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재계, 상법개정안 통과에 ‘충격’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 주주 확대
‘3% 룰’ 최종 포함…재계 위기의식
“기업들, 주주 눈치보다 투자 위축”
“재계 우려 과도해…추진 과제 여전”
2025-07-03 16:30:33 2025-07-04 10:08:02
 
[뉴스토마토 표진수·박혜정 기자]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여야가 합의한 ‘1호 민생 법안’인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을 두고 재계는 올 것이 왔다”고 체념하면서도 정권 초기라 대놓고 반대하지도 못하는 사이 과거 개정안보다 더 센 법안이 통과됐다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입니다. 재계에서는 주주들의 소송 위험으로 장기 투자가 어려워지고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 공격에도 취약해질 수 있다며 기업 경영에 초래할 불확실성을 우려합니다. 반면,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우려가 과도하다고 지적하며 지배구조 투명성 강화와 책임경영, 지주회사 체제 개선 등의 ‘첫 발’을 겨우 내딘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여야가 합의한 상법개정안이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출석 의원 272명 중 찬성 220명, 반대 29명, 기권 23명으로 통과됐다. (사진=연합)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 △전자 주주총회 의무화 △사외이사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 △‘3% 룰’ 보완 적용입니다. 정권 초기 강력한 상법 개정안이 통과하자 재계는 ‘속앓이’만 하고 있습니다. 재계 관계자는 “엄살이 아니라 심각한 문제고, 부작용의 무게가 매우 크다”라며 “대통령은 대화해보자고 했는데, 국회에서 이렇게 밀어부쳐서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재계의 가장 큰 우려는 남소’ 가능성입니다. 기업이 신사업에 진출하면 초기 단계에서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손실로 인한 주가 하락에 대해 주주들의 이사 고발이 남용될 수 있고 이에 따라 손해배상 책임뿐 아니라 형법상 배임죄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란 주장입니다. 재계 관계자는 “개정안으로 인해 개인 주주나 소수 주주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며 “기업들은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기 보다, 주주의 눈치만 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막판 쟁점이었던 ‘3% 룰’도 재계에는 큰 부담이라고 호소합니다. 3%룰은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규칙입니다. 대주주가 지분 50%를 가지고 있더라도 감사위원 선임 안건에 대해서는 3%까지만 행사할 수 있습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사회가 적대 세력으로 넘어가면 지분율과 완전 반대 결과로 이사회가 운영될 수 있어 굉장히 우려가 크다며 이사회가 역전될 수 있다는 점이 난감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여야는 재계 우려를 고려해 형법상 배임죄의 면책 규정 개정을 향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경영상 판단은 예외’라는 원칙을 배임죄 규정에 넣어 처벌을 면해주는 방향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경제6단체·기업인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 대통령,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연합)
 
재계 "보완 입법 뒤 따라야"
 
재계는 상법 개정이 불가피하다면, 기업 경영권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보완 입법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 프랑스 등 주요 국에서 시행 중인 포이즌 필(대주주에게 낮은 가격에 신주 발행)과 차등의결권(특정 주주 주식에 더 많은 의결권 부여), 황금주(1주만으로 주총 안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 등의 제도를 도입해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8단체는 이날 공동 성명문을 내 “자본시장 활성화와 공정한 시장 여건의 조성이라는 법 개정의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이사의 소송 방어 수단이 마련되지 못했고, 3%룰 강화로 투기세력 등의 감사위원 선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경제학자들은 기업들이 제기하는 배임죄 남발, 경영권 분쟁 격화, 주주 대표소송 급증 등의 우려가 과도한 주장이라고 일축했습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는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간에 직접적인 이해 충돌이 있을 때만 쟁점이 될 수 있다. 이를 이유로 배임죄가 남발될 것이라는 재계의 주장은 과도하다”고 했습니다. 이어 “한국 법원은 친기업적 성향이 강해, 지배주주나 총수에게 배임죄를 엄격하게 적용한 사례도 거의 없다”며 “과거 판례를 보면 법원이 기업 경영진에게 매우 관대한 기준을 적용해왔다”고 했습니다.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6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석 272인, 찬성 220인, 반대 29인, 기권 23인으로 가결됐다. (사진=뉴시스)
 
학계 “상법 수준 여전히 낮아”
 
실제로 국내 법원은 기업 운영에 대해 ‘경영 판단의 원칙’을 적용해 상당한 재량을 인정해왔습니다. 경영진의 판단이 명백히 불합리하거나 악의적이지 않은 한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관례가 확립돼 있어, 상법개정안 통과만으로 갑작스럽게 배임죄 적용이 급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분석입니다.
 
경영권 분쟁 격화 가능성도 제도 특성상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통과된 법안으로도 이사회 과반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며 “3%룰을 적용해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독립적인 주주 추천 이사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는 많아야 한 두 명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일부 기업들이 검토하고 있는 포이즌 필 같은 추가적인 지배권 방어 조치에 대해선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옵니다. 이 교수는 “포이즌 필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면, 이는 시장에 지배구조 후퇴로 인식돼 오히려 주가가 하락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투자자들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시장의 부정적 반응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상법 개정안이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라며, 향후 더욱 체계적이고 지속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는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임 시 2명 이상 의무화 조항이 이번 법안에서 빠진 것은 아쉽다”며 “우리나라의 상법 개정 수준은 여전히 낮은 편이며, 앞으로도 추진해야할 과제가 많다”고 짚었습니다. 이어 “향후 5년 종합 계획을 수립해 체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과거처럼 단편적으로 접근했다가는 지난 정부처럼 실패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표진수·박혜정 기자 realwater@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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