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잇따라 미국 최대 디지털자산거래소 코인베이스의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지난 12월 코인베이스가 공개한 ‘에브리싱 익스체인지(Everything Exchange)’ 전략이 있다. 기존 디지털자산은 물론 주식, 파생상품 그리고 경제·정치 변수의 결과를 맞추는 예측 시장까지, 자본시장 전반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하겠다는 담대한 구상이다. 가히 크립토 시장의 ‘아이폰 모먼트(iPhone Moment)’라고 평가할 만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떨까. 정부는 지난해 국정 과제로 ‘디지털자산 생태계 구축’을 내걸며 산업 진흥 의지를 표명했으나, 국내 거래소의 역할은 십 수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현물 디지털자산 중개 수준에 멈춰 서 있다. 아이폰이 연 글로벌 스마트폰 시대에, 한국만 구시대 ‘피처폰’을 고집하는 형국이다. 이는 상당 부분 규제적 요인에 기인한다. 각종 그림자 규제와 제도 공백 탓에, 국내 거래소는 글로벌 확장, 파생상품 등 신사업 진출의 활로가 차단된 상태다.
그런데 최근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핵폭탄급’ 디지털자산 규제가 나올 조짐이다. 금융당국이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국내 디지털자산거래소 주주 지분율 한도를 15~20%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그대로 도입되면 기존 거래소 주주들은 자신의 지분을 강제 매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두나무(송치형 회장 25.5%)·빗썸홀딩스(73.6%)·코인원(차명훈 의장 54%) 등 국내 주요 거래소 최대주주 지분율은 대부분 20%를 훌쩍 넘는다.
지금까지의 규제가 사업을 ‘하고 싶어도 못 하게 막는’ 수준이었다면, 지분 제한은 기업 혁신과 성장의 ‘의지’ 자체를 꺾어버린다는 점에서 파괴력이 차원을 달리한다. 창업주를 비롯한 대주주가 온갖 경영 리스크를 짊어지며 기업가치를 키워놨는데, 그 결실을 강제로 내놓으라 한다면 세상 그 누가 혁신에 뛰어들겠는가.
금융당국은 디지털자산거래소의 ‘공공’ 인프라적 성격을 고려하여 자본시장법상 대체거래소(ATS) 지분율 제한(15%)과 유사한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ATS와는 달리, 디지털자산거래소는 글로벌 무한 경쟁에 노출되어 있다. 국내 투자자들은 신원 확인 절차(KYC)만 거치면 클릭 몇 번으로 자신의 자산을 해외거래소로 옮길 수 있다.
‘지분 강제매각 규제’가 현실화하면 코인베이스와 같은 글로벌 거래소와 국내 거래소의 격차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벌어질 것이다. 이용자가 혁신 동력을 완전히 상실한 국내 거래소를 떠나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외로 대거 이탈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수순이다. 국내 이용자들이 해외로 이탈하면, 국내 디지털산업 생태계는 붕괴되고 끝없는 쇠퇴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아무도 찾지 않는 거래소를 규제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규제와 제도는 산업의 건전한 육성과 지속가능성을 전제로 설계되어야 한다. 특히 디지털자산처럼 국가 미래금융 경쟁력과 직결되고, 세계 주요국이 치열한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산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우리 금융당국은 국가 전략산업을 보호·육성하기보다 스스로 위축시켜 해외에 주도권을 내어주려 한다. 미국과 코인베이스가 ‘에브리씽 익스체인지(Everything Exchange)’를 향해 질주하는 동안, 국내 거래소는 관치금융의 덫에 걸려 혁신도, 이용자도 없는 ‘나씽 익스체인지(Nothing Exchange)’로 전락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최단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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