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단속 피하다 사망·부상·유산…이주노동자 '산재 신청'
‘도주 지시’ 입증 요구에 산재 인정 엇갈려
노동단체 “공단, 업무 처리 요령 개선해야”
2026-01-21 16:42:23 2026-01-21 16:42:23
[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출입국 단속을 피하던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잇따르면서 산업재해 신청도 늘고 있습니다. 단속을 피해 달아나다 추락해 숨지거나 중상을 입거나 심지어 유산하는 사례까지 발생해서입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체류 자격과 관계없이 국내 사용자에게 종속돼 일했다면 근로자로 인정되며, 산재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지난해 10월28일 대구 성서공단의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베트남 국적 뚜안(25세)씨는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단속을 피하려다 건물에서 떨어져 숨졌습니다. 뚜안씨 측은 지난해 12월24일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습니다. 뚜안씨의 사망은 단속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였지만, 이것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법적으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산재보험 적용 대상입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면 국적이나 체류 자격과 상관없이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겁니다. 대법원은 지난 1995년 취업 자격이 없는 외국인이라도 사용자에게 종속돼 근로를 제공했다면 근로자로 인정할 수 있고, 산업재해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2024년 6월20일 울산의 한 공장에서 스리랑카 국적의 A씨가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의 단속을 피하다 오른쪽 무릎이 골절되는 등 부상을 입었다. (사진=경주이주노동자센터)
 
실제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산재가 인정된 사례는 존재합니다. 지난 8일 경남 사천에서 단속을 피하다 다친 베트남 국적 이주노동자 2명은 근로복지공단 진주지사로부터 산재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9월15일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의 단속 과정을 피하려다 2층에서 추락해 흉추 골절 등 중상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산재를 협소하게만 인정하고 있습니다. 산재를 신청했지만 불인정돼 행정소송으로 이어진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2024년 6월20일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은 울산의 한 공장으로 들이닥쳐 단속을 벌였는데, 스리랑카 국적의 A씨는 이를 피해 도망치다가 담벼락에서 뛰어내렸지만 오른쪽 무릎이 골절되는 등 부상을 입었습니다. 
 
A씨 측은 이 사고를 산재로 인정해 달라며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그해 9월 근로복지공단 포항지사는 이를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근로복지공단은 "사업주가 적극적으로 도주를 지시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A씨는 불복해 심사청구를 제기했지만 기각됐습니다. 결국 A씨는 행정소송에 나섰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를 인정하지 않는 근거로 내세운 건 '불법체류자 단속 피신 중 발생한 사고의 업무처리 요령'입니다. 공단은 이 요령의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업무상 재해로 보고 있는데, 핵심 요건은 3가지입니다. △사업주가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임을 인지한 상태 △단속할 때 사업주의 도주 지시로 도주 중 사고 발생 △도주 및 사고발생 일련의 행위가 사업주의 지배관계 책임이 미치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경우 등입니다. 
 
A씨의 법률대리인인 탁선호 '법무법인 여는' 변호사는 "이것은 법률이 아니라 내부 행정지침에 불과하다"며 "이 사건의 경우 사업주가 단속 차량은 어떻게 생겼는지, 단속이 나오면 어디로 도망가야 하는지 등을 반복적으로 알려줬기 때문에 이 역시 도주 지시로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법원은 공단에 비해 '사업주의 도주 지시'를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입니다. 2016년 서울고등법원은 사업주가 단속 당시 직접 도주를 지시하지 않았더라도, 평소 단속에 대비해 비상벨을 설치하고 비상벨이 울릴 경우 도주할 것을 당부하는 등 행동 수칙을 마련해두었다면 단속 중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도주가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용자의 묵인·지시 아래 이뤄진 사실상 업무 과정의 일부로 작동했다고 본 겁니다.
 
앞서 베트남 국적 이주노동자 2명의 산재 인정을 지원했던 민주노총 경남본부도 공단의 업무처리 관행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경남본부 측은 "사업주가 거짓말을 하면 사실상 산재로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어 있는 현실"이라며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해당 지침은 판례들을 반영해 마련된 것"이라면서도 "최근에는 도주 당시 사업주의 직접적인 지시뿐 아니라, 그 이전부터 도주와 관련한 언급이나 정보 공유 정황 등 간접적인 요소까지 포함해 판단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현장에서 제기되는 문제점은 인지하고 있다"며 "지침을 과도하게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단속 절차 자체의 적법성을 문제 삼는 판단도 나왔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울산 출입국사무소의 단속 과정에서 사업주 등 관리자의 사전 동의 없이 단속이 이뤄졌다며 적법절차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난해 11월28일 판단했습니다. 당시 단속을 피해 도망치던 A씨뿐 아니라 태국 국적의 여성도 부상을 입었는데,그는 임신 중이던 아이를 유산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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