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현대차가 미국 시장에서 직면한 복합적 위기에 대해 새로운 판매 전략으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위협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보조금 혜택 배제라는 악재 속에서도, 오히려 차량 단가가 높은 하이브리드(HEV)와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차량 판매를 끌어올리는 수익성 중심의 사업 구조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사진=현대차그룹)
6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1~6월) 글로벌 시장에서 16만9000대의 HEV를 판매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기간 보다 37.8% 늘어난 결과로 이는 순수 전기차(EV) 판매 증가율(33.5%)을 넘어선 수치입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현상을 겪고 있는 가운데, HEV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한 것입니다.
HEV가 주목받는 이유는 미국 정부의 보조금 대상은 아니지만, 고율 관세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무엇보다 수익성이 높다는 측면 때문입니다. 순수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 원가 부담과 충전 인프라 의존도가 높아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이 있지만, HEV는 기존 내연기관과 전기 모터를 결합한 구조로 생산 효율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현대차의 또 다른 전략 변화는 대형 SUV와 프리미엄 SUV 모델들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SUV 차량들은 판매 증가를 주도하면서, 전체적인 차량 단가 상승을 이끌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소비자들의 SUV 선호도가 높은 경향과 맞물려, 현대차는 기존 소형차·준중형차 위주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차종 중심으로 제품 구성을 재편하고 있습니다.
현대차가 전략 전환을 시도하는 배경에는 그간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자동차 수출 관세가 0%였는데, 이번 관세 협상에 따라 15%로 높아지면서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IRA에 따른 미국 내 전기차 세액공제가 다음달 폐지를 앞두고 있어, 현대차를 비롯한 미국에 생산기지를 둔 전기차 제조사의 판매량이 감소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한편, 이 같은 변화의 이면에는 브랜드 포지셔닝 전환 의지도 깔려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현대차와 기아는 해외에서 ‘가성비 좋은 차’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심지어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싸게 차를 판다는 비판까지 제기됐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의 2020년 해외 평균 판매 단가(ASP)는 4203만원 수준이었는데, 5년 사이 3000만원이 넘게 상승했습니다. 기아 또한 같은 기간 3607만원에서 5086만원으로 단가를 끌어올렸습니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수준이라기보다는 의도적인 프리미엄화 전략의 결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현대차 관계자는 “미국 관세가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음에도 글로벌 HEV 수요 증가 등을 통해 판매가 증가했다”며 “고부가가치 차량 중심 ASP 상승 및 우호적 환율 효과로 지속적인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전략 전환은 현대차가 글로벌 완성차 시장의 위치를 재정립하려는 시도로도 읽힙니다. 과거 물량 중심의 ‘박리다매’ 방식에서 벗어나, 마진 중심의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입니다. 특히 각국의 자국 산업 보호주의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단순히 저가 경쟁에 의존하기보다는 기술력과 브랜드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차별화 전략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각종 리스크로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급감한다고 하면, 고수익차를 판매해야 매출이 유지되는 것은 맞다”며 “이와 함께 마케팅 전략이나 광고, 딜러 관리 등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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