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김태은 기자] 한국이 벼랑 끝 협상에 돌입합니다. 일본은 자동차와 상호관세를 모두 15%로 낮추는 대신 쌀 시장 개방, 5500억달러(약 759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까지 약속했는데요. 반면 한국은 자동차에 이미 25%의 관세가 적용 중이며, 곧 상호관세 25%까지 더해질 상황입니다. 일본과 10%포인트의 격차가 벌어진 가운데, 한국은 주력 수출 품목의 가격 경쟁력을 방어할 실질적 해법이 필요합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사실상 첫 품목관세 인하…'날개' 단 일본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일본과의 무역 협상이 타결됐다며 "일본은 미국에 15%의 상호관세를 내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기존 한국과 동일했던 25%에서 10%포인트 낮아진 수준입니다.
그는 "내 요청에 따라 일본은 미국에 5500억달러를 투자하고, 이 중 90% 수익을 미국이 가져가게 된다"며 "이를 통해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앞서 일본은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대미 투자 펀드' 조성을 제안한 걸로 전해졌습니다. 당초 알려진 규모는 4000억달러(약 550조원)였으나, 협상 과정에서 5500억달러로 확대된 걸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이 자동차와 트럭, 쌀, 일부 농산물 등에서 자국 시장을 연다는 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일본 자민당의 전통적 핵심 지지 기반이 '쌀 농가'란 점 고려할 때, 쌀 수입은 '성역'으로 여겨져왔는데요. 이를 개방한 건 이례적 조치로 평가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 행사에선 알래스카 LNG 사업과 관련해, 일본이 미국과 조인트 벤처(JV)를 설립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결국 미국이 요구했던 대부분 사항을 일본이 수용한 셈인데, 일본 측 최대 성과는 '자동차·부품 관세 인하'(25%→12.5%)로 꼽힙니다. 기존에 부과되던 2.5%의 기본관세을 더하면, 총관세율은 15%입니다.
지난해 일본의 대미 전체 수출액은 약 1450억달러(199조원)인데, 이 중 자동차는 약 28% 차지했습니다. 대미 최대 무역흑자 품목도 자동차·부품으로, 일본은 이번 합의로 '세계 최대 시장'에서 오히려 가격 경쟁력을 높였다는 분석입니다.
품목별 관세, 그 중에서도 특히 자동차 관세는 인하하긴 어렵다는 게 중론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 제조업 부흥의 중심축으로 강조해온 분야이기 때문인데요. 일본을 제외한 다른 국가는 25%의 자동차 관세 인하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간 관세가 인하된 사례는 영국(25%→10%)이 유일했으나, 이는 예외적인 경우였습니다. 영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량은 연간 10만대로, 지난해 일본(130만대)와 한국(143만대)의 수출량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인데요. 영국은 미국의 몇 없는 무역수지 흑자국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상호관세율(15%)도 영국(10%) 다음으로 낮습니다. 베트남(20%), 인도네시아(19%), 필리핀(19%) 등 미국과 무역 합의를 체결한 국가 대부분은 19~20%의 관세율을 받아들였습니다.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쌀·쇠고기 둘 다 막긴 어려워"…일본 선방에 한국 갈림길
농산물 시장 개방은 한국을 향한 압박이기도 합니다. 일단 정부는 쌀 수입 확대,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레드라인'으로 설정하고 협상에서 제외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대신 바이오에탄올용 옥수수 등 '연료용 작물 수입 확대'를 대안으로 검토 중입니다.
문제는 미국의 수용 여부입니다. 미국은 매년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를 통해 한국에 쌀·쇠고기 등 농산물 시장 개방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는데요. 일본뿐 아니라 영국, 베트남, 인도네시아와의 협상에서도 농산물 시장 개방은 핵심 의제로 다뤄졌고, 대부분 일정 수준의 양보가 이뤄졌습니다.
대통령실은 23일 미·일 간 관세 협상 타결에 대해 "참고할 부분이 있으면 참고하겠다"고만 언급했으며, 쌀·쇠고기 개방을 협상 카드로 활용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습니다.
김태황 명지대 교수는 이번 미일 합의를 '일본의 선방'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는 "일본이 자동차 관세를 낮춘 건 의미가 크다"며 "품목별 관세에는 손대지 않겠다고 했던 미국 입장을 감안하면, 일본이 챙길 건 챙긴 셈"이라고 했습니다.
이어 "한국은 이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고, 조선 산업 협력이라는 카드도 있다"며 "일본보다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본의 쌀 시장 개방은 미국이 끝까지 요구할 사안이었기 때문에 예견된 수순"이라고도 했습니다.
김 교수는 "한국은 쌀과 쇠고기 시장 가운데 하나만 지켜내도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며 "특히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는 미국 내에서도 수요가 낮은 품목으로, 제품 포장지에 '30개월 이상' 여부를 명기해 한국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방식이 적절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이번 미·일 협상 타결로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대한 한국 참여 압박도 본격화될할 전망입니다. 일본은 지난 2월 총리 방미를 계기로 참여 의사를 밝혔고, 이번 협상에선 참여를 공식화했습니다. 대만도 지난 5월 국영석유사 CPC를 통해 알래스카 가스라인개발공사(AGDC)와 투자·구매 의향서를 체결하며 선제적으로 움직였습니다.
미국의 관세 조치 시한이 임박하면서, 우리 통상 라인도 잇따라 방미 행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22일 워싱턴을 찾았고,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이날 미국으로 출국했습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24일 방미할 예정입니다.
오는 25일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한·미 '2+2 통상 협의'에는 미국 측 요청에 따라 여 본부장과 구 부총리가 참석합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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