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하림 기자] 지난 13일 경기 안산시 반월·시화 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업체 TFS 회의실. 한국산업단지공단의 인공지능 전환(AX) 수준진단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회사의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살펴보며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생산, 품질 관련 데이터가 어떤 방식으로 축적되는지, 설비에서 발생하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할 수 있는지, 이를 실제 AI에 활용할 수 있는지 등을 확인했습니다.
TFS는 2001년부터 자체 ERP를 운영하며 20년 넘게 각종 데이터를 축적해 온 기업입니다. 현장에 모인 전문가들은 기존 데이터 전환 수준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AI 활용을 위해서는 데이터 구조 등에 대한 추가 정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디지털화가 상당 부분 진행된 기업도 실제 AI 활용에는 별도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TFS 공장에서 수준진단을 진행 중인 전문가들. (사진=이하림 기자)
생산 현장에서도 추가적인 자동화 과제가 확인됐습니다. TFS는 용접설비 25대를 운영하고 있지만 제품을 설비에 투입하고 꺼내는 작업과 용접 위치 설정 등은 여전히 작업자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TFS의 이윤상 부사장은 "용접은 로봇, 세팅은 사람이 하는 반자동"이라며 "작업을 완전 자동화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품질검사 역시 자동화를 희망하는 분야로 꼽았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수준진단 참여 기업 대부분 초기 단계 머물러
한국산업단지공단은 반월·시화산단 입주 기업들의 AX 준비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올해 AX 수준진단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약 50개 기업을 목표로 시작한 이번 사업은 현장 전문가와 컨소시엄 수행 기관이 기업의 데이터 관리 체계와 AI 활용 역량, 생산설비 등을 점검하고 기업별 AX 전환 방향을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수준진단은 기업의 자가진단과 전문가 현장진단을 결합해 진행됩니다. 기업이 먼저 별도의 자가진단 표를 통해 점수를 산출하면 전문가들이 생산 현장을 방문해 실제 운영 현황을 확인합니다. 진단 영역은 △AX 전략 및 거버넌스 △데이터 △AI 활용·분석 역량 △실행 기반 및 인프라 △인력 및 조직문화 등 5개 분야입니다. 별도의 심화 문항을 통해 기업이 향후 AI를 우선 적용하고 싶은 공정과 필요한 기술도 조사합니다.
평가 결과를 종합한 이후에는 기업의 AX 준비 수준을 0단계부터 5단계까지로 구분합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반월·시화AX실증산단센터 박래혁 과장은 "0단계는 디지털 전환을 위한 준비조차 이뤄지지 않은 '디지털 준비 전' 단계이며, 1단계는 디지털 기술 도입을 시작하는 '디지털 입문' 단계, 2단계는 데이터를 수집·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데이터 기반' 단계"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기업의 현황을 먼저 파악하고 그에 맞는 솔루션을 지원하기 위해 수준진단을 추진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수준진단 결과 반월·시화산단의 중소 제조기업들은 전반적으로 AX 준비 초기 단계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박 과장은 "현재까지는 1~2단계가 가장 많다"고 밝혔습니다.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기 시작했거나 데이터를 수집·관리할 기초적인 기반을 마련한 기업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 "이번 수준진단 참여 기업들은 산단 전체 입주 기업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있는 편"이라며 "반월·시화산단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0~1단계 기업이 더 많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수준진단 수행 기관 에이아이티스토리의 김지량 이사도 "뿌리산업 기업들이 많은 산단의 특성상 업종별로 AI 활용 수준에 차이가 있다"며 "기업마다 편차가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수행 기관 더비엔아이 안선영 센터장은 "기업에 따라 데이터 자체가 부족하거나 생산 관련 이력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일부 기업은 생산 현황을 수기로 기록하는 등 기초적인 데이터 수집·관리 체계부터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AX 전환 가로막는 자금·정보 부족
중소기업들의 AX 전환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는 자금 부족이 꼽혔습니다. 박 과장은 "중소기업들이 AX 전환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자금 조달에서 원초적인 압박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기업들이 스마트화와 AX 전환을 빠르게 추진하는 반면, 중소기업들은 투자 여력 부족으로 기존 생산 방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설명입니다.
김 이사도 높은 도입 비용을 주요 장애 요인으로 지목했습니다. 김 이사는 "AI는 기술집약적일 뿐 아니라 자본집약적인 사업"이라며 "기업이 자체 AI 모델을 만들거나 생산설비에 적합한 AI를 적용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술과 공급업체에 대한 정보 부족도 걸림돌입니다. 박 과장은 "예를 들어 로봇 팔이나 AI 비전 카메라를 도입하려 해도 어느 공급 기업에서 구매해야 좋은지 기본적인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중소기업은 적합한 기술과 공급업체를 검토할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공급업체의 신뢰성을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업 내부의 AI 활용·분석 역량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안 센터장은 "대부분 데이터와 인프라 쪽은 굉장히 미약하고, AI 활용·분석 능력도 부족한 곳이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인력과 조직문화에 대해서도 아직 걱정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AX 수준진단은 '건강검진'…지원사업 '메뉴판' 제공
한국산업단지공단은 수준진단 결과를 토대로 기업별 AX 전환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박 과장은 "AX 고도화가 필요하면 공급업체를 알아보고, 자금이 필요하다면 관련 지원사업을 ‘메뉴판’식으로 알려준다"며 "올해 나온 정부 지원사업과 유사 과제를 안내하고 내년에도 관련 사업에 지원할 수 있도록 추천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 과장은 이번 수준진단을 '건강검진'에 비유했습니다. 이어 "건강검진을 받으면 현재 상태가 어떻고 문제가 있다면 어느 병원에 가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느냐"며 "AX 수준진단도 기업이 현재 상태와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고 필요한 기술이나 지원사업을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기업마다 데이터 구축 수준과 AI 활용 역량, 투자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기술 도입보다는 각 기업의 상황에 맞는 전환 방향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수준진단은 기업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출발점인 만큼, 이를 실제 생산 현장의 AX 전환으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 이사는 "중소기업들이 자구책으로 노력해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자금과 전문 인력, 기술 정보가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진단 결과를 실질적인 투자와 기술 도입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구체화하는 것이 향후 과제로 꼽힙니다.
이하림 기자 poetr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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