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효진·김태은 기자] 이재명정부가 세 번째 부동산 대책 만에 최후 수단인 '보유세 인상'을 시사했습니다. 구체적인 방향이나 시기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구두개입'으로 투자심리를 억제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다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데다 과거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섣부른 세제 개편으로 가격 급등을 부추겼던 만큼 시장 안팎에선 신중론이 감지됩니다.
정부가 15일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사진=연합뉴스)
부동산 더 과열 땐 '보유세 인상'
국토교통부가 15일 발표한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부동산 세제 합리화 방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구체적인 세제 개편 방향이나 시기·순서를 명시하진 않았지만, 보유세·거래세 조정을 언급한 점이 눈에 띕니다.
보유세는 부동산을 소유하기만 해도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세금을 뜻합니다. 크게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로 나뉘는데요. 보유한 주택 수가 세금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다주택자에게 보유세 인상은 예민한 문제입니다.
보유세 인상은 자칫 조세 전가 등 여러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를 의식한 정부도 그간 부동산 세제 개편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부동산 대책에 세금은 쓰지 않겠다고 했는데 거짓말이냐'는 질문에 "(세제 대책을) 안 쓴다는 것이 아니고 가급적 최후의 수단으로 쓰겠다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정부의 이번 접근은 지난 환율시장 구두개입과 유사합니다. 시장에 보유세를 올리고 거래세를 낮춘다는 신호를 줌으로써 다주택자의 매도를 유도하고, 거래 물량을 늘려 부동산 시장 과열을 막겠다는 전략입니다. 실제로 외환당국이 지난 13일 "시장의 쏠림 가능성 등에 경계감을 가지고 있다"며 구두개입에 나서자 원·달러 환율이 소폭 하락했습니다.
다만 '추진 시기'를 둘러싼 딜레마는 여전합니다. 내년 지방선거를 1년 남짓 앞두고 표심을 자극할 수 있는 증세 정책은 정부로선 부담입니다. 일각에선 이번 대책에서 세제 조정안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건 서울 한강 벨트(성동·광진·마포·영등포·양천·강동·동작 등 7개 지역구) 표심을 의식한 결과라고 판단합니다.
딜레마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정책 효과'도 미지수입니다. 정부는 출범 직후 6·27 대출 규제와 9·7 공급 대책을 내놨지만 오히려 매물은 줄고 호가가 치솟으며 신고가 거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출 규제 효과가 약화된 것입니다. 이에 대출 규제 직후 보유세 강화로 맞불을 놨어야 투기 수요 억제와 매물 유도로 이어졌을 것이란 시각도 나옵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균형 발전 정책 등 근본적인 수요 분산책이 없는 상황에서 보유세 논의는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문제는 결국 수요가 선호하는 지역에 너무 쏠리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 근본적 원인을 치유하지 않는 한 수요 억제나 공급 활성화나 어떤 제도로도 묶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집값 상승' 공포…진보 정권 '아킬레스건'
그간 진보 정권은 보유세 강화를 부동산 문제 해법으로 자주 이용했습니다. 노무현정부는 지난 2005년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잡기 위해 종부세를 신설하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강력한 세제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주택 보유세의 일종인 종부세는 공시가격을 일정 기준 이상 초과하는 부동산 소유자에게 부과되는 국세로, 부동산 투기 억제의 상징적 수단입니다.
문재인정부도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세제 정책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지난 2020년 '7·10 대책'으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율을 최고 70%, 취득세율 12%, 종부세율 6%까지 각각 높였습니다. 종부세 과세표준 산정에 적용되는 공정시장가액 비율도 80%에서 95%까지 단계적으로 높였습니다. 이 비율은 윤석열정부에서 60%로 낮아졌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강력한 세제 정책이 시장 불안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KB국민은행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정권별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문재인정부 38.3% △노무현정부 33.8% △이명박정부 15.9% △박근혜정부 9.9% △윤석열정부 -11.3% 순입니다. 보수 정권과 비교해 진보 정권의 상승률이 최대 5배 가까이 높습니다.
보유세 인상은 전월세 가격을 올려 매매 수요를 자극할 수 있지만, 집값 상승 원인으로 지목되는 이른바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을 심화시켰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진보 정권마다 집값을 잡기 위해 꺼내든 '세제 카드'가 반복적으로 역풍을 맞자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겠다"고 수차례 약속했습니다. 그럼에도 집값 상승이 이어지자, 이날 세제 대책 카드를 언급한 것입니다.
정부가 이날 세 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자 야당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좌파 정권이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란 확신만 심어주고 있다"며 "청년·서민 죽이기 대책이자 '주택 완박(완전 박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초강수로 집값이 잡히지 않으면 다음은 뻔하다. 세제를 개편하고 보유세를 대폭 올려서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할 때까지 국민을 옥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보유세로 당장 집값을 잡기는 어렵지만, '머니무브(자산 이동)'를 위해서라도 보유세 강화는 필요하다고 바라봅니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국민 일부만 내는 보유세로 집값을 떨어뜨리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보유세를 높이지 않고서는 집값을 안정시키기 어렵다"며 "조세 재정 수입과 생산능력으로 자본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부동산 보유세는 올려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효진 기자 dawnj789@etomato.com
김태은 기자 xxt19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