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철우·유지웅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4개월 만에 북·미 대화 시즌2를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며 경색된 관계의 복원을 시도한 건데요. 이재명 대통령도 취임과 동시에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습니다. 한·미 정상의 '손짓'에 한반도 정세도 덩달아 요동치는 모양새입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아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침묵을 지켜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친서 외교' 재가동…달라진 '외부 환경'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11일(현지시간) 브리핑을 열고 '친서 수령을 북한이 거부했다'는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뉴스> 보도에 대한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서신 교환에 여전히 수용적"이라며 "첫 임기 당시 싱가포르에서 이뤄진 진전을 보길 원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특정한 서신 교환에 대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답하도록 남겨 두겠다"고 덧붙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서 친서 전달을 시도했다는 <NK뉴스>의 보도를 백악관이 인정한 셈입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여전히 김 위원장과의 소통에 열려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NK뉴스>도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가 '대화 재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당시 북·미 대화를 다시 이끌어내려는 모양새입니다. 다만 북측은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협상 카드를 드러내기 전까지는 친서 수령을 거부할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1기 행정부 당시 세 차례 만났습니다. 지난 2018년 6월에 싱가포르에서 첫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고, 이듬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정상회담을 진행했습니다. 같은 해 6월에는 판문점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포함해 '3자 회동'을 가졌습니다.
두 인물은 이를 계기로 27통의 친서를 주고받아 왔는데요. 하지만 친서 외교가 트럼프 2기 출범 직후에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1기 당시와 달라진 북한의 상황 때문인데요.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을 고도화하면서, 미국이라는 카드가 밀려난 겁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우크라이나·가자지구 전쟁 종전 협상 등에서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는데요. 북한으로 시선을 돌려 구체적 성과를 노린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2019년6월30일 판문점 남측지역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했다고 2019년 7월1일 보도했다. (출처=노동신문.뉴시스)
남북도 긴장 완화…"직접 대화는 아직"
우리 정부도 북한과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행동에 나섰습니다. 이 대통령은 전날 오후 2시부터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11일 오후 2시부로 우리 군이 전방 지역에서 진행하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지하도록 지시했다"며 "북한의 소음 방송으로 오랜 시간 어려움을 겪어온 접경 지역 주민의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함"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이번 조치로 남·북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다시 쌓아갈 수 있길 기대한다"고 적었습니다.
앞서 정부는 민간단체에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북한도 이 대통령의 조치에 일정 부분 호응하는 모양새입니다. 북한 측도 대남 확성기 방송을 즉각 중지하고 소음을 내보내거나 방송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의 선제 조치로 남북이 대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우상호 정무수석이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6·15 정상회담 2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대독한 축사에서 "중단된 남북 대화채널부터 빠르게 복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남·북 간 상시 통신선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채널과 군사 채널은 지난 2023년 4월 중지된 뒤부터 현재까지 단절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당분간 전략적 침묵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포석을 깔기 위함입니다. 현재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의지가 강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전략은 '시간 끌기'를 통한 주도권 확보가 될 전망입니다.
결국 '북·미 직거래' 가능성도 커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협상이 이뤄진다면 북한의 핵 폐기가 아닌 북핵 동결과 핵 고도화 중지라는 '스몰딜'(부분합의)이 유력합니다. 이때 대북 제재 완화가 트럼프 대통령의 카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미국부터 북·미 관계에 진지하고 구체적인 입장 정리가 이뤄져야 직거래가 가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러시아와의 밀착 덕에 '하노이 노딜' 사태 때와 같은 위험을 굳이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입니다.
고 교수는 결국 북·미 직거래가 이뤄져야 궁극적으로 남·북 관계 개선도 가능할 걸로 봤습니다. "적대적 두 국가론을 천명한 북한이 남한과 직접적 관계 복원에 나서긴 어렵다"는 지적입니다.
이어 "한국이 패싱 되더라도 북·미 관계 개선으로 남북 관계가 좋아진다면 나쁘지 않다"며 "새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가 당장 좋아지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대북 전단·방송을 중지시키는 등 실내 분위기를 조성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짚었습니다.
차철우 기자 chamato@etomato.com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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