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홈플러스 사태가 고려아연 현 경영진과 영풍·MBK 연합의 경영권 분쟁에 변수로 부상했습니다.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한 영풍 측이 승기를 쥘 것으로 예상됐으나 금융당국이 홈플러스 채권 발행 과정을 조사하겠다며 MBK파트너스를 정조준, 그 파장이 고려아연 주총에까지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번 주총에서 누가 이기든 양측의 싸움은 계속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서로 비방하며 의결권 모으기
2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전일 장마감 후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사실을 공시했습니다.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증거보전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내용입니다. 해당 증거는 지난 1월23일에 진행한 고려아연 임시주총 당시의 회의록과 의사록, 속기록, 또 주총 진행 상황을 기록한 녹음 및 영상, 주총 안건별 집계표 등 주총 당시의 자료들입니다.
이와 함께 영풍이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에 대한 반박 의견도 냈습니다. 영풍과 MBK가 고려아연 경영권을 갖게 될 경우 기업가치가 중대하게 훼손되고, 영풍 측 주주 제안에 따라 임의적립금이 대규모로 감소할 경우 신사업 추진이 위축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현 경영진을 지지해달라는 내용입니다.
하루 전인 18일 영풍-MBK 측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등 현 경영진이 우호 세력 지분을 늘리기 위해 고려아연 자사주를 교환하거나 3자 배정 유상증자에 활용했고, 자사주 공개매수에 회사 보유 1조8000억원을 소진했으며, 자본시장법 위반을 감소하고 무리하게 유상증자를 시도하다 감독당국의 개입으로 철회했음을 환기시켰습니다. 또 1월 임시주총에서 상호주 꼼수로 영풍 의결권을 제한한 사실을 밝히고, 앞으로도 이와 같은 주주 간 이해 상충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기업가치 보호를 위해 표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꼼수엔 꼼수로
고려아연이 임시주총 당시의 증거보전을 막으려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주총을 앞두고 이 같은 법정 공방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앞서 1월 임시주총 당시 고려아연은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할 목적으로 고려아연이 보유하고 있던 영풍 지분 10.3%를 손자회사인 SMC에 넘겼습니다. 고려아연→SMH→SMC→영풍→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만들어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할 목적이었습니다. SMC가 영풍 지분을 가질 경우 영풍은 고려아연 의결권을 최대 3%까지만 행사할 수 있다는 상호주 규정 때문입니다.
이 상태로 임시주총이 진행돼 영풍은 보유지분만큼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고려아연은 이사수 제한,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 등 안건을 통과시켰고 영풍 측의 이사 선임 제안 등을 모두 부결시켰습니다. 이에 영풍 측이 즉각 법원에 소를 제기했고 2월11일 법원은 집중투표제 등을 제외한 고려아연의 이사 선임 등을 모두 무효화했습니다.
영풍은 고려아연에 일격을 당한 뒤 자신들도 자회사 와이피씨(YPC)를 신설해 이곳으로 고려아연 보유지분을 전량 현물출자 했습니다. 고려아연 최대주주가 와이피씨가 된 겁니다.
이대로 정기주총이 열린다면 영풍이 다시 이사를 대거 선임해 승기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12일 고려아연은 다시 상호주 카드를 꺼냈습니다. 이번엔 SMC에 맡겼던 영풍 지분 10.3%를 자회사인 SMH로 현물배당해 옮겨 SMC를 뺀 고려아연→SMH→영풍→고려아연 구조를 만든 겁니다. 또 SMC는 유한회사라서 제재를 받았지만 SMH는 주식회사라서 괜찮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ISS, 영풍·MBK 손 들어줘
양측의 공방은 주총을 일주일 앞둔 지금까지도 계속 진행 중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홈플러스 사태가 변수로 급부상했습니다.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을 신청해 채권 상환에도 차질이 생겼는데요. 채권 중 개인들이 증권사를 통해 투자한 전자단기사채가 문제가 됐습니다. 처음엔 카드회사가 홈플러스로부터 받을 결제대금을 담보로 발행한 이 채권을 상거래채권으로 볼 것이냐 금융채권으로 볼 것이냐가 이슈였는데, 이젠 홈플러스가 신용등급 전망 하향 사실을 미리 인지하고 채권을 발행했느냐로 확전됐습니다. 그 타깃은 홈플러스의 대주주 MBK파트너스입니다. 여론이 비등해지자 국회가 움직였고 결국 금융감독원이 나섰습니다.
홈플러스 사태에서 MBK의 법적 책임 유무와 고려아연 주총은 별개의 사안입니다. 하지만 국가 기간산업을 약탈적 사모펀드로부터 보호해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고려아연 현 경영진과, 최 회장 개인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회사 자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거버넌스를 내건 영풍·MBK 연합의 대의명분 싸움에 균열 가능성이 생긴 것입니다.
지분에선 아직 영풍 측이 앞서 있으나 홈플러스 사태로 여론이 쏠릴 경우 나머지 주주들이 누구 편을 들 것이냐가 중요해집니다. 국민연금도 지분율을 줄이긴 했지만 아직 4.51%를 보유 중입니다.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을 거란 전망이 많지만, 이번 사태로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이번 고려아연 주총 안건에 대해 최 회장 측이 추천한 이사 후보 7명 전원을 반대, 영풍·MBK 측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ISS는 현 경영진이 영풍·MBK의 의결권을 제한하려는 시도가 올바른 지배구조와 모순되며, 이사회 결정엔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같은 이유로 현 감사위원 3명을 재선임하는 안건도 반대했습니다. 반대로 영풍·MBK 측이 추천한 17명 중 김광일, 권광석, 손호상, 정창화 등 4명의 후보는 찬성했습니다. 다만 이사 수 상한을 두자는 고려아연 측 정관변경 제안에는 찬성했습니다.
200만원→85만원…그래도 공매도 타깃
ISS는 권고할 뿐 강제성은 없으므로 주주들이 이를 따를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누가 이기고 지든 이것으로 경영권 싸움이 끝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이번 정기주총은 지난해 말 주주명부를 기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 올해 발생한 지분 변경은 직접적인 영향이 없습니다. 즉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계속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홈플러스 사태로 여론이 거세져 전방위로 압박, MBK가 두 손 들고 물러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지분 싸움은 이어질 전망입니다.
다만 경영권 싸움이 계속되는 것이 주가의 고공행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양측의 경영권 분쟁이 길어지면서 주가도 그때그때 힘의 쏠림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입니다. 12월 한때 200만원까지 치솟았던 고려아연 주가는 세간의 관심과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약세로 전환했는데요. 1월 임시주총에서 고려아연이 승리한 후 하락 안정이 굳어지는 것처럼 보였으나 최근 법정 공방이 다시 격화하면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가에 미치는 경영권 다툼이란 재료의 영향력이 힘을 잃어갈수록 비싼 가격이 부각될 수 있음은 주의해야 합니다. 고려아연 주가는 고점 대비 크게 하락한 상태이지만 여전히 주가수익비율(PER) 90배 수준으로 매우 높습니다. 평소엔 20배를 넘지 않았습니다.
오는 31일 주식시장에선 공매도가 다시 시작될 예정입니다. 경영권 싸움이 계속되더라도 공매도가 끼어들 경우 지금의 고평가된 주가는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어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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