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제도 두고 한은-금융위 엇박자
2025-10-24 14:58:00 2025-10-24 16:31:10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가 전세 제도를 두고 엇박자를 내며 혼란을 키우고 있습니다. 한은이 전세를 금융권 구조 개혁 과제로 제시하며 과감한 월세 전환을 주문한 반면, 금융위원회는 "전세대출 규제 강화 계획은 당분간 없다"며 상반된 입장을 드러냈습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국정감사와 기자회견을 통해 "전세 제도는 고통이 있더라도 끊어야 할 시점"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이 총재는 "전세 제도를 유지하면 결국 빚을 내서 집을 사는 레버리지가 확대될 수밖에 없다"며 "지금이라도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주택 가격이 자산 가격처럼 돼버렸다"며 "부동산이 주거비용 관리라는 프레임보다 대박 터뜨리자는 쪽으로 가고 있어 사회적으로 문제"라고 했습니다. 전세를 유지하면 결국 '빚내서 집 사는' 레버리지가 확대돼 금융 불안이 심화된다는 게 이 총재 주장입니다. 전세금이 사실상 '무이자 대출' 역할을 하며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고, 임대인·임차인 모두 금융시장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됐다는 주장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반면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무주택자 전세대출에 대해 당분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적용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는 전세 제도 폐지를 촉구하는 한은과 상반된 메시지입니다. 금융위의 경우 한은의 전세 제도 전환에는 공감하면서도 이재명정부의 강도 높은 주택담보대출 규제에 따른 시장 부담을 의식해 '속도 조절' 기류가 깔려 있다는 분석입니다. 실제로 정부가 잇달아 부동산 대출 규제 카드를 꺼내 들면서 실수요자까지 자금 조달이 막히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10·15 부동산 대책에서도 고가 주택 구입 목적 대출은 강하게 규제했지만, 전세대출에 대해서는 '실수요자 보호' 명목으로 예외를 인정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통화당국은 부채 축소를, 금융당국은 비판 여론을 감안한 것이 시장에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문제는 전세 제도가 단순한 주거 문제를 넘어 금융시스템의 근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세대출은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도입된 정책금융의 성격을 띱니다. 지난해 기준 시중은행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200조원을 육박하며 가계대출의 20%를 차지할 만큼 금융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전세 제도를 단숨에 폐지할 경우 월세 전환이 가속화돼 서민 주거비 부담이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큽니다. 기존 전세대출 회수와 신규 월세 자금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 금융시장 유동성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세대출을 회수하면 가계의 현금흐름이 흔들리고, 월세 확충이 지연되면 시장 혼란이 불가피하다"며 "현재 월세 보증금 대출이나 임대소득 연계 신용평가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에서 제도 전환은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전세대출이 단순 가계대출과 연계된 것을 넘어 주택시장 신용 시스템의 중심축이라는 점에서 금융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도 나옵니다. 전세가 하락이나 깡통전세가 확산되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SGI서울보증 같은 보증기관의 부담이 커지고, 이로 인해 은행권 부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월세 가속화로 인해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을 키울 수 있단 점도 지적됩니다. 기존 전세대출 회수나 신규 월세자금 대출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 금융시장 유동성 불안이 가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세자금대출이 빠지는 자리를 대체할 월세 보증금 대출 상품이나 임대소득 연계 신용평가 시스템이 부재한 상태라는 게 금융권의 우려중 하나입니다. 이에 발맞춰 금융권이 대출 포트폴리오와 보증 리스크를 동시에 조정해야 하는데, 금융당국이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면 시장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입니다. 공백기가 장기화하면 유동성 경색이나 서민층 신용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은과 금융위의 엇박자는 주택과 금융 시장 모두의 혼란을 키운다는 지적입니다. 전세 제도를 단순히 금융 논리로만 볼 수 없는 만큼, 국민이 받아들일 정책 신호는 일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단계적 로드맵 없이 갑작스러운 전환을 추진할 경우, 서민의 주거비 부담은 물론이고 금융시장의 연쇄 충격으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전세 제도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제도이지만, 서민에게는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온 긍정적 측면이 있다"며 "전세를 통해 목돈을 맡기고 일정 기간 거주한 뒤 자산을 다시 회수할 수 있었기에 무주택 서민이 주거비 부담 없이 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장치로 기능해왔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교수는 "최근 고금리와 부동산 침체로 전세대출이 급격히 늘면서 전세사기, 깡통전세 등의 부작용이 커졌다"며 "정부가 전세대출 규제나 제도 개편을 논의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서민층이 갑자기 월세로 몰리게 되면 주거비 부담이 폭등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면서 "주거는 단순한 시장 논리가 아니라 사회적 기본권의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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