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덕훈 기자] 한미 무역 협상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확정 발표 이후 800조원이 넘는 대규모 국내 투자 계획을 밝힌 재계가 정부와 정치권 등에 규제 개선 건의서를 보내고 정책간담회를 여는 등 접점을 넓히고 있습니다. 관세 협상을 측면에서 지원하고 대규모 투자로 화답한 만큼, 숙원인 규제 해소와 지원책 마련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일종의 청구 행보로 해석됩니다.
19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민의힘-대한상의 정책간담회'에서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상의)
대한상공회의소는 19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의 회관에서 국민의힘 지도부와 함께 정책간담회를 열고 경제 현안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번 간담회는 정기국회에서 본격적으로 입법 논의를 시작하기 앞서 경제계가 국민의힘 측에 기업들의 애로 사항 및 건의 사항을 적극 전달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간담회에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해 송언석 원내대표 등 당지도부가 참석했습니다. 경제계에서는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SK그룹 회장)을 비롯한 상의 회장단과 이형희 SK 부회장, 하범종 LG 사장, 이태길 한화 사장, 한채양 이마트 사장, 허민회 CJ 사장, 유승우 두산 사장, 유재영 GS파워 사장, 최승훈 삼성전자 부사장, 이항수 현대차 부사장 등 재계 주요 그룹 인사들이 참석했습니다.
최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국제 무대에서 게임과 룰과 상식이 다 바뀌어 완벽하게 자국 중심의 정책이 대세가 되고 있고, 각 나라들은 자기 나라의 기업을 밀어주기 위한 기존에 없었던 정책들을 활용하고 있다”며 “우리 스스로 실행할 수 있는 정책 시스템부터 돌아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최 회장은 특히 “그동안 있었던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기업이 클수록 규제가 늘고 인센티브는 줄어드는 과거 고성장기에 만들어진 규제는 현재의 성장 시스템과는 맞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최 회장은 또 “글로벌 기업들이 조 단위 달러를 투자하는 것은 기업이 단독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하는 방식”이라며 “우리도 이런 자금 조달이 가능하도록 관련한 제도를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기업 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입법 지원도 필요하다”며 “당 차원에서 상법 보완 장치를 마련하고 인공지능(AI)과 첨단산업 지원, 상속세 관련 법안 등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으로 알고 있는데 잘 처리되도록 부탁드린다”고 덧붙였습니다.
최 회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첨단산업 경쟁력 제고, 생산적 금융 활성화, 기업 경영 불확실성 해소, 위기산업 사업재편 지원 등 주요 입법 현안에 대한 기업 의견을 담은 ‘제22대 국회 입법 현안에 대한 상의리포트’ 제언집을 장 대표에게 전달하며 기업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후 비공개 간담회에서는 석유화학·철강 등 위기 산업에 대한 신속한 지원 입법, 재고용 방식 도입 등 법정 정년 연장의 신중한 검토,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 완화 등에 대한 재계의 건의가 이어졌습니다.
규제 개선 및 지원책 마련을 호소하는 재계의 이 같은 목소리는 최근 들어 계속 커지는 모습입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전날 공정거래 분야 제도 개선 과제 24건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하면서 기업집단 규제 체계 개선,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기준 개선, 형벌 체계 합리화 등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앞선 지난 12일에는 금산분리 완화와 CVC(기업형 벤처캐피탈) 제도 개선 등을 정부에 요구한 바 있습니다.
이에 일각에선 관세 협상 타결 등 정부를 측면 지원하고 국내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힌 상황에서의 재계의 이 같은 행보가 일종의 ‘청구서’격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경영 환경 여건에 대한 개선 또는 규제 완화는 재계 중심으로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던 부분”이라면서 “한미 무역 협상에서 재계 총수들이 측면 지원을 해왔던 만큼 규제 개선을 강조할 타이밍을 재계가 찾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랜 기간 중소기업의 상생 협력에 대해 정부가 방점을 뒀다면, 이제는 국난의 시점에 대기업이 나섰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들에게도 돌아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것을 한번 생각해볼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배덕훈 기자 paladin7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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