협업도 강화합니다.
예산과 인력도 대폭 늘립니다. 내년도 자살 예방 관련 예산을 708억원(전년 대비 20% 이상 증가)으로 편성하고, 전국 자살예방센터의 센터당 인력을 5명 수준으로 확충합니다. 또 생명사랑 위기대응센터를 92개에서 98개로 확대하고, 자살 예방 홍보 예산도 13억원에서 24억원으로 증액합니다.
목표는 뚜렷하나 근거·구체성 부족
정부가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고, 여러 대책들을 모아 발표한 것은 언뜻 진일보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과거 정부에서도 늘 해온 것이고, 세부 감축 목표치가 빠진 치명적 약점은 달라진 게 없다”고 비판합니다. 안실련 이윤호 사무처장은 “WHO가 권고하는 근거 중심 정책과 달리 연령·지역·원인별 감축 수치가 없고, 장기적 원인 연구와 성과 측정을 위한 R&D 계획도 미흡하다”라며 “이전의 국가 계획이 목표 달성에 실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번 정부 발표에 달린 전략들이 백화점식 나열에 그쳤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부처 간 협의만으로 수립돼 복잡한 자살 원인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사회 각계 의견 수렴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기존 계획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고 공무원 중심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보건복지부가 여전히 정책 주도권을 갖고 있어 기존 틀이 거의 바뀌지 않았고, 정책이 복지부 행정에 머물러 부처 협업이 형식에 그칠 위험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 요구 무산 우려
특히 시민사회는 이번에 발표된 정부의 자살예방전략이 대통령 직속 자살대책위원회 설치 요구를 외면한 것은 아닌지 깊은 우려를 표시합니다. 그간 생명존중시민회의 등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국가 최고 책임자가 직접 주재하는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고 사회·경제 전 부문을 아우르는 대책이 가능하다고 강조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략에서 국무총리 산하에 범정부 본부 체계가 대안으로 제시되면서 “결국 대통령 직속 위원회 설치는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비판이 시민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고, 이에 따른 혐오의 확산도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지난 20년간 전년 대비 자살률이 치솟은 시기는 2009년(19.9%), 2018년(9.7%), 2023년(8.5%)입니다. 모두 정치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입니다. 최근 여야 대립과 사회 전반의 이념·세대 갈등이 깊어지며 정치적 혐오가 일상으로 스며드는 상황은 우려스럽습니다. 정책적 대책 못지않게 사회적 신뢰 회복과 갈등 완화가 자살을 막는 중요한 안전판이라는 것입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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