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 속으로' 들어간다며 '용산 시대'를 개막한 대통령입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대통령선거 단골 공약이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은 윤 대통령이 유일했습니다. 이와 함께 윤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시행한 출근길 약식 질의응답(도어스테핑)은 '용산 시대'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국민과의 소통 강화를 내세우며 파격적인 소통 방식을 선택한 도어스테핑은 제왕적 대통령제와 권위주의를 벗어나려는 윤 대통령의 노력으로 평가됐습니다.
하지만 출퇴근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윤 대통령 취임 후 6개월만 볼 수 있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MBC 기자·비서관 공개 설전' 사태 여파로 도어스테핑을 잠정 중단한 이후, 다시는 출근길 만남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신년 기자회견에 이어 취임 1주년 기자회견마저 건너뛰기로 했습니다. 지난 1987년 개헌 이후 취임 이듬해 신년 기자회견과 1주년 기자회견을 모두 건너뛴 대통령은 윤 대통령과 이명박(MB) 전 대통령뿐입니다.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윤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의 불통이 판박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61회로 끝난 약식 질의응답…'가벽' 세운 대통령실
9일 대통령실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해 5월11일부터 11월18일까지 총 61회에 걸쳐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단을 만났습니다. 외부 일정이 있어 출근하지 않는 날이 아니면 거의 매일 취재진과 만나 약 3~4분가량 질의응답을 주고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전 국민은 윤 대통령의 아침 출근길을 지켜보며 주요 현안에 대한 목소리와 국정 철학 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직설적 화법이 수차례 논란을 일으키며 정쟁의 소지가 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최고 권력자의 파격적 소통 행보에 신선함을 느끼며 대선 공약인 '소통하는 대통령'을 지키는 대통령으로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MBC 기자 대통령 전용기 탑승불허를 이유로 MBC 기자와 대통령실 비서관 사이 말다툼이 벌어지면서 도어스테핑은 돌연 중단됐습니다. 당시 대통령실은 "최근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태와 관련해 근본적인 재발 방지 방안 마련 없이는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도어스테핑 잠정 중단을 발표했습니다. 이후 173일째(10일 기준) 재개 여부에 대한 별다른 언급 없이 휴업 상태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어스테핑이 이뤄지던 용산 대통령실 청사 1층 로비엔 지금은 전면 가벽이 설치돼 대통령과의 만남은커녕, 지나가는 모습도 볼 수 없는 상태입니다.
신년·취임 1주년 회견 '생략'…MB정권 '판박이'
윤 대통령은 도어스테핑 중단뿐 아니라 지난 취임 100일 기자회견 이후 취재진 앞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도 신년 기자회견 대신 한 보수 언론사와의 단독 인터뷰로 대체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도 진행하지 않습니다.
대통령 기자회견은 대통령이 국정 비전과 현안에 대해 입장을 직접 밝히고 언론을 매개로 국민과 소통하는 자리입니다. 특히 취임 1주년을 전후해 갖는 기자회견은 새 정부 초기 1년을 점검하고 이후 국정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적 관심도 높습니다.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은 이 같은 이유로 국정 1년차를 점검하는 기자회견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 패싱 논란을 의식한 듯, 지난 2일 용산 대통령실 앞 야외 정원 '파인그라스'에서 열린 대통령실 출입기자단 오찬 자리에 깜짝 등장해 예고없는 '70분 오찬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 대해 "용산 스태프한테 '취임 1주년을 맞아 뭐를 했다'는 그런 자화자찬은 절대 안 된다고 해 놨다"며 "여러분과 그냥 이렇게 맥주나 한 잔 하면서 이야기하는 그런 기자 간담회면 모르겠는데, 자료를 쫙 주고서 잘난 척하는 행사는 국민들 앞에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중단된 출근길 도어스테핑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취임하고 매일 봤잖아요. 그런데 안 보니까 좀 섭섭하죠. 그런데 나는 살이 찌더라고"라며 농담을 건네며 "사실 지금도 습관이 돼 꼭두새벽에 눈을 떠서 언론 기사 스크린을 다 한다. 도어스테핑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지금 용산 우리 수석과 비서관, 행정관들은 거의 꼭두새벽부터 제 질문 공세에 시달린다"고 설명했습니다.
윤 대통령 일방통행식에…여당, '언론검열' 대열 합류
문제는 도어스테핑 중단에다 기자회견 등 공식 소통의 장도 없다 보니 대통령의 발언이나 메시지는 취재진도 각종 회의 모두발언이나 생중계 등을 통해 일방통행식으로 전달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나 '소통하는 대통령'을 대선 공약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언론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은 국민과의 소통을 줄이는 것이고 이로 인한 불통 논란은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도어스테핑 재개가 어렵다면 어떤 형태로든 다른 방식으로 소통을 늘려가야 한다"면서 "불통보다는 소통해서 욕먹는 게 낫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국민의힘은 지난 9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 기사를 검색하면 비판과 비난 기사뿐이라면서 네이버 뉴스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네이버에서 '윤석열'을 검색하면 윤 대통령에 대한 비판과 비난 기사 일색"이라며 "네이버 뉴스를 이제는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취임 1주년이 된 대통령을 향해 비판과 비난 기사로 도배하면 이것을 본 국민이 윤 대통령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울 것"이라며 "이런 네이버 포털 뉴스를 더 이상은 방치해선 안 될 것 같다. 네이버 측에선 알고리즘이라 하는데 '속이고리즘'"이라고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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