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남성보다 통증이 더 느리게 해소되며 만성 통증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더 높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를 설명하는 기전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최근 미시건 주립대학 생리학과 제프로이 로멧(Geoffroy Laumet) 교수 연구팀이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이뮤놀로지(Science Immunology)>에 발표한 논문 “단핵구 유래 인터루킨-10이 통증 지속 기간의 성별 차이를 유도한다(Monocyte-derived IL-10 drives sex differences in pain duration)”는 피부 염증 생쥐 모델을 이용해, 인터루킨-10을 생성하는 단핵구가 감각 뉴런에 신호를 전달함으로써 수컷에서 더 빠른 통증 해소를 유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지금까지 통증 연구는 주로 “통증이 어떻게 시작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왔습니다. 염증이 발생하면 통각 신경이 자극을 받고, 이 신호가 뇌로 전달되면서 통증을 느낀다는 것이 기본적인 설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임상 현장에서는 같은 손상이나 염증에도 불구하고 통증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특히 여성 환자에서 만성 통증의 유병률이 더 높다는 관찰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인터루킨-10(IL-10)은 항염증성 사이토카인으로 염증 반응을 억제하고 감각 뉴런에 신호를 보내 통증 해소를 촉진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통증 줄이는 신호, 인터루킨-10
한국 출신 심재원 대학원생이 제1 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는 “통증은 왜 생기는가”에서 방향을 바꾸어 “통증은 왜 빨리 끝나지 않는가”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인터루킨-10(IL-10)은 잘 알려진 항염증성 사이토카인(cytokine)입니다. 사이토카인은 면역세포를 비롯한 여러 세포가 분비하는 신호 전달 단백질로, 세포와 세포 사이의 ‘의사소통 분자’ 역할을 합니다. 이 경우 사이토카인은 염증 반응이 과도해지지 않도록 제어하는 역할을 합니다. 연구진은 이 분자가 단순히 염증을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감각 뉴런에 신호를 보내 통증 해소를 촉진한다고 밝혔습니다. 실험쥐의 염증성 통증 모델과 외상 후 통증을 겪는 사람들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인간에게서도 단핵구 수와 IL-10 수치가 통증 해소 속도와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단핵구는 혈액을 순환하는 백혈구의 한 종류로, 선천면역을 담당하는 중요한 면역세포입니다. 전체 백혈구의 약 5~10%를 차지하며, 비교적 큰 크기와 콩팥 모양 또는 말굽 모양의 단일 핵이 특징입니다. 이 세포는 골수에서 생성된 뒤 혈액을 통해 전신을 순환하다가, 필요할 경우 혈관을 벗어나 조직으로 이동합니다. 연구진은 남성에서 IL-10을 생산하는 단핵구의 활성이 더 두드러진다는 사실도 보고하였습니다.
IL-10은 염증 반응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과도한 면역 활성화를 억제하는 항염증성 사이토카인입니다. 이 물질은 대식세포와 같은 면역세포의 염증성 사이토카인 분비를 감소시키고,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도록 면역 반응을 조절합니다. 그 결과 염증이 과도하게 지속되는 것을 막고, 조직이 회복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합니다. 이처럼 IL-10은 면역 반응의 가속 페달이라기보다 과열을 막는 브레이크와 같은 기능을 수행합니다.
연구진은 단순한 상관관계를 넘어 인과성을 확인하기 위해 IL-10 경로를 인위적으로 차단하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IL-10을 항체로 중화하거나, 감각신경에서 IL-10 수용체를 제거하자 통증의 해소 과정이 현저히 지연되었습니다. 또한 단핵구에서 IL-10 생성을 차단했을 때도 통증 해소가 지연되었습니다.
이 결과는 단핵구-IL-10-감각신경으로 이어지는 생물학적 축이 통증 해소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통증은 염증이 줄어들면 저절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면역세포가 감각신경에 ‘이제 경보를 내려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야 종료된다는 것입니다.
통증을 억누르는 대신, 몸이 스스로 통증을 종료하도록 IL-10 경로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는 오피오이드 의존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남성 호르몬, 통증 해소 영향?
연구진은 남녀간 통증 지속 시간의 차이에 남성 성호르몬, 즉 안드로겐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제시하였습니다. 안드로겐 신호 전달을 조작했을 때 단핵구의 축적과 통증 해소 속도가 변화하는 결과가 관찰되었습니다. 이는 성에 따라 통증 지속 시간에 차이가 나는 게 단순한 사회적·심리적 요인이 아니라, 면역계와 호르몬 체계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다만 연구진은 이 결과가 곧바로 “남성은 통증에 강하다”는 식의 단순한 해석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핵심은 성별에 따라 통증을 종료시키는 생물학적 회로의 작동 강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통증 치료는 주로 신경 신호를 억제하거나 차단하는 방식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통증을 억누르는 대신, 몸이 스스로 통증을 종료하도록 돕는 전략, 즉 ‘통증 해소 촉진’ 접근입니다.
IL-10 경로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는 특히 오피오이드 의존을 줄일 수 있는 잠재적 대안으로 주목됩니다. 다만 IL-10은 면역 억제 기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경우 감염이나 다른 면역 이상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임상 적용을 위해서는 보다 정밀한 표적화 기술과 안전성 검증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연구는 통증을 단순한 신경계 현상이 아니라, 면역과 신경이 긴밀히 소통하는 복합적 과정이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제 과학은 통증의 시작이 아니라, 통증이 왜 멈추지 않는지를 질문하며 새로운 치료 접근의 가능성을 열고 있습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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