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입법부의 수준
2025-10-16 06:00:00 2025-10-16 06:00:00
역시나 '역시나'였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국정감사라 '혹시나' 하는 마음도 얼핏 가졌는데, 예상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역시나'였다. 지난 13일부터 시작된 이재명정부 첫 국정감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국회는 지난 13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25일간 17개 상임위원회가 834개 소관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의 업무 집행 상황을 점검한다. 입법부가 정부 정책 집행의 타당성을 따져보고 문제점을 개선하도록 하거나 대안을 제시하게 하는 게 국정감사의 본래 취지다. 헌법이 국회에 매년 국감을 실시할 권한을 부여한 것도 국정 운영 전반을 감시·비판해 국민 기본권을 수호하고 국익을 증진하라는 목적이다. 
 
그러나 실제 국감 상황을 보면 이런 취지가 무색할, 아니 민망할 지경이다. 정책 감사의 장이 돼야 할 국감이 여야 간 정쟁의 현장이 된 지는 오래지만, 매년 벼랑 끝 대치 양상이 더 심해지는 양상이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비상계엄 사태로 얼룩진 윤석열정부 단죄와 이재명정부의 초기 정책 검증이라는 여야의 그럴듯한 명분만 번지르르할 뿐, 고성·삿대질·조롱·망신주기 등 정쟁 무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수준이다. 
 
국감 첫날, 조희대 대법원장이 출석한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국감은 대한민국 입법부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 조 대법원장에게 일반 증인으로서 답변을 요구했다. 증인 채택에 불출석 의견서를 냈던 조 대법원장은 국감장에 참석해 "재판을 이유로 법관을 증언대에 세우면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이 위축된다"고 입장을 밝혔다. 
 
추미애 법제사법위원장이 인사말을 한 뒤 퇴장하려는 조 대법원장에 대해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하는 과정에서 여야 간 고성과 삿대질이 오갔다.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에 대한 질의를 강행했고 조 대법원장은 90분간 붙들려 앉아 내내 침묵하다 정회 시간에야 이석할 수 있었다. 사실상 대법원장이 인사말 뒤 국감장에서 이석하는 관례를 지키지 못한 채 조리돌림에 가까운 질문 공세를 받고 난 후 이석한 것이다. 
 
여야의 격렬한 공방은 사실상 난장판에 가까웠고, 시작부터 파열음을 낸 국감은 벌써부터 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국민 한 사람으로서 국감장에서 국회 품격은커녕, 국감 첫날부터 볼썽사나운 모습만 보니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물론 여야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노린 정쟁적 공세에 몰두할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내란 청산'과 '정부 실정 비판' 프레임이 대립하지만, 이면에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실망은 비껴가질 못했다. 
 
여야가 지금처럼 상대방 흠집내기, 정쟁에만 몰두한다면 유권자의 실망은 표의 응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때문에 남은 20여일간의 국감은 본래 목적인 민생 문제 해결과 정책 검증으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 내란 종식을 거친 대한민국의 현재 최대 과제는 산적한 국정 현안의 해법, 국가적 난제에 대한 해법 찾기다. 여야는 매년 거론되는 국감 무용론의 확산을 막으려면 더욱 더 정책 국감에 주력해야 한다. 물론 정책 국감을 바라는 것도 욕심이겠지만, 더 이상의 볼썽사나운 모습은 보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박진아 정책팀장 toyou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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