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한국수력원자력이 6월 체코 두코바니 원자력발전소 사업에 대한 본계약 체결 때 이사회 의결을 '패싱'한 걸로 확인됐습니다. 한수원은 '이사회는 필요할 경우 열고, 체코 계약은 규정상 이사회 의결·보고의무 대상이 아니다'라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2022년 이집트 엘다바 원전 수출 땐 이사회 의결이 있었던 걸로 드러났습니다. 한수원이 의도적으로 이사회 절차를 생략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체코 두코바니 5·6호기 원전수출은 한수원이 '주계약자'로서 참여해 사업의 전과정을 직접 책임지는 계약입니다. 규모는 26조원에 달합니다. 그런데 1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권향엽 민주당 의원이 한수원에서 보고받은 바에 따르면, 해당 계약엔 이상한 지점이 발견됩니다. 두코바니 원전수출을 위해 한수원은 지난 4월8일 사업심의위원회를 개최, '체코 두코바니 원전사업 (5·6호기) 안건'을 가결했고, 두 달 뒤인 6월4일 한수원과 발주사인 두코바니Ⅱ 원자력발전소(EDU Ⅱ)는 최종 본계약까지 체결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한수원이 사업심의위원회에서 최종입찰서가 가결된 뒤 이사회 의결 과정을 생략했다는 점입니다.
윤석열씨와 페트로 피알라 체코 총리가 지난해 9월20일(현지시간) 체코 플젠 산업단지 내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에서 열린 황주호 한수원 사장,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 다니엘 프로차스카 두산스코다파워 대표의 체코기업 터빈 두코바니 원전 공급 양해각서(MOU) 체결에 임석해 있다. (사진=뉴시스)
한수원에 따르면, 한수원이 해외사업을 추진하는 절차는 △타당성 분석과 입찰 참여 △리스크 검증위원회 의결 △사업심의위원회 의결 △이사회 의결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후 본계약을 맺기 전 사업 개요와 현황 등 관련 문서에 대해서 사전에 감사를 받고, 최종적으로 최고경영자(CEO)의 결재까지 통과해야 합니다. 체코 두코바니 원전수출 당시 한수원의 최종 결재권자는 황주호 사장(지난 9월17일 사의 표명)이었습니다.
한수원이 권향엽 의원에게 보고한 바에 따르면, 체코 원전수출과 관련해 한수원은 지난 2022년 11월 리스크 검증위원회를 열고 '체코 두코바니 원전사업(리스크검증)' 안건을 가결했습니다. 사업 참여 타당성 및 리스크 심의가 완료됐다는 의미입니다. 이후 지난 2023년 9월 사업심의위원회가 두코바니 원전 5호기에 대한 수정입찰서 안건을 승인했고, 올해 4월엔 원전 5·6호기에 대한 최종입찰서도 가결했습니다. 하지만 이사회는 개최되지 않았습니다. 한수원의 계약 관련 문건엔 이사회에 대해 괄호로 "필요시" 연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한수원 이사회 규정 제5조(의결 및 보고사항)에 의하면, 이사회 의결 및 보고사항은 △경영목표, 예산 및 운영계획, 중장기재무관리 계획 △발전소 건설 기본 계획 △발전소 및 300억원 이상의 비유동자산의 취득 및 처분 △주주총회의 소집과 이에 제출할 의안 등입니다. 하지만 한수원은 이사회 부분과 관련해 권향엽 의원실에는 "이사회 규정 5조에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이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이사회에 상정하는 안건은 자금을 투자하는 사업에 관한 건이고,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은 (이사회)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윤석열씨가 지난해 9월20일(현지시각) 체코 플젠 산업단지 내 두산스코다파워 공장에서 열린 원전 전주기 협력 협약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러나 정치권과 원전업계에선 해외로 원전을 수출하는, 26조원에 달하는 대규모의 사업을 이사회 의결도 없이 진행했다는 점이 의아하다고 지적합니다. 더구나 체코 원전수출과 관련해 미국 업체 웨스팅하우스와의 '노예계약' 논란이 불거진 마당이어서 한수원이 의도적으로 이사회를 패싱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옵니다.
실제로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수원은 3조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원전수출 계약 땐 앞서 2022년 9월23일 이사회를 열고 해당 계약 안건을 논의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 원전업계 관계자는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이라고 하더라도(이사회를 열지 않더라도) 정말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인지 아닌지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이렇게 대형 사업을 이사회 의결 없이 했다는 것은 이상하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상법 제393조(이사회의 권한) 1항엔 "중요한 자산의 처분·양도, 대규모 재산의 차입, 지배인의 선임 또는 해임과 지점의 설치·이전 또는 폐지 등 회사의 업무집행은 이사회의 결의로 한다"라고 됐습니다. 대표이사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은 이사회를 소집, 결의를 거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사회는 대표이사를 감독·견제하기 때문입니다. 상법을 어기고, 회사에 재산상 피해가 있었다면 형법상 '배임'에 해당합니다.
특히 한수원 이사회 규정 5조 24호엔 이사회를 여는 요건으로 "기타 이사회 또는 사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이라는 게 별도로 규정되었습니다. 한수원이 체코원전 수출 때 이사회 열고 의결을 거칠 의지가 있었다면 충분히 할 수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에 대해 한수원 이사회 사무국은 권향엽 의원실에 "이사회 규정 5조 24호에 의거해 (원전수출) 사업처에 '황주호 사장한테 부의해달라(이사회에 안건으로 올려달라)'라고 요청하면 (이사회 사무국에서) 받겠다고 전했지만, 사업처에선 별다른 요청이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권 의원은 "체코 두코바니 사업은 최근 15년간 한수원이 추진한 사업 중 가장 중요한 사업인데, 이사회 의결과 보고조차 거치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불가"라며 "치적 쌓기에 급급한 정부가 외압을 행사해 '노예계약'을 맺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대선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4월8일 사업심의위원회 의결 이후 '이사회 패싱'이라는 무리수를 둔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뉴스토마토>는 한수원에 이집트 엘다바 원전수출 땐 이사회를 열어 논의했지만, 체코 두코바니 원전수출 땐 이사회를 생략한 이유 등에 대한 입장과 반론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수원 측은 "한수원은 관련 규정을 준수하여 체코 신규원전사업 입찰 및 계약을 진행하였음을 알려드린다"며 "체코 원전사업은 이사회 의결·보고 대상이 아니며, 한수원은 전사사업심의를 통해 체코 신규원전 최종계약서의 타당성에 대해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평가를 진행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2023년 엘다바 원전수출 때도 이사회 의결을 안 했다. 원전수출 계약 이후에 (이사회에) 보고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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