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검찰의 흑역사로 꼽히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관련 사건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김 전 차관 출국금지 수사의 발단이 된 기획사정 의혹 2심 재판이 오는 9일 열리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검찰은 문재인정부가 검찰개혁을 위해 김 전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며 수사에 나섰고, 이 사건 ‘수괴’로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지목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규원 전 검사(현 조국혁신당 전략위원장)만 기소했습니다. 이 전 검사는 지난 2월 1심에서 선고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사실상 무죄인 셈입니다.
이 사건은 특히 이규원 전 검사 동료였던 현직 검사가 검찰의 ‘표적 수사’, ‘압박 수사’를 법정 증언했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뉴스토마토>는 이 전 비서관과의 인터뷰, 현직인 최모 검사의 법정 증언, 이 전 검사의 1심 판결문을 토대로 검찰 수사 과정을 되짚어봤습니다.
이규원(왼쪽) 전 검사와 이광철 전 청와대 비서관이 지난해 1월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 금지 직권남용에 관한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규원 전 검사는 2018년 검찰과거사위원회에 소속돼 김 전 차관이 연루된 별장 성접대 의혹을 재조사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이 전 검사가 건설업자 윤중천씨를 면담한 뒤 그가 하지 않은 말을 한 것처럼 허위로 보고서를 작성했다며 이 전 검사를 기소했습니다. 허위라고 지목된 내용은 “윤석열 검사장은 임병진 소개로 알고 지냈는데, 원주 별장에 온 적 있는 것도 같다”로, 윤중천씨가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씨와 친분이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이 사건 수사의 시작은 2019년 10월 <한겨레> 오보에서 비롯됐다는 게 이광철 전 비서관 설명입니다. 당시 <한겨레>는 검찰과거사위가 ‘윤석열씨가 윤중천씨 별장에서 수차례 접대받았다’는 윤중천씨 진술을 확보했다는 취지로 보도했습니다. 이광철 전 비서관에 따르면 해당 기사는 부정확한 보도였으나, 기사로 인한 파장이 컸습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수사를 둘러싸고 문재인정부와 윤석열 검찰이 정면 충돌했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이 전 비서관은 전날인 7일 <뉴스토가>가 보도한 <
(인터뷰)이광철 “‘김학의 사건’ 수사, 검찰권 남용”>를 기사를 통해 해당 사건에 관해 “진보판 채동욱 사태로 인식됐다”며 “이 기사를 계기로 검찰이 똘똘 뭉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당시 오보의 배후로 이광철 전 비서관과 이규원 전 검사가 지목됐다는 겁니다. 검찰 출신인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이 두 사람의 친분관계를 언급하며 기획사정 의혹을 제기해 왔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이 사건의 ‘키맨’이 등장합니다. 이규원 전 검사와 윤중천씨 면담에 동석했던 최모 검사입니다. 두 검사는 검찰과거사위에서 같은 팀으로 근무한 인연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보도 직후 대검은 해외 연수 중이던 이 전 검사를 대신해 최 검사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했습니다. 이때 최 검사는 ‘윤중천씨가 윤석열 총장에 관해 모른다고 했다’고 단언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 전 검사는 검찰에서 ‘배신자’로 찍혔습니다. 최 검사는 수사기관에서도 같은 진술을 유지했습니다.
사건이 뒤집힐 결정적 증거가 등장한 건 그로부터 1년여 뒤입니다. 최 검사가 작성한 면담 보고서 초안을 이규원 전 검사가 발견, 검찰에 제출한 겁니다. 초안에는 문제가 된 윤중천씨 발언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전 검사의 무죄를 입증할 증거가 나온 겁니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미 정해진 결론에 증거를 맞췄습니다. 더구나 검찰은 최 검사를 이규원 전 검사와 공범으로 몰아갔습니다. 참고인 신분이었던 최 검사를 10여차례 불러 새벽까지 조사했습니다. 피의자로 입건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고, 불입건을 조건으로 이 전 검사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라고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 전 검사에 대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도 같이 진행됐는데, 공수처 조사에 출석하지 말 것을 종용하기도 했습니다.
‘표적 수사’, ‘압박 수사’ 증언한 현직 검사 …“공포감 느껴”
최 검사가 검찰로부터 받았던 압박은 2022년 10월28일, 지난해 6월21일, 7월23일 세 차례 그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한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아니라 현직 검사가 ‘표적 수사’ ‘압박 수사’를 진술했습니다.
최 검사는 최초 ‘윤중천씨가 윤석열 총장에 관해 모른다고 했다’고 단언한 이유에 대해 윤석열씨가 음해당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검찰총장이 언론을 통해 중대한 음해를 당하고 있었는데, (면담 관련) 진술할 사람이 저밖에 없었다”며 “기억이 안 난다고 하기엔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검찰에서 초안을 확보하지 못 한 상황이었고, 기억에 따라 진술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규원 전 검사에 의해 초안이 발견된 직후 최 검사는 “기존 진술을 바꿔 초안이 정확하다고 진술하니 피의자로 입건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며 “검사들이 방을 왔다 갔다 하며 상의했다. 저도 검사 생활 꽤 했는데, 중요한 일 있을 때 검사들이 하는 행동이다. 제 신변에 큰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최 검사는 당시 조사를 중단하고 변호사를 선임했습니다.
압박 수사에 최 검사는 업무를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말했습니다. 최 검사는 “저는 (조사 당시 서울중앙지검) 3층에서 공판검사로 일했고, (수사를 담당한) 형사1부는 4층이었다. 수사팀에서 계속 불러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었다”며 “더는 못 나가겠다고 하니 ‘입건하면 나오겠냐’고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어 “여러 부적절 언행도 있었고, 나를 검사로 보는 건지 모욕감을 느꼈다”라고도 했습니다.
최 검사는 “검사가 ‘이규원과 공모했다고 모든 것을 걸고 확신한다’고 말했고, 공포감이 들었다”며 “다음날 들어가야 할 재판을 잊고 있을 정도로 망했다고 생각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최 검사는 “저도 검사지만 기존 질문에 얽매여서 물어보니까 굴절되는 것 같았다”며 “본인 기억이 뭐냐고 물어보면 되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프레임이 형성되면 그걸로 가니까 답답했다”고도 증언했습니다.
판결문에도 ‘압박 수사’ 적시…이광철 “검찰권이 이래서 되겠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우인성)는 지난 2월 이규원 전 검사에게 선고유예를 선고했습니다. 이 전 검사가 허위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혐의는 무죄로 봤지만, 녹취 없이 면담보고서를 작성한 점을 잘못이라고 봤습니다.
검찰의 ‘표적 수사’, ‘압박 수사’는 이규원 전 검사 1심 판결문에 적시되기도 했습니다. 재판부는 “최 검사는 자신의 초안이 발견된 이후 수사기관에서 처음에는 초안을 자신이 작성한 것으로 윤석열 부분도 윤중천의 진술에 따라 기재한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가, 이후 그 진술을 번복해 윤중천이 윤석열을 모른다고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며 “최 검사는 수사기관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을 당시 자신의 초안 내용이 정확하다고 진술하자 자신을 피의자로 입건할 것처럼 위협적이고 불리하게 수사가 진행돼, 초안의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는 취지로 진술을 바꾸게 됐다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이광철 전 비서관은 초안이 발견됐을 당시 검찰이 수사를 멈췄어야 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전 비서관은 “초반에는 최 검사가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했으니 검찰이 의심할 수 있다. 그런데 검찰은 최 검사가 초안을 써서 이규원 전 감사가 다듬기만 했다는 걸 확인했다면 그때부터는 수사를 접었어야 했다”며 “검찰은 가설을 세워두고 직진했다. 무책임하게 기소하고 던져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광철과 이규원의 커넥션도 전혀 입증하지 못 했고, 이규원는 사실상 무죄를 선고받았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이광철 전 비서관은 검찰의 ‘표적 수사’에 대해서도 지적했습니다. 그는 “윤중천이 한 말로 (김 전 차관을 뇌물죄로 기소했던) 이정섭 검사는 공소장을 쓰고, 이규원은 보고서를 썼다. 윤중천이 법정에서 그런 말을 한 적 없다고 뒤집은 건 같은데, 이정섭은 수원지검 차장까지 승진했고, 이규원은 기소됐다”면서 “똑같은 검찰권을 행사했는데, 누구는 검사석에 앉고 누구는 피고인석에 앉아야 하느냐. 검찰권이 이렇게 행사돼서 되겠나”고 비판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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