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기관 업무보고 분석)(1)정책금융 '돈 풀기 경쟁'…성과 검증은 빈칸
공급 경쟁 속 산업 경쟁력 개선 지표 제한적
AI·수출·첨단산업 지원 겹치며 중복 투입 우려
보증·투자 늘었지만 건전성·회수 성과 평가는 미흡
2026-02-23 15:35:11 2026-02-23 16:50:29
[뉴스토마토 이지우·남윤서 기자] 뉴스토마토 K-정책금융연구소 평가 대상 정책금융기관 중 중소기업과 벤처·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기관들이 올해 초 업무보고에서 일제히 '역할 확대'를 내세웠습니다. 공급 규모는 커졌지만 실제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정량 지표는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23일 뉴스토마토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정책금융기관 업무보고의 핵심은 '공급 확대'로 수렴했습니다. 산업은행은 향후 5년간 250조원, 기업은행(024110)은 300조원 생산적 금융 공급 계획을 제시했고, 수출입은행은 수출위기 대응 프로그램을 22조원으로 확대 운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은 각각 76조5000억원, 29조원 보증 총량 목표를, 한국무역보험공사는 275조원 규모 무역보험 지원 계획을 내놓았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산은·수은·기은, 공급 확대 속 질적 성과는 과제
 
산은은 올해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 운용을 본격화하고, 이 중 30조원 이상을 저리대출·직접투자·간접투자 등으로 공급한다는 계획입니다. 지난해 정책자금 공급은 계획 대비 15조9000억원 증가해 95조9000억원으로 확대됐고, 첨단전략산업 자금 공급도 2024년 11조5000억원 수준에서 17조6000억원으로 늘어났습니다. 특히 혁신성장 분야에 45조2000억원을 공급했고 직접투자 5020억원, 신규 펀드 5조8000억원 조성 등의 성과를 내세웠습니다.
 
수은은 지난해 36조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제공했으며, 20조원 규모 수출 위기 대응 프로그램을 신설해 14조2000억원의 실적을 냈습니다. 같은 해 8월부터는 지원 대상을 신용등급 열위 기업에서 전체 중소·중견기업으로 확대했습니다. 올해는 이를 22조원으로 확대해 운용하고, 공급망안정화기금·대외경제협력기금(EDCF) 등을 연계한 'K-Finance 패키지'로 기업 해외시장 개척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입니다.
 
기은은 지난해 중소기업 대출 공급 규모가 70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4조7000억원이 증가했고, 중기대출 잔액은 260조9000억원으로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혁신 벤처·스타트업에 3년간 2조7000억원 규모 모험자본을 공급했고, 기술금융은 9만1000개 기업에 129조6000억원을 지원했습니다. 중소기업·소상공인 부문에는 향후 5년간 250조원 공급 계획을 제시했습니다.
 
산은·수은·기은 모두 공급 확대 성과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실제 산업 경쟁력 개선이나 구조 전환 효과, 부실률 변화 등 질적 성과를 보여주는 지표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입니다. 정책금융이 총량 확대 중심으로 설계되면서 대출·투자·수출 금융 규모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보여주는 분석은 부족하다는 평가입니다.
 
보증·보험·벤처 축도 총량 확대 기조
 
신보 역시 보증 확대 기조를 분명히 했습니다. 지난해 보증공급은 75조5000억원으로 증가했고 신성장동력·수출기업 지원을 강화했으며, 향후 2년간 31조5000억원 규모 추가 지원 방안도 제시했습니다.
 
기보도 보증 총량을 유지·확대하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올해 기술보증 및 유동화회사보증 보증 공급 계획은 29조원이며, 보증 잔액은 29조5000억원입니다. 인공지능(AI)·첨단전략산업 중심 기술기업을 선별 지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습니다. 기보는 지난해 8만여개 기업에 총 31조9341억원의 정책보증을 공급했습니다.
 
무보는 올해 무역보험 지원 목표를 275조원으로 설정했습니다. 지난해 지원 규모는 268조원이었고, 이 가운데 중소·중견기업 지원이 109조원을 차지했습니다. 올해는 이를 114조원까지 확대할 계획입니다. 특례보증 및 아세안·중남미 등 신흥시장 대상 무역보험 공급 확대도 추진 과제로 제시됐습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은 지난해 정책자금 5조2000억원을 공급하고 재해 피해 기업 545개사에 923억원을 지원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책자금, 수출 마케팅, 창업·인력 양성 등을 통해 유망 중소기업을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특별 사후관리, 상환 유예 등으로 위기 중소기업을 관리하겠다는 방침입니다. 한국벤처투자는 지난해 모태자펀드 4조4751억원을 신규 결성했고, 1493개 기업에 3조995억원을 투자 집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장민영 신임 기업은행장이 20일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제28대 은행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중복 지원·성과 부재…정책금융 구조 점검 필요 
 
기관별 전략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AI·첨단전략산업·수출기업 지원을 핵심축으로 설정하고 정책자금·보증·보험·투자를 동시에 확대하겠다는 방향입니다. 문제는 '얼마나 풀 것인가'는 강조되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가'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국책은행과 보증기관들은 대규모 공급 성과를 강조했지만, 투자 이후 생산성 개선이나 산업 구조 전환 효과를 보여주는 지표는 제한적입니다. 신보와 기보, 무보의 경우 보증·보험 확대 계획은 구체적으로 제시했지만 부실률, 대위변제 증가 속도, 회수 성과 같은 건전성 지표는 업무보고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습니다.
 
AI·반도체·수출기업 지원은 대부분의 정책금융기관들이 동시에 추진하고 있어 중복 지원 가능성이 상존합니다. 한벤투 역시 전략산업 중심 펀드 확대를 제시했지만, 민간자금 유입 구조와 위험 분담 방식이 어떻게 설계되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정책금융 확대가 이어질수록 공적 자금이 직접투자와 보증 형태로 시장에 깊이 관여하게 되고, 회수 구조와 운용 투명성에 대한 요구도 커지고 있습니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감사원 감사에서 벤처투자 회수 절차의 불투명성이 지적되며 제도 개선 요구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에 정책금융의 핵심은 규모가 아니라 어디에 쓰이느냐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한국 정책금융은 선진국 중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이 가장 높은 편"이라며 "총량보다 시장 실패 영역에 제대로 투자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기업경영 애로 해소 중심 지원보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민간이 투자하지 못하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며 "업력이 오래된 기업 지원 비중이 높고 소관부처가 기업 선정에 관여하는 구조에서는 기관 책임성과 전문성이 흐려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성과는 지원 규모가 아니라 산업 변화와 생산성 개선으로 이어졌는지를 데이터 기반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금융지원은 예산에 즉각 반영되지는 않지만, 부실 발생 시 결국 세금으로 귀결되는 구조"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수출 대기업과 내수 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심화된 상황에서 기술 탈취, 단가 후려치기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지 않은 채 금융으로 대응하는 것은 근본 처방이 아니"라며 "수출 실적이나 지원 규모만이 아니라 국내 일자리 창출과 산업 생태계에 어떤 효과를 냈는지를 평가 지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책금융은 단순한 공급 확대가 아니라 공정한 거래 질서 확립과 제도 개선과 병행될 때 효과가 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지우·남윤서 기자 jw@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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