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가 TF 따라 좌지우지?'…실시간으로 퍼진 가짜뉴스
문형배 재판관 "TF에서 쓴 대본, 재판관 8명 동의로 진행"
절차에 따른 진행 강조했지만...극우 "TF 좌우 헌재" 음모론
판사 출신 나경원 "촉박한 재판 일정, 모두 TF의 작품" 합세
2025-02-18 10:50:48 2025-02-18 18:20:23
[뉴스토마토 강예슬 기자] 극우 언론과 유튜버를 중심으로 '헌법재판소가 태스크포스(TF) 따라 좌지우지된다'는 가짜뉴스가 생산되고 있습니다. 문형배 헌법재판관(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지난 13일 헌재 탄핵심판 8차 변론기일에서 '헌법연구관으로 꾸려진 TF의 검토를 바탕으로 8명의 헌재 재판관이 모두 동의해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는 취지로 말을 했는데, 극우 언론과 유튜버가 이를 '헌재 뒤에 권한 없는 TF가 존재하고, TF가 헌재 뒤에서 재판을 좌우한다'는 식으로 왜곡하는 겁니다. 탄핵심판이 막바지에 이르자 탄핵 반대 세력의 가짜뉴스가 도를 넘는 모양입니다.   
 
18일 <뉴스토마토> 취재에 따르면 '헌재가 TF 결정에 따라 움직인다'는 식의 음모론은 지난 13일 '증인신청 평의에 대한 결과의 방향을 정해두고 있느냐'는 취지로 윤석열씨 측 법률대리인이 질문하자, 문형배 재판관이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왼쪽),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갈무리(오른쪽). (이미지=뉴스토마토)
 
당시는 헌재가 20일 10차 변론기일을 열어 한덕수 국무총리,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조지호 전 경찰청장을 추가 증인 신문을 하겠다는 결정이 나오기 전입니다. 이날 재판부는 18일 9차 변론기일에서 국회 측과 윤씨 측에 입장을 정리·발표할 시간을 2시간씩 주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자 윤씨 측 대리인은 "저희가 추가신청한 증인에 대해서 재판부가 평의를 거치신다고 하셨는데, 지금 화요일에 각 두시간씩 부여하신 의미가 증인신청 평의에 대한 결과를 일단 어느 방향을 가지고 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열려있는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특정 방향을 정해두고 평의하는 것이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인 겁니다. 
 
문 재판관은 "아니 말 그대로"라며 "증인신청 평의는 내일(14일) 거치니 뭘 말씀드릴 수는 없다. 지금 8차 기일까지 주장도 하고 입증도 하셨으면 지금 정도는 한 번쯤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어 손에 종이뭉치를 들어 보이고는 "마지막으로 말씀드리는데, 자꾸 오해하시는데 이게 제가 진행하는 대본"이라며 "이게 제가 쓴 게 아닙니다. TF에서 다 올라온 것이고, 대본에 대해서 (재판관) 여덟 분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 때문에 말을 하는 것이지, 거기에 대해서 제가 덧붙여서 하는 것은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문 재판관은 자신이 재판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헌재 연구관의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내용을 두고 8명의 재판관의 동의 아래 절차를 진행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헌재는 헌법재판소법 19조에 따라 헌법연구관을 둡니다. 특정직국가공무원인 헌법연구관은 헌재소장의 명을 받아 사건의 심리·심판에 관한 조사·연구에 종사합니다. 헌재에 따르면 현재 헌법연구관은 모두 66명입니다. 이 중 10여명이 윤석열씨 탄핵심판 TF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합법적 절차에 따라 헌법재판관이 진행하는 헌재 심판을 조력하는 겁니다. 
 
하지만 극우 언론과 유튜버는 'TF', '대본'이라는 문 재판관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해석해, 헌재 뒤에 불법적 배후가 있는 것처럼 말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파이낸스투데이'는 16일 기사에서 "헌재 내 헌법연구관이 헌법재판관의 판결에 조금이라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라면, 현재 헌법재판소는 당장 모든 재판을 중단하고 헌법재판소의 존폐 여부를 따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습니다. 구독자 46만명을 보유한 강신업TV는 파이낸스투데이 기사 내용을 그대로 읽어주며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짜뉴스는 지지자들에게 일파만파 퍼졌습니다. 윤씨의 탄핵을 반대하기 위한 지지층을 결집시킬 목적으로 윤씨 측 대리인단이 만든 '대통령 국민변호인단' 누리집에는 "상식적으로 헌재 TF가 재판을 좌지우지하는 게 말이 안 된다" "문형배 TF 명단, 이들을 파묘합시다"란 제목의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정치권도 가세했습니다. 판사 출신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16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리고 "피소추인에 대한 과도한 방어권 제한, 재판 생중계 불허, 한덕수 권란대행 탄핵 직무정지에 대한 법해석, 촉박한 재판일정 강행, 탄핵소추 내용 내란죄 삭제, 모든 것이 이 TF의 작품이었던 것인가"라며 "대한민국 법치주의의 치명적 위기"라고 주장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우려스럽다고 입을 모읍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판장이라 있더라도 법정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재판부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재판부가 합의를 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자료조사나 방향성에 대해서 사전의 논의가 있어야 한다"면서 "그런 방향을 논의하고 준비하는 것이 헌법연구관이고, 이들을 TF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 교수는 "대본은 재판 진행 절차에 대해 하나의 틀을 마련해 놓은 것으로 일종의 느슨한 시나리오"라며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할 때도 그렇게 한다"고 했습니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국민의힘이란 정당은 정치담론의 생산자가 돼야 하는데, 주객이 전도된 상태"라며 "표가 되고 돈이 된다고 생각하니 설사 그것이 사실이 아니고 헌법·법률에 부합하지 않아도 에코(확산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강예슬 기자 yea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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