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12일로 장윤기 은폐·조작 사건이 발생한 지 100일을 맞았습니다. 장윤기가 광주에서 여고생 이채원양을 살해한 일로 시작된 이번 사건은 단순 강력범죄 차원을 넘어섰습니다. 경찰의 부실 수사와 증거인멸, 수사 정보 유출 의혹을 거쳐 국가수사본부 지휘부에 대한 수사로까지 확대된 탓입니다.
풀리지 않은 의문도 여전히 남았습니다. 경찰은 왜 장윤기를 '단순 살인' 혐의로 송치했는지, 중요 증거는 왜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는지, 살인과 앞선 스토킹·성폭행 사건을 분리해 수사하도록 결정한 건 누구의 판단이었는지 등입니다. <뉴스토마토>는 장윤기 은폐·조작 사건에 관한 100일을 복기해 봤습니다.
범행 초동수사…'단순 살인'으로 끝날 뻔했다
장윤기는 지난 5월5일 밤 12시10분쯤 광주 광산구 월계동에서 귀가하던 이양을 살해했습니다. 장윤기는 현장에서 달아났으나, 사건 발생 11시간이 지난 후 주거지 인근에서 경찰에 긴급 체포됐습니다.
사실 끔찍한 범행은 이전부터 위험 신호가 감지됐었습니다. 베트남 국적 여성 A씨가 사건 이틀 전 장윤기를 스토킹 혐의로 신고했고, 다음 날엔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는 고소장도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이양 살인 사건과 이주 여성 성폭력 사건을 분리해 수사했습니다. 사건을 맡은 광주광산경찰서 강력팀은 서로 다른 사건의 피의자가 동일인(장윤기)이라는 점에 주목, 5월8일부터 병합수사 필요성을 상부에 여러 차례 전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장윤기는 5월14일 살인 혐의로 먼저 송치됐고 성폭력 사건은 8일 뒤 별도로 검찰에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검찰이 사건을 넘겨받은 이후 국면은 전환됐습니다. 경찰에서 포렌식한 것보다 더 넓은 기간에 걸쳐 장윤기의 휴대전화를 분석해 보니 그가 고교생이던 2019년 무렵부터 동창에게 '여고생을 납치하고 싶다'는 취지로 말한 정황 등이 추가로 확인된 겁니다. 이에 검찰은 지난 6월2일 장윤기를 강간 등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했습니다.
검찰이 경찰과 달리 '강간 등 살인' 혐의를 적용하면서 초동수사 과정에서 성적 범행 목적을 뒷받침할 증거가 제대로 확보·관리됐는지도 논란이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장윤기의 차량에서 발견됐지만, 경찰이 압수하지 않았던 '케이블타이'가 핵심 증거로 떠올랐습니다.
검찰 수사 결과, 당시 광산서 강력팀장이 현장 수사관에게 케이블타이를 그대로 두도록 하고 해당 물건이 찍힌 채증 영상 일부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아울러 현직 경찰관인 장윤기의 부친 장모 경감과 강력팀 간의 유착 의혹도 불거졌습니다.
결국 검찰은 지난 3일 광산서의 박모 강력팀장을 증거인멸 방조·교사와 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팀원 1명도 불구속기소했습니다. 수사의 초점은 장윤기 은폐·조작 사건에 대한 일선 수사팀의 증거 처리 문제에서 당시 수사 지휘 라인 전체로 확대됐습니다.
장윤기 은폐·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과 경찰이 지난 7월2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을 압수수색했다. (사진=뉴시스)
수사선, 윗선으로…'광주 넘어서' 국수본까지
최근 수사의 핵심은 장윤기가 연루된 두 사건을 분리수사를 결정한 경위와 과정입니다. 검찰은 7월15일 광주경찰청에 이어 21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를 압수수색해 당시 사건의 보고·지휘 자료를 확보했습니다. 이후 광주청과 국수본 관계자들을 잇따라 조사하면서 분리수사 결정 과정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광산서가 장윤기 관련 두 사건에 대해 병합수사를 요구하고 광주경찰청을 통해 이런 의견을 국수본에 전달했지만, 국수본은 분리수사를 지시한 걸로 조사됐습니다. 당시 국수본 강력계장이 광주청 강력계장에게 '본부장님 지시 사항'이라는 취지로 방침을 전달한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지난 11일 박성주 전 국수본부장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입건했습니다. 당시 경찰청 형사국장과 강력계장,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과장, 성폭력수사계장 등 국수본 지휘 라인도 피의자로 전환됐습니다.
지난 11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검찰에 입건된 박성주 전 국가수사본부 본부장. (사진=뉴시스)
특히 검찰은 박 전 본부장이 '스토킹·성폭행 사건은 굳이 오픈되지 않게 여성청소년범죄수사과와 협의하라'는 취지로 지시했다는 관계자 진술 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반면 박 전 본부장 측은 살인 사건의 송치 기한이 임박해 그것부터 먼저 검찰로 넘기고, 성폭력 사건은 전담 부서에서 충분히 수사하라는 취지였다고 주장합니다. '오픈되지 않게 하라'는 표현도 피해자를 외부에 노출하지 말라는 의미였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릅니다. 조세희 목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동일한 피의자를 두고 죄명에 따라 두 개 부서가 별도로 나눠서 수사하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라면서도 "단순한 판단 착오라면 형사처벌을 묻기 힘들겠지만, 부당한 외압이나 부실 수사 의도가 있었는지는 명확히 가려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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