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상도의라는 것이 있다
2025-09-09 06:00:00 2025-09-09 06:00:00
국회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논의 중인 이때 일부 증권사들이 상장기업들을 대상으로 자사주를 교환 대상으로 한 교환사채(EB) 발행을 적극 마케팅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가 더 빠르고 신속하게 해줄 수 있다고 영업을 한다나. 관련 법이 제정돼 꼼짝없이 자사주를 소각하게 생겼으니 그전에 빼돌려 주겠다는 말일 것이다. 이들은 해당 자사주를 받아줄 사모펀드 등 투자자를 매칭해주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증권사가 직접 인수하기도 한다. 이게 실제 자사주 매매 양수도인지 파킹 거래인지도 불분명하다. 
 
증권사들의 먹거리 중에 채권을 발행해 그 수수료를 취하는 것도 채권자본시장(DCM) 영업의 한 축임엔 틀림없다. 기업들의 자금조달을 돕고 그 대가를 취하는 것은 증권사의 사업모델 중 하나다. 
 
하지만 지금 EB를 중간에 끼워 넣어 결과적으로 자사주 빼돌리기 거래를 중개하는 것은 엄연히 증권사들이 주주 이익을 훼손하는 행위를 주도적으로 벌이고 있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그깟 거위 알 몇 개 빼 먹겠다고 거위 배를 가르는 것과도 같다. 
 
상도의라는 것이 있다. 장사꾼은 눈앞의 잇속 때문에 미래의 큰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 저울을 속여 팔면 당장 이익을 불릴 순 있겠지만, 저울을 속여 판다는 오명이 쌓이고 쌓여 이미지로 굳어진다. 그땐 돌이킬 수 없다. 
 
자사주 소각이 법제화될 것 같으니 기업들은 발에 불이 붙었고, 증권사가 이에 착안해 거간꾼 노릇을 자청하고 나섰다. 그게 그들의 밥벌이 중 하나이니 불법, 탈법은 아니겠지만, 그 일이 자기들 밥그릇을 키우는 일을 해치는 일임을 모를 리 없다. 
 
망하는 장사의 조건이 있다. 바가지가 첫 번째다. 상품의 가치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매겨 덤터기 씌우는 행위는 특히 그 물건을 구하기 힘들 때 더욱 기승을 부린다. 가격을 짐작하기 어려운 상품을 파는 경우에도 바가지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제값에 안 팔리는 재고 상품을 포장만 바꿔서 새 상품인양 진열대에 내놓기도 하고, 인기가 치솟아 구하기 힘든 상품에다 세트로 끼워 팔기도 한다. 급기야 저울까지 속여서 판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더는 돌이킬 수 없다. 
 
증권사들은 부인할지 모르겠지만 이미 이 조건들을 충족했다. 적자가 나는 회사도 기술특례라는 이름을 붙여 비싼 값에 공모 시장에 넘겼다. 얼마나 좋은 기업을 얼마나 좋은 가격에 시장에 공개하느냐보다는, 시장의 열기가 식기 전에 얼마나 많이 밀어내느냐가 관건인 것처럼 쏟아냈다. 자기들이 갖고 있던 빌딩도 공모 리츠를 만들어 안전하게 엑시트했다. 상장 후에 주가가 진창에 빠진들 증권사에게 기대할 수 있는 A/S 같은 것은 없다. 
 
고객이 해야 할 일은 기억과 외면이다. 속여 판 가게, 고객을 기만한 곳을 외면하고 소문내는 것이다. 잘못을 해도 큰 문제 없이 장사가 되니 그리하는 것이다. 고객이 그들에게서 등을 돌리면 그때 가서 죄송하다 머릴 조아릴지 모르겠다.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금융투자회사 최고경영자들을 만난 자리의 일성이 소비자 보호와 불공정거래 근절이었다는데 과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일은 공정하다고 생각할지 궁금하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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