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양균 기자] 청소년 사이에서 급속도로 증가하는 인터넷 도박. 시작은 호기심이었지만 이를 떨쳐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을 타깃해 중독으로 끌어들이는 인터넷 도박의 차단과 노출 방지, 아울러 미래세대의 재활 등 해법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이걸 끊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전문가들은 인터넷 도박 중독에 빠진 청소년이 이처럼 스스로 치료 의지가 생길 때 비로소 치료·회복·재활을 위한 준비가 됐다고 봅니다. 이 단계에 이르기까지 부모와 의료진, 교정 당국 등의 노력과 시간, 인적·물적 자원의 투입은 상당합니다. 정작 치료 의지가 생겨 치료를 시작해도 밀려오는 도박 충동과 재발이란 터널을 거쳐야 합니다. 참고로 ‘도박장애(gambling disorder)’란, 물질 관련 및 중독 장애로 분류된 정신질환입니다.
서울경찰청이 학생 3만477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청소년 도박 설문조사에서 도박 경험률은 2.1%로 전년 1.5% 대비 0.6%p 증가했습니다. 도박 시작 학년은 초등학교 5학년이 가장 많았습니다. ‘온라인 도박’이 76.2%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뉴스토마토>는 십대 정신건강 리포트 연속 보도를 통해 자해·자살의 벼랑 끝에 서 있는 미래세대의 정신건강 실태와 원인, 해법을 찾고 있습니다.
청소년 도박장애가 청소년 범죄로 이어지면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치료, 회복, 재활의 첫 단계는 스스로 치료 의지를 키우게 유도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사진=김양균 기자, AI 생성 이미지)
장난처럼 시작한 인터넷 도박 수천만원 빚까지
지원(가명)이가 정신건강 의료기관을 찾아온 이유는 품행장애(Conduct Disorder) 때문이었습니다. 의료진은 지원이의 충동 조절이 되지 않고 폭력적인 성향, 거짓말 등의 기저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바로 인터넷 도박 중독이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학교 폭력 피해를 당했던 지원이는 중학교 때 ‘센’ 아이들과 어울렸습니다. 힘만 있으면 누구도 자길 건드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어울리던 일진 친구들은 지원이에게 재미있다며 인터넷 게임을 권했습니다. 버튼만 몇 번 누르면 순식간에 몇 만원을 벌었습니다. 지원이는 점차 인터넷 도박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소액이었습니다. 인터넷 도박으로 1만원에서 수십만원, 수백만원의 도박 빚이 생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지원이는 엄마에게 손을 벌렸습니다. 혼은 났지만, 부모님은 돈을 갚아줬습니다. 도박은 계속됐습니다. 돈이 모자라면 친구들의 돈을 뺏기나 빌리고 갚지 않는 일이 일쑤. 이게 문제가 돼 경찰이 찾아왔습니다. 지원이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울면서 말했습니다. ‘감옥 가기 싫어. 살려주세요.’ 이번에도 엄마는 지원이의 돈을 갚아주었습니다.
하지만 지원이는 도박을 끊지 못했습니다. 돈을 구하는 방법도 대담해졌습니다. 절도하거나 인터넷에서 만난 아저씨들과 조건만남도 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은 족족 인터넷 도박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수천만원의 도박 빚을 갚느라 아빠의 퇴직금을 당겨쓰고, 집의 전세 보증금도 도박 빚을 갚는데 들어갔습니다. 그래도 지원이는 돈이 필요했습니다. 한번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매달리며 부모님께 소리쳤습니다. “안 갚아주면 뛰어내릴 거야!” 이후 소년원을 거쳐 정신의료기관에 온 지원이는 정신과 의사에게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가 이걸 끊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지원이의 사례는 한서중앙병원에 내원한 여러 청소년 도박장애 사례들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도박은 술이나 마약처럼 뇌의 보상 시스템을 자극해 중독으로 이어집니다. 중독이 되면 손실로 이어지는 행동을 계속하고, 이를 숨기는 등의 문제가 깊어지게 돼 인생을 망가뜨릴 정도의 심각한 상태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통상 도박장애 환자에게는 △인지행동치료 △자조모임 △가족치료 △약물치료 등이 시행됩니다. 청소년의 경우, 자해·자살, 범죄 및 가정 경제 파탄 등과 함께 미래세대의 재활과 회복이라는 과제까지 담아야 해 더 까다롭고 섬세한 접근이 요구됩니다.
지구덕 한서중앙병원장은 “청소년들이 도박에 중독되면 눈물을 흘리면서 거짓말을 해서라도 돈을 빌리려 하고, 여성 청소년들은 성매매를, 남자 청소년은 마약 운반책을 한다거나 인터넷 도박 피해 청소년을 모집하고 관리하는 중간 관리자 등 불법적인 일에 빠져들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2024년 11월 기준 경찰청 사이버도박 특별단속으로 검거된 청소년의 수는 4715명으로 전체 검거 인원의 47.3%에 달했습니다. 도박 범죄로 입건된 소년범은 △2021년 50명 △2022년 64명 △2023년 169명 △2024년 559명 △2025년 337명 등으로 집계됐습니다.
지구덕 원장은 도박장애 청소년에게 ‘낙인’을 찍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그는 “부모님이 힘들게 번 돈을 다 날릴 수가 있느냐고 힐난하면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충격요법’으로 여기지만 자존감만 떨어뜨릴 뿐 해결에 도움은 되지 않는다”며 “스스로 치료 필요성을 느끼도록 인내심을 갖고 유도하는 것이 치료와 회복, 재활의 시작”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김양균 기자 k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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