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불장 수수방관하더니 늑장 '규제'…끝까지 '정책 실기'
강남3구·용산구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반포·용산까지 확대 적용
2025-03-19 17:58:39 2025-03-19 17:58:39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정부와 서울시가 19일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35일 만에 번복했습니다. 강남 3구에서 시작된 집값 급등이 다른 지역으로 번져나가자, 해제 구역을 재지정하는 데서 나아가 더 넓은 구역을 새로 묶어버렸는데요. 서울 주요 지역에 대한 토허제 해제는 주택시장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게 자명한데도 섣부르게 풀었다가 시장 혼란만 가중한 꼴입니다. 서울시는 전문가나 국토교통부와 충분한 협의 없이 '대선용 정책'을 졸속 추진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국토부는 토허제 해제로 지난 한 달 동안 집값 상승세가 굳어진 이후에야 개입에 나서며 대응력의 한계를 고스란히 노출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서울 토지거래허가구역 3배로..."반시장 규제 철폐" 무색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한국은행·금융감독원 등 관계기관과 회의를 열고,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 전체 아파트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는 내용의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지난달 12일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과 송파구 잠실에 푼 것을 강남·송파구 전역으로 확대하고, 서초·용산구도 새로 포함한 시킨 겁니다. 토허구역을 특정 구역·동이 아닌 구 단위로 한꺼번에 지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서울 내 토허구역은 52.79㎢에서 163.96㎢로 3배가 됐는데, 이는 서울시 전체 면적(605.24㎢)의 27% 수준입니다.
 
이에 따라 서울 아파트 40만 가구에 대해 전세보증금을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가 원천 금지됐습니다. 통상적으로 토허구역은 1년씩 지정하지만, 이번에는 6개월(오는 24일부터 9월30일까지)로 설정했는데요. 정부는 이번 토허구역 지정 이후에도 시장이 가라앉지 않는다면 추가 조치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입니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을 다시 조이기로 했습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자금대출 보증비율 하향(100%→90%)을 5월로 2달 앞당기기로 했는데요. 보증비율이 낮아지면 은행이 손해를 볼 수 있게 돼 대출 심사가 깐깐해질 전망입니다. 
 
정부는 또 디딤돌 대출 등 정책대출 증가세가 주택시장 과열 요인으로 확인될 경우, 대출금리 추가 인상을 즉각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오는 24일부터 무주택자를 위한 정책대출 금리를 0.2%포인트 인상하기로 한 가운데, 추가 인상 가능성을 언급한 겁니다. 
 
결과적으로 토허제 해제는 '불합리한 규제 철폐'의 필요성을 내세웠지만, 세밀한 효과 분석과 적정한 시점 선정이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되려 추가 규제만 야기하게 된 셈입니다. 한국부동산원이 지난 13일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 상승률은 0.2%(10일 기준)로, 2월 둘째 주(0.02%)와 비교해 한 달 만에 10배가 뛰었습니다. 
 
강남구(0.69%)와 서초구(0.62%)는 아파트값 상승률은 2018년 1월 이후 최고였습니다. 규제 해제와 관계없는 마포·용산·성동구 등으로도 가격 상승세가 번졌습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서울 주간 거래량은 지난해 약 1000건에서 2000건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13주가 소요됐으나, 최근에는 그 기간이 4주로 단축된 걸로 집계됐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발표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문가 의견 들었을 리 없어 …사실상 대선용"
 
그러나 오세훈 서울시장은 해제 이후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서울시도 지난달 28일 배포한 자료에서 "잠실·삼성·대치·청담 아파트 거래 분석 결과, 토허구역 해제 직전 대비 거래량은 증가했으나, 평균 거래가격은 오히려 하락해 전반적인 가격급등 현상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는데요. 그러다 돌연 지난 17일에는 입장을 바꿔 "거래량이 70% 늘고 매매가격은 2.7%(중형 기준) 상승했다"는 설명을 내놓았습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정치적 판단'이 개입됐다고 비판합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서울시가 전문가나 국토부와 충분히 협의도 안 한 것 같다"며 "전문가 의견을 다양하게 들었으면 토허제 해제를 이런 식으로 할 리가 없다. 대선용으로 나온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부동산 가격은 하방 경직성이 있는 만큼, 한 번 오른 가격을 제 자리로 원위치하기가 어렵다"며 "전세대출 보증한도가 줄어들고 주택자금 대출도 규제되면, 전세의 월세화도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권대중 서강대 교수는 "토허제 해제를 하려면 제1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과 전세금 대출 다 중단된 지난해에 했어야 했다"며 "내년 공급 물량 적어서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는 만큼, 토허제 재지정 기간은 연장될 걸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한편,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토허제 해제 이후 잠실· 삼성·대치·청담동을 필두로 한 강남권 집값 상승이 오른다'는 지적에 "토허제 해제는 서울시 자율성 보장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지난 2018년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여의도·용산 통개발'을 언급한 후 서울 집값이 상승하자,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사실상 제동을 걸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토부와 서울시가 갈등을 벌이다 결국 서울시가 개발 계획을 접었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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