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 이슈 피한 채 덕담만 오간 회동
상법 개정안, 반도체법 등 논의 없어
노타이 이 회장, 로비서 이 대표 영접
이재명 "청년에 삼성 역량 쏟아 감사"
2025-03-20 16:29:26 2025-03-20 18:55:29
[뉴스토마토 오세은 기자] 차기 대선 유력 주자로 꼽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재계 맏형인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의 회동은 민감한 이슈에 대한 의견 교환보다, 덕담을 주로 나눈 상견례에 가까웠습니다. 상법 개정안과 반도체특별법, 트럼프발 통상전쟁, 탄핵 등 재계가 당면한 난관 속에서 이뤄지는 회동인 탓에 정재계의 관심이 집중돼 왔습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두 사람은 구체적 현안에 대한 대화는 삼간 채 당부와 감사의 인사로 10분간의 짧은 비공개 면담을 마쳤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오른쪽)가 20일 서울 강남구 멀티캠퍼스 역삼 SSAFY 서울캠퍼스에서 열린 청년 취업 지원을 위한 현장 간담회에 참석해 로비에 마중 나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20일 오전,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삼성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SAFY·싸피)를 찾았습니다. 이에 앞서 싸피 아카데미 건물에 도착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오늘 어떤 것에 대해 논의할 것이냐”라는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고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두 사람 회동에 쏠린 사회적 관심을 보여주듯 이 대표 방문 예정 시각 한 시간 전부터 건물 1층은 취재진들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싸피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삼성전자와 고용노동부가 국내 정보기술(IT) 생태계 저변 확대와 청년 취업 경쟁력 향상을 목표로 함께 세운 아카데미입니다.
 
이 대표가 도착하기 직전 1층 로비로 내려온 이 회장은 노타이에 짙은 감색 정장 차림이었습니다. 이 회장은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정문을 응시하며 이 대표를 기다렸습니다. 약속 시각에 건물 안으로 들어선 이 대표는 이 회장을 보자마자 “왜 나와 계시냐”며 웃으며 인사를 건넸고, 이 회장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습니다.
 
이 회장 안내에 따라 두 사람은 환담 자리가 마련된 11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바쁘신 일정에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께서 싸피에 방문해주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사회와의 동행이라는 믿음 아래 대한민국의 미래, 청년들의 미래를 위해, 사회 공헌을 떠나서 미래에 투자한다는 마음으로 지금까지 (싸피를) 끌고 왔다”고 했습니다. 이에 이 대표는 “회장님 뵙게 돼 반갑고 삼성 방문하게 돼 영광”이라며 “삼성이 현재 어려움 이겨내고 그 과정에서 훌륭한 생태계가 만들어지면서 새로운 세상을 확실하게 열어가길 기대한다”고 화답했습니다. 이 대표는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국민에게 희망을 만드는 일인데, 우리가 살아온 시대와 달리 청년이 기회를 찾기 어렵다"며 "청년들이 기회를 찾는 길에 삼성이 역량을 쏟아주신 데 감사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10분간 비공개 회담을 가졌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삼성 청년 소프트에어 아카데미'(SSAFY·싸피)를 방문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맞이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에 따르면 비공개 회담에서 이 회장은 “코로나 팬데믹 시절 최소잔여형주사기(LSD) 개발과 제조 공정을 자동화하는 ‘스마트공장’을 중소기업들이 구축할 수 있도록 삼성이 지원, 이를 통해 당시 코로나 극복에 삼성이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보람찬 일이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삼성전자는 코로나19 기간이었던 지난 2021년 백신을 낭비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LSD를 생산하는 기업에 스마트공장 구축 지원에 나섰습니다. 삼성 지원을 받은 LSD 기업은 월 1000만대 이상의 대량 생산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비공개 회담 이후 두 사람은 싸피 프로그램 소개 및 성과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전국에 있는 5개 지역 캠퍼스 교육생들과 온라인으로 미팅을 가졌습니다. 현장에 있던 교육생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한 두 사람은 1시간여의 만남을 뒤로하고 헤어졌습니다. 이 회장은 이 대표 가는 길에도 직접 나와 배웅했습니다.
 
이번 회동은 공식적으로 사피 프로그램 교육생과 이 대표가 만나는 자리에 이 회장이 동석한 모양새입니다. 이 회장과 이 대표의 비공개 면담 시간이 고작 10분이어서 업계가 주목한 상법 개정안이나 반도체특별법 등 굵직한 현안 논의는 어려웠던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재명(왼쪽 다섯번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용(왼쪽 첫번째) 삼성전자 회장이 20일 오전 서울 강남구 멀티캠퍼스 역삼 SSAFY 서울캠퍼스에서 교육생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앞선 13일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이 법이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재계에서는 적잖은 우려가 나왔습니다. 단순히 주가가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주주들이 이사에게 법적 책임을 추궁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이사들이 임기 내내 소송에 시달릴 것이란 것이 재계의 입장입니다. 결국 소송이 무서워 대형 인수합병(M&A)이나 연구개발(R&D)에 과감한 투자를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반도체특별법은 정부가 반도체 산업에 재정을 지원해주고, 반도체 연구직은 주 52시간제를 적용하지 않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국내 산업계는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차원에서 R&D 분야에 한해 주 52시간 근로 제한 규정을 제외해달라는 목소리를 높여왔습니다. 앞선 19일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도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부회장)은 "핵심 개발자들이 연장근무를 더 하고 싶고 더 많은 연구 시간에 집중하고 싶어도 주 52시간제 규제로 개발 일정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 현재 실정"이라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상법 등 굵직한 현안을 논의하기엔 어려웠을 것”이라며 “더욱이 민주당에서 청년 취업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싸피를 찾은 것이기 때문에 이 밖에 현안을 논의하기도 어렵지 않았겠냐”라고 했습니다.
 
오세은 기자 os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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