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문성주 기자) 필리핀 은행 계좌 보급률은 30% 수준입니다. 필리핀에선 카드결제보다는 현금이나 QR 기반 결제가 흔한 거래 방식인데요. 계좌 보급률이 낮은 데에는 금산분리가 없는 특수성과 국민들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큰 요인입니다.
필리핀의 전체 금융산업 규모는 지난 2023년 상반기 기준 23.4조페소(한화 약 591조3180억원)로 집계됐습니다. 이 중 은행이 22.7조페소(한화 약 573조4020억원)로 전체의 97%에 달하는 등 금융산업 내에서 은행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과 달리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금산분리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대기업은 은행을 소유하고 운영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소매·유통 대기업인 SM 그룹은 총자산 기준 1위와 5위 은행인 BDO 유니뱅크(BDO Unibank)와 차이나 뱅크(China Bank) 두 은행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통신·부동산 대기업인 아얄라 코퍼레이션(Ayala Corporation)은 BPI(Bank of the Philippine Islands)를 운영 중입니다.
금산분리가 안 돼 있기 때문에 필리핀 대기업들은 돈이 필요할 때 자회사 은행을 통해 자금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대기업이 소유한 은행들은 신용카드도 발급하기에 계좌 소유 고객 중 신용도가 높은 신용카드 고객을 발굴하기 위해 계좌 개설부터 까다로운 관문을 유지합니다.
필리핀 소매·유통 대기업인 SM그룹은 BDO Unibank와 China Bank 두 은행을 소유하고 있다. (사진= 뉴스토마토)
반면 일반 국민의 금융 접근성은 좋지 않습니다. 필리핀에선 은행 계좌를 개설하려고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필리핀에 근무하는 한국 주재원 A씨는 "한국과는 달리 계좌 개설이나 대출을 받으려 해도 2개월 이상 걸린다고 봐야 한다"면서 "필리핀은 고객과의 약속보다는 담당자의 업무 처리 프로세스가 더 중요한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계좌 유지 비용이 비싸고 돈을 맡겨도 이자도 얼마 안 됩니다. 필리핀 정규직 근로자는 월 평균 1만8423페소(한화 약 45만원) 정도를 받는데 필리핀 은행들은 계좌 개설 시 대체로 매월 평균 잔액 1만페소 이상을 유지토록 강제합니다. 또 적금과 예금, 파킹통장 등이 활성화되지 않아 금리도 낮습니다. 주재원 B씨는 "필리핀 현지 은행에 1억원을 예금으로 안치하고자 문의하니 사실상 0%대를 제시해 당황한 적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필리핀에서는 은행 계좌를 개설하려고 해도 까다로운 절차로 인해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우리웰스뱅크 직원들의 업무 모습으로 내용과 무관 (사진= 뉴스토마토)
그러다 보니 필리핀 국민에게 은행보다는 마이크로파이낸스가 대중화돼 있습니다. 필리핀에선 길을 걷다 보면 빨간 간판의 점포를 자주 볼 수 있는데요. 은행이 아닌데도 송금과 보험, 대출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다룬다는 안내가 적혀 있습니다. '엠 루엘리에(M Lhuillier)'라는 마이크로파이낸스인데, '세부아나(CEBUANA)'와 함께 많은 필리핀인들이 금융 서비스를 위해 은행보다 많이 찾는 곳입니다.
계좌 보급률이 낮은 필리핀에선 마이크로파이낸스를 통해 계좌 없이도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한국 주재원 C씨는 "마이크로파이낸스는 전당포 형식으로 물건을 맡기고 돈을 빌릴 수도 있고 금융 서비스까지 확대하고 있어 필리핀 사람들은 마이크로파이낸스를 많이 이용한다"고 전했습니다.
필리핀에선 길을 걷다 보면 대표적인 마이크로파이낸스 업체인 'M Lhuillier'가 자주 보인다. (사진= 뉴스토마토)
'M Lhuillier'에서는 송금, 환전, 보험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진= 뉴스토마토)
<(10)편에서 계속>
세부=문성주 기자 moonsj709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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