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주현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 측이 오 시장에게 유리하지 않은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수치를 바꿀 수 있는지 묻고, '초접전'을 강조하는 기사 방향과 공표 시각까지 논의한 정황이 법원 판결로 드러났습니다. 오 시장 측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안철수·금태섭 기사는 빼는 것으로", 기사 제목은 '국민의힘 당내 경선 초접전 양상'과 유사하게 하자는 구체적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이후 실제로 한 언론엔 '나경원 vs 오세훈 초접전'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됐습니다.
25일 <뉴스토마토>가 입수해 확인한 오세훈 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1심 판결문엔 재판부 10번째 공표용 여론조사를 오 시장 측의 의뢰로 판단한 구체적인 근거가 담겨 있었습니다. 조사 결과가 공표 전에 오 시장과 측근들에게 전달됐고, 오 시장에게 유리하지 않은 결과가 나오자 오 시장 측 관계자들이 결과 변경 가능성과 기사 방향, 공표 시각을 논의한 정황이 드러난 겁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조형우 부장판사)는 지난 22일 명태균씨 측이 수행한 10번째 공표용 여론조사는 오 시장 측의 의뢰로 실시된 조사라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이 조사에 대응하는 돈으로 지목된 500만원은 조사비 대납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공표 전 오세훈 측에 전달된 결과…"유리하게 바꿀 수 있나" 문의
판결문에 따르면, 10번째 여론조사 결과는 기사로 공개되기 전인 2021년 2월28일 오 시장 측에 먼저 전달됐습니다. 결과보고서는 여론조사업체 측에서 미래한국연구소 관계자에게 넘어갔고, 명태균씨를 거쳐 김한정씨(오 시장의 후원자이자 사업가)에게 전송됐습니다. 김씨는 이튿날인 3월1일 텔레그램으로 오 시장에게 보고서를 보냈습니다.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도 같은날 결과 자료를 내려받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조사 결과가 오 시장 측이 기대한 방향과 달랐다는 점입니다. 그러자 오 시장 측 관계자 A씨는 실제 조사를 수행한 여론조사업체 관계자 B씨와 통화한 뒤, 미래한국연구소 관계자와의 카카오톡 대화방에 "B실장님과 통화를 했는데 같은 말씀"이라고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A씨는 이어 "C언론사에서 기사 제목을 국민의힘 당내 경선 초접전 양상, 3월1일 마지막 토론에 최종 후보 결정될 듯, 위와 유사한 기사를 내보내는 것이 최선일 듯 합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재판부는 오 시장 측 관계자인 A씨가 쓴 "같은 말씀"이라는 표현에 주목했습니다. A씨보다 먼저 누군가가 여론조사업체 관계자인 B씨에게 조사 결과를 오 시장에게 유리하게 바꿔줄 수 있는지 문의했으나, B씨가 이를 거절했다는 의미로 해석한 겁니다. B씨도 법정에서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시 그런 요청이 있었고, 자신이 이를 거절한 정황으로 보인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안철수, 금태섭 빼고"…오세훈 측 기사 제목·공표 시각도 논의
법원은 오 시장 측의 또 다른 관계자인 D씨가 결과 변경을 여러 차례 요청한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적어도 D씨가 여러 차례 '10번 공표용 여론조사 결과를 최대한 피고인 오세훈에게 유리하게 바꿔줄 수 있는지' B씨에게 문의 내지 요청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결과를 바꾸는 방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논의는 기사 내용과 공표 시각으로 이어졌습니다. A씨가 "공표시간은 오늘 오후 7시. 안철수, 금태섭 기사는 빼는 것으로"라고 하자, 미래한국연구소 관계자는 "공표시간 2시30분으로 조정했고 그 전에 C언론사에 기사 등록되면 안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실제 C언론사의 보도 제목도 이들이 논의한 방향과 유사했습니다. 그날 이 언론사는 '나경원 vs 오세훈 초접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재판부는 이를 미래한국연구소 측이 오 시장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지 않자 이를 수습할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22일 서울-에티오피아 문화교류 행사에 참석하기 전 강뉴부대 참전용사들의 헌신에 감사를 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심 재판부 "10번째 조사도 오세훈 측 의뢰…'500만 대납' 무죄"
법원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10번째 조사의 의뢰자'를 판단하는 핵심 정황으로 삼았습니다.
오 시장 측이 공표 전에 결과를 전달받았고, 결과가 유리하지 않자 변경 가능성을 문의한 데 이어 기사 제목과 공표 시간까지 논의한 점을 근거로 해당 조사가 오 시장 측 의뢰로 실시됐다고 본 겁니다. 재판부는 "당시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앞둔 오 시장에게 자신의 경쟁력을 알릴 공표용 조사를 의뢰할 동기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다만 조사 의뢰와 조사비 대납은 별개의 문제로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김씨가 조사 약 한 달 뒤에 명씨 측에 보낸 500만원은 10번째 조사 비용이라고 특정하기 어렵다"며 대납 혐의는 무죄로 봤습니다. 송금 당시 김씨와 명씨가 상당한 친분을 쌓은 상태였고, 명씨가 같은 달 김씨에게 여러 여론조사 자료를 전달해 돈이 어느 조사에 대한 대가인지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입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22일 선고에서 전체 10건의 여론조사 가운데 1~4번과 6번 조사에 대한 오 시장의 의뢰와 김씨의 2100만원 대납을 유죄로 인정하고, 오 시장에게 벌금 1000만원과 추징금 2100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정주현 기자 giveh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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