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최근 대법원은 근저당권을 설정한 행위가 사해행위라고 주장하면서 그 설정 계약의 취소 및 원상회복을 구한 사안에서 피고를 선의의 수익자로 판단하고 이와 다른 결론을 내린 원심을 깨고 의정부지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냈습니다. 일반적인 거래 관행과 어느 정도 다르다는 사정만으로 해당 거래가 이례적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본 겁니다.
서초동 대법원. (사진=뉴스토마토)
원고는 전남편과 이혼하면서 재산분할금 채권 중 약 3억2000만원을 지급받지 못했습니다. 전남편은 파주시 토지를 구입해 단독주택을 지으면서 피고인 수익자로부터 2억원을 빌리고, 그 토지와 주택에 채권 최고액을 2억4000만원으로 하는 근저당권 설정 계약을 체결한 후 피고에게 근저당권 설정 등기를 마쳐줬습니다. 이후 경매가 진행돼 피고는 약 1억5000만원을 배당받게 됐는데,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해 이 사건 근저당권 설정 계약의 취소 및 원상회복을 청구했고 피고는 자신이 선의의 수익자라고 항변한 겁니다.
1심과 2심은 원고의 전남편이 피고와 근저당권 설정 계약을 설정할 당시 전남편의 사해 의사를 인정하기 충분하다고 봤습니다. 이에 따라 피고의 악의는 추정되는데, 피고는 원고의 전남편이 이 사건 부동산의 전세권자에게 전세금을 반환하고 전세권 설정 등기를 말소한 후 그 차용금을 담보하기 위해 이 사건 근저당권 설정 등기를 마쳐준 것이므로 사해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1심과 2심 모두 피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원고의 전남편이 피고로부터 전세금 반환 명목으로 돈을 빌렸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봤습니다. 거래 과정에서의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할 때 통상적인 계약으로 볼 여지가 많다고 보고, 원고의 전남편이 피고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해주고 돈을 빌려 부동산을 처분하기 쉬운 현금으로 바꿔 일반 채권자의 공동담보를 감소시킨 행위로 판단한 겁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사해행위 취소 소송에서 사해행위임을 몰랐다는 사실은 수익자 자신이 증명해야 한다는 법리를 확인했습니다. 수익자의 선의 여부는 △채무자와 수익자의 관계 △사해행위를 구성하는 법률행위의 내용과 경위 또는 동기 △ 거래 조건이 정상적이고 이를 의심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으며 정상적인 거래 관계임을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있는지 △그 행위 이후의 정황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논리칙·경험칙에 비춰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 예시로, △수익자가 채무자의 재산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특수한 관계에 있지 않다는 점 △수익자와 채무자의 거래 관계가 정상적인 범위 내에 있고 수익자가 상당한 대가를 채무자에게 실제로 지급하는 등 현저히 비합리적이거나 이례적인 사정이 없다는 점 △수익자가 채무자로부터 물적 담보 제공을 받는 경우 수익자가 다른 일반 채권자에 우선해 만족을 얻기 위한 담보 제공이 아니라는 점 등을 수익자가 증명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익자의 선의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기준을 설시했습니다.
해당 거래 관계에 이르게 된 구체적인 경위나 거래 관계의 특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거래 조건 등이 일반적인 거래 관행과 어느 정도 다르다는 사정만으로 해당 거래 관계가 현저히 비합리적이거나 이례적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법리를 바탕으로, △피고가 원고의 전남편과 특수한 관계에 있지 않은 점 △이 사건 근저당권 설정 계약의 내용과 경위 등이 현저히 비합리적이거나 이례적이라고 볼 만한 사정이 없는 점 △피고는 원고의 전남편에게 신규 자금 2억원을 빌려주면서 같은 날 근저당권 설정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피고의 기존 채권에 관해 다른 채권자들에 우선해 만족을 얻기 위한 것으로 볼 만한 사정도 없는 점 △피고는 이 사건 각 부동산의 객관적인 담보가치가 충분하다고 인식하고 그 담보가액 범위 내의 돈을 빌려준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 보면, 피고가 선의의 수익자에 해당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해 원심을 깨고 돌려보낸 겁니다.
민법 제406조는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함을 알고 재산권을 목적으로 한 법률행위를 한 때에는 채권자는 그 취소 및 원상회복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때 피고는 그로 인해 이익을 받은 수익자나 전득자가 되는데, 수익자 등이 채권자를 해함을 알지 못하면 취소 및 원상회복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채무자의 사해 의사는 채권의 공동담보에 부족이 생기는 것을 인식하는 것을 말하고, 원칙적으로 채권자가 입증해야 합니다. 채무자의 악의가 입증되면 수익자 등의 악의는 추정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입니다.
따라서 사해행위 취소 소송의 피고가 되는 수익자나 전득자는 본인이 선의임을 입증해야 합니다. 이번 판결은 수익자 등의 선의 여부를 판단할 때, 일반적인 거래 관행과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구체적인 사정에 따라 좀 더 면밀하게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채무자의 악의가 입증됐더라도 수익자의 악의를 쉽게 추정하지 말고, 수익자가 주장하고 입증하는 여러 사정을 고려해 선의의 수익자로 판단된다면 그 수익자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본 겁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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