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주하 기자] 7월 IPO 제도 개편을 앞두고 일부 기업들이 이례적인 속도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제도 시행 전 '막차 공모'가 몰리면서 수요예측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채 형식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업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어 공모주 투자 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2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대한조선은 지난 23일 유가증권시장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한 뒤 하루 만인 24일 금융위원회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래피는 지난 19일, 에스엔시스는 25일 각각 신고서를 냈으며 한라캐스트·제이피아이헬스케어·에스투더블유(S2W) 등도 빠른 상장을 목표로 이달 내 증권신고서 제출을 준비 중이라고 전해졌습니다.
이러한 급행 일정의 배경에는 7월부터 시행되는 IPO 제도 개편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통상적으로는 상장예비심사 승인 이후 증권신고서 제출까지 약 한 달 정도의 준비 기간을 두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기간이 1주일 안팎으로 줄어드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 업계에서는 '속도전'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한 증권사 IPO 관계자는 "실제 최근 상장 승인 이후 신고서 제출까지 걸린 평균 기간은 30일 수준이었지만 6월 들어 이 기간이 1주일 안팎으로 줄어드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상장예비심사 승인 직후 곧바로 수요예측에 돌입하는 일정이 반복되면서 기업 실적이나 가치에 대한 정성적 검토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따라 공모가가 실제 기업 가치보다 높게 책정되거나, 투자 판단의 객관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상장 전 IR 활동이나 질의응답 등 정보 공유 과정이 압축되면서 일반 투자자들이 기업에 대한 핵심 정보를 충분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투자 판단의 신중함이 떨어지고 수요예측 결과만을 근거로 청약에 나서는 경우가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거래소는 예비심사 통과 이후 과정은 기업과 주관사의 영역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예비심사 통과 이후의 수요예측 일정과 가격 책정은 증권신고서 단계부터 금감원 검토와 함께 기업과 주관사의 몫"이라고 말했습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물량 확보를 위한 가격 제시는 계속되겠지만 현재는 속도가 곧 전략이 된 상황"이라며 "형식적 절차 이행에만 집중한 급행 IPO가 늘어날수록 공모시장의 신뢰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개정안은 △기관투자자 의무 보유 확대 △수요예측 참여 자격 합리화 △주관사 책임 강화 등을 골자로 하며 기관 배정 물량의 40% 이상을 의무보유 확약 기관에 우선 배정해야 합니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주관사는 전체 공모 물량의 1%를 인수해 6개월간 보유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기관이 상장 당일 공모주를 매도해 차익을 실현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제도 시행 이후에는 최소 15일에서 최대 3개월까지 보유 의무가 생깁니다. 이에 따라 일부 인기 공모 종목에는 단기 수익을 노린 수요가 몰리며 수요예측 경쟁률이 높아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제도 정착 이후가 장기 투자자 유치에 더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한 학계 관계자는 "당장의 상장보다 장기적인 시장 신뢰 구축이 더 중요하다"며 "형식적 통과에 집착하기보다는 공모 구조의 투명성과 투자자 보호 설계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기업 입장에서도 제도 개편 이후 상장하는 것이 장기 투자자 유치와 주가 안정성 측면에서 중장기적으로 더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시장 전반의 투자 심리는 여전히 신중한 분위기입니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개선된 제도가 충분히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다소 소극적인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며 "시장의 섣부른 낙관론은 경계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 1월21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KRX) 컨퍼런스홀에서 IPO·상장폐지 제도개선 공동세미나가 열렸다.(사진=뉴시스)
김주하 기자 juhah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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