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근윤 기자] 대법원과 검찰이 새해 신년사를 통해 일제히 '국민 눈높이'를 강조했습니다.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등 사법제도 개편과 검찰청 폐지라는 대대적 변화를 앞두고 국민을 우선하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겠다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일각에선 아전인수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변화를 요구하는 바람 앞에서도 국민 눈높이를 명분과 방패로 내세워 기관의 독립성, 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모양새기 때문입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2025년 12월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희대 대법원장은 지난해 12월31일 발표한 2026년 신년사를 통해 "사법부는 국민 눈높이에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법과 원칙에 따른 충실한 재판을 통해 헌법적 사명을 완수하겠다"고 했습니다.
국회에서 추진 중인 대대적 사법제도 개편에 대한 입장도 신년사에 담겼습니다. 그는 "충분한 논의와 공론화를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겠다"며 "이를 통해 주권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가장 필요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법제도가 개편될 수 있도록 더욱 책임 있게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법치주의가 굳건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린다"라고도 했습니다.
조 대법원장의 신년사를 통해 사법제도 개편의 기준을 '주권자인 국민의 입장'에 두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사법부의 행보를 보면 법원의 말한 '국민'은 민의와 동떨어졌습니다.
우선 대법원은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가 지난해 12월23일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을 통과시켰음에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내란전담재판부법 통과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22일 '무작위 배당' 전담재판부 설치에 관한 예규를 행정예고했습니다. 오는 2일까지 11일 동안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한 만큼, 입장을 다시 내거나 기존 예규안에 대한 수정 또는 폐기 등의 움직임을 보일지 주목됩니다.
장기간 재판 지연과 무죄·감형 판결에 대한 국민적 문제 제기가 이어져 왔지만, 사법부는 제도 개선이나 내부 책임 논의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습니다. 오히려 개별 재판의 독립을 이유로 외부의 문제 제기를 차단해 왔습니다. 국민이라는 방패 뒤에서, 사법부의 독립과 삼권분립이라는 법치주의를 주장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현재 민주당을 중심으로 국회에서 대대적인 사법제도 개혁이 예고된 상황입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31일 별도 언론 공지를 통해 "2026년도에 2차 종합 특검과 통일교·신천지 특검을 우선 처리하되, 사법개혁 관련 입법도 설 연휴(2월 16일) 전에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알렸습니다. 관련 입법으로는 법 왜곡죄 신설, 재판소원제 도입, 대법관 증원, 법원행정처 폐지 등입니다. 여당 주도로 통과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은 지난해 12월3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며 곧 공포를 앞두고 있습니다.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2025년 12월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법무부(대검찰청)·성평등가족부 업무보고에서 답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검찰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구자현 검찰총장 권한대행도 2026년 신년사에서 비중 있게 '국민' 키워드를 꺼냈습니다. 구 권한대행 신년사에서 국민은 총 21번 등장합니다.
오는 9월 말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 설치를 앞두고 구 권한대행은 신년사를 통해 "새로운 제도 하에서도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능동적으로 찾아달라"고 주문했습니다. 78년 만의 검찰청 폐지를 앞두고 조직 내부의 동요가 큰 상황에서, 외부를 향한 메시지이자 내부를 다잡기 위한 발언으로 해석됩니다. 내년 10월 초 시행되는 개정 정부조직법에 따라 수사 기능은 행정안전부 산하의 중대범죄수사청, 기소 기능은 법무부 산하의 공소청으로 나뉘게 됩니다.
동시에 공소청 출범 이후에도 검찰이 수행해야 할 역할과 권한을 구체적으로 열거한 대목에서는 조직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2026년 10월로 예정된 공소청 출범 이전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검찰에는 여전히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많은 권한과 역할, 그에 따른 책임이 있다"며 실체적 진실 규명, 엄정한 처벌, 범죄 피해자 보호, 사법통제를 통한 인권 보호 등은 개편 이후에도 검찰의 핵심 기능이 유지돼야 한다는 메시지도 함께 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검찰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국민이 헌법을 통해 검찰에 부여한 사명이 있고, 국민의 신뢰 없이 검찰이 바로 설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함으로써, '국민'이란 방패막 뒤에서 검찰청 폐지에 대한 반발심을 내비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구 권한대행의 신년사에서 '국민의 신뢰'는 총 3번 언급됩니다.
한편, 검찰청 폐지를 앞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여전히 반발이 감지됩니다. 김성훈 청주지검 부장검사는 지난해 12월 29일 헌법재판소에 검찰청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를 규정한 정부조직법 개정안 35조 2항 등에 대해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검찰청 폐지가 검사인 자신의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입니다.
유근윤 기자 9ny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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