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성은 기자] 여야가 18년 만에 국민연금 개혁 합의를 이루면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후폭풍이 거셉니다.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을 기존 40%에서 43%로 올린 것을 두고 청년세대에 '독박'을 씌웠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됩니다. 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정부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촉구할 정도입니다.
'청년세대 독박론'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립니다. 기성세대에게 약속한 연금과 향후 미래세대가 낼 수 있는 보험료를 감안하면 재정 문제가 심각하다는 관점이 있는 반면, 기성세대가 적립한 기금이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연금 개혁이 여야를 넘어 '세대 갈등'으로 번지는 모습입니다.
"미래세대 '풀 대출'"…여당, '거부권' 요구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당 인사들은 지난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연금법 개정안)'을 두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연금법 개정안은 '내는 돈'인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매년 0.5%포인트씩 인상해 오는 2033년 13%에 도달하도록 하고, 2028년 40%에 다다르는 소득대체율(올해 41.5%)을 내년부터 43%로 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더 내고 더 받는' 구조입니다. 인구 구조와 경제 상황에 따라 연금액 등을 자동 조정하는 '자동조정정치' 도입 여부 등은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꾸려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여권 인사들은 미래세대 부담만 늘리는 '개악'이라며, 정부가 연금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소득대체율을 40%에서 43%로 올리는 것은 이번 법 개정 최악의 독소조항"이라며 "소득대체율은 한번 올리고 나면 다시 내리기가 매우 어렵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이번에 급한 대로 '13%·43%'로 일단 가고 구조개혁을 하면 된다는 일각의 주장은 연금개혁을 한번 하기가 정치적으로,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겪어보지 못하고 하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면서 '모든 판단 기준을 미래세대 이익에 두겠다'고 언급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향해 "청년 미래를 앗아가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기 바란다"고 촉구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어렵게 합의한 것이라는 말이 청년 착취, 청년 독박을 정당화할 수 없다"며 "청년세대를 외면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미래세대에 '풀 대출'을 당겨 부담을 늘리는 야합을 한 것 아니냐"고 평가했습니다. 연금을 계에 비유하며 "강제로 곗돈을 넣으라는데 지금 넣는 곗돈과 앞 순번의 기성세대가 타갈 곗돈을 생각해보면 숫자가 안 맞다"면서 "계주와 다른 계원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계가 무너지면 안 된다'라는 당위만 반복하니 젊은 계원들이 반발하는 것"이라고 직격했습니다.
청년 의원들까지 가세…진화 나선 민주당
김재섭·우재준 국민의힘 의원과 이소영·장철민·전용기 민주당 의원, 천하람·이주영 개혁신당 의원 등은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연금개혁 논의 과정에 청년세대의 참여 보장을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연금 개혁에 대한 불만 목소리가 커지자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번 합의는 경직됐던 연금개혁 논의를 보다 유연하게 지속적으로 추진해 가자는 방향성의 제시"라며 "세대별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이 아닌 우리 공동체의 지향점을 찾아가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진화에 나섰습니다.
민주당 정책위의장인 진성준 의원은 "(연금액이 줄어들면) 노령 세대의 생계와 생활을 다른 방식으로 지원해야 하고, 장차 연금을 받게 될 청년의 연금액 자체도 줄어들게 된다"며 "국민연금제도의 본질과 취지를 애써 모른 척하면서 이치에 닿지 않는 '거짓 선동'을 멈추길 바란다"고 응수했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연금개혁에 대해 "완성이 아니라 이제 논의의 초입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청년 의원들의 연금 개혁 논의 참여를 긍정적으로 보는 취지의 발언도 했습니다.
한국대학총학생회공동포럼 대학생들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국민연금 개혁 대응 전국 대학 총학생회 공동행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청년세대 '독'일까…전문가 의견도 엇갈려
이번 연금 개혁이 청년세대의 짐만 가중시킨다는 비판에 전문가들도 시각차를 보입니다. 현재 기성세대에게 약속한 연금을 감당하기에도 벅찬 상황에서 소득대체율을 올린 점은 개혁이 아니라 후퇴하는 선택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번 연금 개혁으로 보험료율이 오르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한 상황이라는 진단도 있습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소득대체율을 30%로 낮추고 보험료율을 10%포인트 올려도 2070년에 가면 26.5%를 거둬야 연금을 줄 수 있다"며 "이게 현실이지만 (관계자들은) 이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또 "지난해 9월 정부가 내놓은 안을 보면, 소득대체율을 42%로 올리고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도록 했다"며 "(이번 합의에서) 자동조정장치를 빼고 소득대체율을 1%포인트 더 올려놨으니 (연금 제도는) 지속 불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부연했습니다.
반면 기성세대가 적립해온 기금과 그로부터 나오는 기금 수익이 있어 '청년세대 독박론'이 맞지 않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기성세대도 포기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세대 갈등'을 조장하는 프레임 생성을 자중해야 한다는 일침입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의 고령화가 어느 나라보다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적립 기금이 있고 기금운용 수익이 뒷받침해주고 있다"며 "기금이 없다면 40% 급여율 시 부담해야 하는 보험률은 19.7%, 43% 급여율 땐 21.2%"라고 설명했습니다.
석 교수는 "기성세대도 억울한 부분이 있다"며 "기성세대는 연금 개혁을 안 해도 연금을 받는 데 지장이 없으나, 청년세대가 연금을 받게 하기 위한 공동체적 생각에서 동참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어 "연금 없이 고령 사회를 넘어갈 수는 없다"며 "세대 갈등 프레임은 신뢰 자산을 하산시키는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김성은 기자 kse5865@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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