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영진 기자] 주요 손해보험사의 자동차보험 실적이 적자로 돌아서면서 보험료 인상 검토에 나섰지만, 이재명정부가 상생금융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손보사들의 손해율이 커진 건 상생금융 차원에서 최근 4년 연속 보험료를 내려온 영향 때문입니다.
대형사도 줄줄이 적자 전환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자동차보험 시장의 약 85%를 차지하는
삼성화재(000810)·
DB손해보험(005830)·
현대해상(001450)·KB손해보험 등 대형 손보사의 자동차보험 누적 손해율은 3분기 기준 85.4%로, 손익분기점 82%를 넘었습니다. 자동차보험은 손해율에 사업 비율을 더한 합산 비율이 100%를 넘으면 적자로 전환합니다. 사업 비율이 업계 평균 약 16%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합산 비율은 이미 100%를 넘겨 적자인 상황입니다.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폭설 등으로 4분기에 상승하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합산 비율이 103~104%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보험사별로 살펴보면 삼성화재 자동차보험 손실은 3분기 648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지난 상반기 307억원 흑자와 비교하면 손실 폭이 955억원 확대되며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같은 기간 DB손보 손실은 558억원으로 상반기 777억원 흑자에서 1335억원 감소했습니다. 현대해상 손실도 553억원으로 상반기 166억원 흑자에서 719억원 빠졌고, KB손해보험 손실은 527억원으로 상반기 86억원 흑자와 비교하면 수익이 613억원 줄었습니다.
자동차보험 부문 손실의 주요 원인은 상생 금융 차원으로 단행한 보험료 인하 영향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 자동차 운행량이 급감하면서 보험사들이 이익을 보면서 2022년부터 자동차보험료를 내렸습니다. 연도별 평균 보험료 인하율은 △2022년 1.2% △2023년 1.9% △2024년 2.5% △2025년 0.8% 등입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운행량 증가와 극한 호우, 폭설 등으로 사고가 늘어나면서 손해율이 치솟았습니다.
대형 보험사마저 적자로 전환하면서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삼성화재는 지난 13일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최근 4년 동안 요율을 인하했는데 이 부분이 내년 손익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현재 합산 비율 수준을 고려해 내년 (자동차) 보험료를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5년간 자동차보험료 인하 기조에 인상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시사한 것은 처음입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상생금융 차원에서 동참했던 보험료 인하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며 "대형사도 적자로 전환하는 추세로 이제는 진짜 보험료를 인상해야 할 때"라고 전했습니다. 이어 "지난해부터 적자가 예견돼 있었지만 보험료 인하 압박으로 또 인하하면서 적자가 현실화됐다"며 "자동차보험은 계륵 같은 존재"라고 덧붙였습니다.
다만 윤석열정부에 이어 이재명정부도 상생금융을 강조하고 있어 보험료 인상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자동차보험은 의무 가입 보험으로 공공재 성격을 갖고 있어 정부의 간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게다가 소비자물가지수(CPI) 구성 항목에 포함될 정도로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커, 손실이 발생해도 보험료를 마음대로 올리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중소형 보험사들이 자동차보험 부문에서 적자를 기록했음에도 보험료 인하 압박을 받았습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보험료는 정부가 개입하면 안 되는 항목이지만, 규제 산업 상 정부가 간접적으로 압박을 넣고 있다"면서 "특히나 경제가 힘든 시기엔 인하 압박이 더 거세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적자가 났음에도 자동차보험 특성상 보험료를 정부 눈치보고 결정해야 한다"며 "보험사 마음대로 인상하기 힘들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보험료 내리려면 보험사기 잡아야"
한방 치료, 과잉 진료, 보험 사기 등 나이롱 환자로 인한 보험금 누수가 심각한 상황인 것도 사실인데요. 보험사들은 이러한 문제를 정책적으로 막을 수 없다면, 최소한 보험료 인상을 허용해 달라는 입장입니다. 결국 과잉 진료로 인한 피해는 선량한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박상혁 민주당 의원이 자동차보험을 판매하는 12개 손보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방 치료비는 지난해 1조573억원으로 2015년 1828억원 대비 478.3% 급증했습니다. 같은 기간 양방 치료비는 850억원에서 1329억원으로 56.3% 증가한 것과 대비됩니다. 보험사들은 환자 증상과 무관하게 한방 치료를 동시에 처방·시행하는 세트 청구가 보험금 누수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금융당국과 국토교통부가 나이롱 환자 방지를 위해 추진 중인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에도 제동이 걸리면서 업계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경상환자의 치료 기간을 8주로 제한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공적 심의기구의 심사를 거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습니다.
그러나 한의계 반발로 인해 개정 추진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8주 기준과 보험사 결정 구조 모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개정안을 원점에서 검토하겠다"고 말하면서 개정안이 수정될 것이란 전망이 힘을 받고 있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기로 인한 보험금 누수가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라며 "보험금 누수가 심할수록 손해율이 치솟고, 그 피해는 보험료 인상이라는 항목으로 선량한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이어 "보험사기만 막을 수 있어도 보험료 인상은 안 해도 된다"며 "보험료 인상에 압박을 가할 거면 보험사기라도 막을 수 있는 정책에 속도를 내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자동차들이 서울 도심을 주행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유영진 기자 ryuyoungjin153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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