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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7월 15일 16:35 IB토마토 유료 페이지에 노출된 기사입니다.
주요 그룹사들이 ‘선택과 집중’ 전략 아래 사업 구조를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특히 이번 리밸런싱 국면은 총수들이 전면에 나서 결정을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결이 사뭇 다르다.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고 미래 성장 사업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지주사와 총수의 역할, 그리고 그 개입의 실효성에 대해 시장의 시선도 엇갈리고 있다. 이에 <IB토마토>는 주요 그룹사의 사업 구조조정 현황과 총수 주도 리더십의 양상, 구조개편이 실제로 어떤 효과를 내고 있는지 짚어본다.(편집자주)
[IB토마토 김규리 기자] 그룹 총수가 주도하는 사업 재편은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미래 먹거리 중심의 포트폴리오 개편으로 볼 수 있다. 수직적 지배구조 아래 빠른 의사결정이 강점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정체 위기에 놓인 기업들이 추진하는 속도전이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SK)
매각 칼날 쥔 총수들…비핵심 사업 대거 정리
15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주도하면서 지주사
SK(003600)를 중심으로 전 계열사 리밸런싱 작업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곳 중 하나다. 최근 2년간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 아래 중복사업 재편, 우량자산 내재화 등 체질 개선을 단행했다. 2022년 섬유·화학 중심의
SKC(011790)가 고부가 IT소재에 집중하면서 지난 2022년 필름사업을 정리한 것을 시작으로
SK케미칼(285130)도 바이오와 그린에너지로 중심축을 옮기며 기존 석유화학 사업을 정리했다.
동시에 SK는 그룹의 근간 사업을 AI로 설정하고 모태산업이었던 섬유를 시작으로 석유화학→이동통신에 이은 새로운 퀀텀점프 도약을 선언하고 나섰다. AI 전환을 앞장서 주도하는 이는 바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최 회장은 최근 경영전략회의에서 “AI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지속 가능한 생존이 달려 있다”며 “AI와 사업 모델이 밀접한 IT(정보기술) 영역뿐 아니라 전기·에너지, 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AI를 활용해 외연을 확장하자”고 직접 주문했다.
총수가 직접 나선 리밸런싱은 효과적이다. 최 회장이 리밸런싱을 주문한 지난해에만 SK는 △ SK스페셜티(2조7000억원) △ SK렌터카(8200억원) △ SK엔펄스 CMP패드 부문(3410억원) △ SK피유코어(4024억원) △ 원커머스(2700억원) △ 어센드엘리먼츠(1300억원) △ SK매직 가전사업부문(400억원) 등을 매각했다.
올해에도
SK이노베이션(096770)(SK이노)과 SK에코플랜트를 중심으로 사업을 정리할 예정이다. 이날에도 SK이노의 자회사 SK에너지는 'SK 친환경 복합 스테이션 구조 고도화 사업'의 1호 사업지로 정했던 경기 시흥 SK시화산업주유소 개발을 중단하기로 최종결정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최 회장이 미래사업을 위한 지분 구조부터 자금투자까지 직접 설계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국가전략산업으로 반도체·AI·에너지 전환 과제를 제시한 만큼 SK의 투자 방향과 시너지가 발휘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장수명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향후 SK그룹 투자는
SK하이닉스(000660)와
SK텔레콤(017670)을 중심으로 AI 산업에 집중될 전망”이라며 “지주사에서는 SK스페셜티지분(보유지분 100% 중 85%) 매각, SK에코플랜트에서는 일부 자회사 등 매각 검토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출처=SK그룹, 한국신용평가)
LG그룹 또한 구광모 회장의 강도 높은 주문 아래 주요 사업을 잇따라 정리 중이다. 그룹 핵심 계열사인
LG에너지솔루션(373220)·
LG화학(051910) 등 배터리·전장 중심 포트폴리오는 강화하는 반면 성장성이 낮거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은 과감히 철수하거나 매각하는 식이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구 회장은 올해 취임 7주년 기념식조차 생략하고 그룹의 '미래 그림' 구상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3월 사장단 회의에서도 그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속 가능한 경쟁 우위와 진입장벽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2021년
LG전자(066570) 휴대폰 사업을 담당하던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 사업본부를 철수한 이후 그간 유지해오던 사후관리 서비스(AS)마저 올 상반기를 끝으로 종료하면서 LG는 30년은 운영했던 모바일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최근에는 LG화학이 주력 기초소재 사업이었던 BPA 사업부를 내놓으면서 한동안 강도높은 사업 재편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에 이어 장남인 김동관 부회장이 사업 개편을 주도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과감한 인수합병(M&A)과 자산 정리를 병행하며 그룹의 미래 구상을 이끌고 있다. 한화솔루션을 중심으로 수소·태양광 사업을 키우는 동시에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를 한 축으로 방산 자회사들을 통합해 한화오션 인수에 이은 방산 중심 재편에 나섰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김동관 부회장이 지주사 차원에서 계열사 합병과 전략적 매각을 병렬로 지휘하며 그룹의 성장축을 방산·우주·에너지로 고정해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포스코(005490)그룹도 마찬가지다. 저가 수입재 범람, 글로벌 관세전쟁의 본격화, 환경규제 부담이라는 삼중고에 부딪힌 포스코는 장인화 회장을 필두로 철강 중심의 전통 제조업 구조에서 벗어나 2차전지 핵심소재인 리튬·니켈 확보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포스코홀딩스는 지주사 차원에서 아르헨티나 리튬 사업 양산 단계 진입했고,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무역사업 축소와 함께 에너지·식량자원 확보에 무게를 두고 있다. 또 포스코퓨처엠은 소재 개발을 전담하고 있다. 특히 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이후 구조개편이 보다 빠르고 수직적으로 전개되고 있어, 총수의 전략이 보다 선명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의사결정 속도 빨라졌지만…상법개정에 지배구조 리스크 유의
이번 사업재편의 공통점은 총수의 직접 개입이다. 지주사 중심의 수직적 구조에서 의사결정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 장점으로 부각된다. 일각에서는 오너십이 강할수록 방향 전환이 빠르다는 평가를 내놓지만 동시에 최근 통과된 상법개정안과 관련해서 지배구조 리스크를 염두해야 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 지주사 전문 증권사 연구원은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총수 주도의 사업 재편은 일관성과 추진력이 있다는 점에서 분명 효과가 있다”면서도 “중요한 건 이 같은 의사결정이 주주가치와 종합적인 방향으로 이뤄지느냐는 점이 중요하다. 구조조정과 동시에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는 제도적 장치가 병행되지 않으면 단기 성과에도 불구하고 장기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 교수는 <IB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최근 글로벌 불확실성에 따라 기업들이 적기에 적절한 리밸런싱을 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결정과 속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다만 최근 통과된 상법개정안으로 주주의 충실의무를 논하게 되면 기업의 의사 결정에 대한 (충실의무) 기준이 불분명해지면서 현장의 경영활동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규리 기자 kk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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