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홍연 기자]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세입자들의 선택지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신규 전세 물건은 자취를 감추고, 가격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가운데 상당수 세입자들이 이사 대신 계약갱신을 택하며 버티기에 들어간 모습입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전·월세 갱신계약 가운데 절반가량이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연도별로 보면 2025년 계약갱신요구권 사용 건수는 전세 6만2772건, 월세 3만7347건으로 전년보다 크게 늘었습니다. 2024년에는 전세 4만5970건, 월세 2만9096건 수준이었습니다.
계약갱신요구권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임차인이 계약 종료 전 집주인에게 재계약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최초 계약 이후 종료 2개월 전까지 동일한 조건에서 한 번에 한해 연장해 최대 4년까지 거주할 수 있습니다. 이때 기존 보증금과 월세에서 5% 이내로만 인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셋값이 급등하는 상황에서는 세입자에게 유리한 선택이 됩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서울 전세 매물 30% 급감…가격은 사상 최고
전세 물건 감소는 통계에서도 뚜렷합니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최근 서울 전세 매물은 전년 대비 30% 가까이 줄었습니다. 자치구별로는 강남 3구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매물이 반 토막 이하로 감소했습니다. 성북·관악·강동·광진·동대문·은평 등 다수 지역에서 전세 물건이 1년 새 절반 이상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기존 세입자들이 재계약을 선택하면서 시장에 나올 물건 자체가 잠긴 영향이 큽니다.
매물 급감의 배경에는 정부의 규제 정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서울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갭투자가 전면 차단됐고, 이는 전세 수요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기존 세입자들까지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하면서 매물 잠김 악순환이 심화됐습니다. 반면 송파구는 전년 대비 51.9%, 서초구 36.1%, 강남구 18.5%로 매물이 증가했는데, 이는 정비사업으로 신규 입주 물량이 늘어난 데다 이미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최근 규제 영향이 없었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매물 부족은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습니다. 국토부와 직방 자료를 종합하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신규 전세 계약 평균 가격은 6억원 중반을 넘었는데 이는 통계 작성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갱신 계약 비중이 늘어나면서 공식 전세가격 상승률은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지만, 실제 신규 계약만 놓고 보면 두 자릿수 상승세가 나타나 ‘체감 전세난’은 훨씬 심각하다는 평가입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2023년 7월 이후 2년 5개월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월세가격지수 역시 2019년 4월 조사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전세가격전망지수도 높은 수치를 보이며 당분간 상승세가 지속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대출 규제 역시 세입자들의 부담을 키우고 있습니다. 전세자금 대출 문턱이 높아지자 충분한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한 세입자들은 반전세나 월세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서울 주요 지역에서는 보증금과 월세를 동시에 부담하는 준월세 계약이 빠르게 늘고 있으며, 부동산R114 분석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임대차 계약에서 준월세 비중은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 중입니다. 월세 부담뿐 아니라 초기 보증금까지 함께 커지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북 지역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뉴시스)
김지연 부동산R114 리서치랩 책임연구원은 "전세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 속에서 임대인은 수익성 확보 및 세부담 완화, 임차인은 전세·월세 부담을 동시에 조정하려는 선택이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며 "향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 감소가 예고된 만큼 준월세 확대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현장에서는 계약갱신요구권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당장 시세보다 낮은 인상률로 2년을 더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세입자에게는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일부 세입자는 아예 갱신권 사용을 미루고 임대료를 더 올려주면서 거주 기간을 최대한 늘리려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 임대료를 더 올려도 2년 뒤 갱신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어서 신중해야 한다는 조언입니다.
이 같은 주거 불안이 심화하자 국회에서는 계약갱신요구권을 현행 1회(2+2년)에서 확대해 최대 9년까지 늘리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다만 임대 공급 위축과 시장 왜곡 우려가 커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중론입니다.
전문가들은 전세난의 근본 원인으로 입주 물량 감소를 꼽습니다. 직방에 따르면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6000여가구로 지난해 3만1000여가구에 비해 48% 급감할 전망입니다. 여기에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대출 규제, 월세 선호 현상이 겹치며 전세시장의 숨통은 더욱 조여지고 있습니다. 당분간 세입자들은 갱신으로 버티거나 주거 수준을 낮추는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분석입니다.
홍연 기자 hongyeon1224@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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