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일본 주식시장이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선출과 함께 니케이지수 5만 시대를 열었습니다. 엔저와 대규모 재정 지원에 기초한 경기부양책을 앞세운 신임 총리가 아베노믹스 시즌2를 열어줄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물가를 잡아야 하는 일본은행은 금리 인상을 내비쳤지만 실행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경기부양책의 부작용보다는 기대감이 주목받고 있어 추가 상승도 예상됩니다.
‘경기부양’ 방향성 뚜렷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일본 주식시장에서 니케이225지수는 1.1% 하락한 5만322포인트로 마감했습니다. 인공지능(AI) 거품 우려가 다시 부상하며 미국 등 전 세계 증시가 동반 하락을 기록한 이날 일본도 장중 5만이 깨졌으나 낙폭을 줄이며 5만 선을 지켰습니다.
이처럼 일본의 경우 추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은 여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정부가 지향하는 정책 방향성이 뚜렷해 이에 근거한 시장의 변화가 예상됩니다. 주식시장 또한 그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4만 선에 올라선 니케이225지수는 올해 4월 미국의 대미 관세 발표 여파로 3만1000선까지 크게 밀리며 3만 선을 위협받았는데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관세 리스크를 줄이며 반등, 7월이 되기 전에 4만대에 올라섰습니다. 이후 꾸준한 상승세를 그리던 니케이지수는 10월 총리 선출에서 자민당 다카이치 사나에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상승폭을 키웠고 당선 일주일 만인 지난달 27일 마침내 5만 선을 돌파했습니다. 코스피가 전대미답의 4000 고지를 밟은 것처럼, 일본 니케이225 또한 지난해 4만 등정 후 올해 4만5000, 5만포인트에 올라선 것은 사상 최초입니다.
미국이 부채질한 상승이 일본에서 더욱 크게 불어온 것은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당선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소비세 면제, 현금 직접 지원, 법인세 감세 등 적극적인 경기부양 정책을 주장했습니다. 세수가 풍족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이 같은 부양책을 펴기 위해선 재정 지원이 필수입니다. 이미 국가부채비율이 200%를 훌쩍 넘는 상황에서 추가로 대규모 국채를 발행해야 해 당연히 시중금리와 환율도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엔저를 바탕으로 수출을 늘려 경제를 살린다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아베노믹스를 닮아 ‘아베노믹스 시즌2’라는 표현이 붙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의 정책 기조는 실시간으로 금융·외환 시장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엔달러환율은 1달러당 150엔을 넘어 다시 최고점을 향해 달리는 중입니다. 10월 첫날만 해도 146엔이었는데 6일 149.96엔으로 급등한 후 다음 날 곧바로 150엔을 넘었습니다. 지난달 30일 154.31엔까지 오른 후 지금은 153엔대로 소폭 내려왔는데요. 엔화의 방향성이 뚜렷해 올해 최고점인 1월의 158.35엔을 향해 치달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사이 달러인덱스도 4일 100을 넘었다가 6일 99.728을 기록, 엔화 가치를 내리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우에다 총재, 파월처럼 맞설까?
주목할 것은 다카이치 정부가 엔저와 저금리를 함께 유도한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은행은 지난해 제로금리 시대를 끝내고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습니다. 경제 회복과 함께 물가가 상승하자 이를 제어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를 요구하면 일본은행으로선 난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준비제도(Fed)를 강하게 압박하며 금리 인하를 주문하는데 제롬 파월 의장이 이를 무시하고 금리를 동결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일단 일본은행은 지난달 30일 금융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단기 정책금리를 현재 0.5%로 동결했습니다. 7 대 2로 의견이 갈렸는데요. 소수의견은 오히려 0.75%로 인상을 요구했다는 후문입니다. 물가 상승세가 엄중하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물가는 진압되지 않았는데 신임 총리가 경기부양을 강조할 경우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지난 3일 “실질금리가 극히 낮은 수준”이라며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뜻을 내비쳤습니다. 다만 일본은행이 미국 연준처럼 강한 독립성과 존재감을 드러낸 경우는 드물어 향후 어떤 변화의 조짐이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준금리에 앞서 시장금리는 이미 내림세입니다. 일본국채 30년 만기 금리는 올 한 해 줄곧 상승세를 그리던 중이었습니다. 연초 2.3%대에서 10월6일 3.3% 부근까지 100bp나 올랐습니다. 하지만 다카이치의 부상과 함께 내림세로 돌아서 현재 3%대 초반에 머물고 있습니다. 3~10년 만기 국채의 경우 눈치를 보며 소폭의 등락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물가 상승, 부채 증가 등의 부담을 떠안고 엔저 깃발 아래 경제 살리기를 표방한 이상 당분간 일본 금융·외환시장의 큰 흐름은 이를 따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다카이치 내각은 고물가 대응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을 마련, 이달 안에 13조9000억엔 규모의 경기부양책 발표를 예고했습니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적극재정 기조, 일본은행 금리 인상 제동 등 아베노믹스 시즌2 기대가 주식시장의 추가 상승을 견인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한편 엔저가 강화되면서 원·엔 환율에도 변화가 생겼는데요. 다만 원·달러 환율도 1440원까지 상승하는 등 가치가 크게 하락해 최근 원·엔 환율은 100엔당 930~950원대를 맴돌고 있습니다. 엔화 추가 약세로 900원을 하회할 경우 다시 한번 엔화 및 엔화 자산 투자로 환차익을 노릴 기회를 얻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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