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조 체코 원전' 급제동…사실상 '외교 참사'
최종 계약 서명 전날 "절차 중단"…낌새도 파악 못한 한국 정부
2025-05-07 18:07:23 2025-05-08 10:51:30
[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한국수자력원자원(한수원)의 체코 신규 원전 건설사업이 최종 계약서 서명을 단 하루 앞두고 멈춰 섰습니다. 체코 법원이 프랑스전력공사(EDF) 측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인데요. 프로젝트가 무산될 가능성은 작지만, 일정 자체가 불투명해지면서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계약 체결식에 참석하기 위해 체코로 출국한 특사단은 관련 기류조차 감지하지 못한 채 프라하행 비행기에서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불투명해진 '사상 최대 원전수출'
 
체코 브르노 지방법원은 6일(현지시간) 한수원과 원전 발주사인 체코전력공사 자회사 간 계약 체결을 중지하라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프랑스 EDF는 두코바니 원전 건설 사업 입찰에서 한수원과 막판까지 경쟁을 벌이다, 지난해 7월 탈락한 업체인데요. 
 
EDF는 체코 반독점당국에 '한수원이 외국 보조금에 관한 규정을 어겼다'는 취지로 이의를 제기하고, 이의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항소하는 등 한수원의 사업 수주를 끈질기게 문제 삼고 있습니다. 한수원은 두코바니 원전 입찰에서 ㎾당 건설단가를 약 3571달러로 제시했는데, 이는 EDF(7931달러)나 미국 웨스팅하우스(7800달러)의 제안가의 절반 이하입니다.  
 
수원이 한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덤핑 수준의 입찰을 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체코 반독점당국은 항소마저 기각했고,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는 5월7일을 한수원과의 본계약 체결일로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EDF는 지난 2일 체코 법원에 "당국이 입찰 절차에 대한 이의신청 처리를 거부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상태였습니다.
 
이에 법원이 "체코전력공사와 한수원 간 계약이 체결된다면, 프랑스 입찰자가 소송에서 유리한 판결을 얻고도 계약을 따낼 기회를 잃게 된다"며 한수원과 체코전략공사 측 신규 원전 최종계약을 금지한 건데요. 기한은 '이번 소송이 종료될 때까지'입니다. 아울러 법원은 이날 결정에 대해 최고행정법원에 항소할 수 있다고도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7일 양국 정부·의회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프라하에서 열릴 예정이던 최종 계약서 서명식은 무산됐습니다. 체코 법원의 가처분 결정 소식이 전해진 시각, 주무 장관인 안덕근 장관과 대통령특사단으로 임명된 정부·국회 합동 대표단은 체코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었습니다. 
 
안 장관은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체코 반독점당국이 이의신청을 기각했고, 체코 정부가 계약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우리 측을 초청했다"며 "며칠일지 몇 달일지 예단할 수 없지만 신속하고 정상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한국 정부 차원의 판단'은 없었다는 뜻입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6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 도착 직후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황주호 한수원 사장. (사진=연합뉴스)
 
체코 법원 최종 판결까지…원전 계약 '보류'
 
EDF는 연기를 환영하며, "이번 연기로 자사 권리의 잠재적 침해 여부를 철저히 평가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확보됐다"고 밝혔습니다. 또 "최근 제정된 외국 보조금 규정을 통해, 유럽 위원회와의 지속적인 조사를 포함해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하는 데 전념할 것"이라며 공방을 예고했습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체코전력공사는 본안 소송에 앞서 이날 가처분 결정에 대한 항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가처분 결정에 대한 항소와 함께 EDF가 제기한 본안 소송이 '투 트랙'으로 진행될 걸로 보입니다.
 
향후 소송에서 EDF의 승소 가능성은 작다는 게 중론입니다. 그러나 최고행정법원에서 가처분 결정에 대한 항소가 받아들여지거나, 본안 소송이 신속히 진행돼 법적 리스크가 해소될 때까지 최종 계약이 미뤄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체코 야당인 긍정당(ANO) 등 체코 정치권을 중심으로 원전 건설 계약 시기를 10월 총선 이후로 넘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질 수도 있습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 긍정당은 "두코바니 원전 전체 사업비 4000억코루나 중 절반을 자국기업이 갖고 간다는 보장 없이 최종계약 체결은 불가하다"며 '계약 연기' 입장을 고수해왔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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