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최수빈 기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8일 1박2일의 한국 실무방문 일정을 끝내고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을 한 줄로 평가하자면 '과거사에 면죄부를 준 셔틀외교 복원'으로 요약되는데요. 한일관계 최대 갈등 현안이자 우리 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였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분명한 사과를 받아내지 못하면서 굴욕 외교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관련 시찰 합의를 놓고서도 '방출 반대' 입장을 명확히 전달하지 못해 오히려 면죄부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결국 일본 정부는 '통 큰' 선물만 받고 돌아가면서 '퍼주기 굴욕외교'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기시다, 끝내 강제동원 사과 안 하고 한국 떠났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취임 이후 첫 방한 일정을 마치고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전용기를 타고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귀국하기 직전 취재진에 "윤석열 대통령과 신뢰관계를 한층 강화하고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한다"고 강조했는데요.
기시다 총리의 방한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3월16~17일 일본 실무방문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이뤄졌는데요. 일본 총리의 방한은 기시다 총리의 취임 후 처음이고, 지난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을 찾은 아베 신조 당시 총리 이후 5년 만입니다. 한일 정상회담을 위한 일본 총리의 방한은 노다 요시히코 당시 총리 이후 12년 만에 성사됐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떠나기 직전까지 바쁘게 움직였는데요. 그는 전날 정오쯤 한국에 도착,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뒤 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날 오전에는 한일의원연맹, 경제6단체장들과 차례로 면담하는 등 약 24시간 동안 바쁜 일정을 보냈습니다.
한일 정상은 소인수회담, 확대회담 등 102분간 정상회담을 진행했는데요. 대통령실은 이번 한일 정상회담의 주요 성과로 △셔틀외교 복원 △후쿠시마 오염수 한국 전문가 시찰단 파견 △한일·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 △화이트리스트 정상화·반도체 공급망 구축 등 경제 협력 강화 등을 꼽았습니다.
방한 일정을 마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8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전용기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 대통령, 되레 기시다에 "너무 부담 갖지 말라"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강제동원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기시다 총리의 입장 표명이었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7일 회견에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원론적 표현 외에도 "윤 대통령의 결단으로 3월6일 발표된 조치(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에 관한 한국 정부에 의한 노력이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분들이 과거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면서도 미래를 위해 마음을 열어준 데 대해 감명받았다. 나도 당시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하게 된 많은 분들이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한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언급하면서 사과 대신 유감 표명으로 갈음했습니다.
외견상으로는 진전된 언급으로 보이지만 사견을 전제로 한 데다, '혹독한 환경'에 대한 책임 주체가 생략된 점, 주어를 적시하지 않은 점 등을 성의 있는 호응 조치로 보기엔 불충분하다는 평가입니다. 특히 기시다 총리는 '어려운 환경 아래 있던 분들이 강제동원 피해자인가'라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또 초미의 관심사였던 일본 측 배상 참여 부분에서도 별도 언급은 없었습니다.
기시다 총리의 과거사 유명 표명은 전적으로 본인 결정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앞서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지난 3일 아키바 다케오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을 만나 기시다 총리의 호응 조치를 바라는 국내 여론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오히려 "기시다 총리에게 너무 부담 갖지 말라고 전해달라"고 당부했고, 기시다 총리는 한국을 방문하기 전 일본 외교 당국자들에게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그건 내게 맡겨달라"는 취지로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아울러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방류 철회'가 아니라 한국 전문가 시찰단의 현장 파견에 합의한 것을 두고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큽니다.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검증하고 조사해야 하는 검증단도 아닌 양국 시찰단으로 봉합하면서 결국 오염수 방류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꼴이라는 비판인데요. 후쿠시마 시찰이 향후 일본의 수산물 수입 압박 명분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또 기시다 총리는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 '적기지 공격 능력(반격 능력) 보유'가 명시된 일본 3대 안보문서 재개정에 대해 사실상 동의할 수는 없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지면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서도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남았습니다.
"일본에 모든 것이 유리한 회담"…전문가들도 혹평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과거사에 대한 분명한 사과나 후쿠시마 오염수 투입의 전면 철회 등 그 어떤 것도 이뤄지지 않은 '굴욕외교'라는 비판이 나오는데요.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전체적으로 일본에 모든 것이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며 "오염수 문제도 결국 시찰단을 파견하기로 했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이 주장하는 연구를 수용하게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꼬집었습니다. 이어 "한일 간 반도체 부분 등 경제적인 협력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대신 중국과의 무역에 한국이 많이 희생되고 있는데, 한일관계가 활성화된다고 해서 엄청나게 감소한 중국과의 무역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내다봤습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당초 기시다 총리의 방한에 기대를 걸었다면 완전한 실망이다"면서 "(애초에) 일본의 사과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일본은 과거 침략에 대해서도 정당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강제동원도 그런 적 없다고 얘기하고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도 자발적으로 돈 벌러 왔다고 얘기하지 않나. (이번 방한은) 과거 역사 인식에 대해서 (일본이)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줬고 윤 대통령도 오케이를 한 것이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일보 진전된 측면도 있었지만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의 역사 인식에 대해서 면죄부를 준 것은 두고두고 아픈 대목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외신도 주목했는데요. 외신들은 양국의 과거사 문제 해결 노력에 대해 조명하면서도 한일 셔틀외교 복원이 중국을 견제하려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또 다른 승리'라고 진단했습니다. 또 한일 양국이 과거사 문제를 놓고 앙금이 해소되지 않은 가운데, 경제·안보 현안 해결을 핑계로 급하게 관계 회복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함께 나왔습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회담까지 마치면서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가 한층 심화된 이른바 '신냉전 기류'가 한반도를 감싸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미일 3각 공조가 날이 갈수록 견고해지는 가운데, 오는 19일부터 일본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가질 한미일 정상회담도 주목되는데요. 한미일 밀착에 따른 북중러 리스크가 커지는 가운데, 향후 윤 대통령이 보일 외교적 행보에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 소인수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최수빈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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