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정부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9%로 대폭 낮추며 '0%대 저성장'을 공식화했습니다. 올해 두 차례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통한 재정 지출에도 미국의 관세 인상에 따른 수출 부진과 건설투자 부진 장기화에 0%대가 불가피하다고 내다본 것입니다. 정부가 0%대 성장률 전망치를 내놓은 것은 코로나19 팬데믹 때인 2020년 이후 5년 만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낙관적인 전망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연간 0.9% 성장을 기록하려면 하반기 성장률이 1%대 중반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한국 경제가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장 미국 상호관세와 품목별 관세가 본격화하는 올 하반기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재정 여력도 사실상 전부 소진해 단기 성장률을 끌어올릴 정책 수단도 마땅치 않습니다. 정부는 새 정부 집권 첫해 0%대 성장률이 불가피하다고 판단, 인공지능(AI) 투자를 중심으로 신성장 동력을 확보해 임기 내 잠재성장률 3% 달성 목표를 이루겠다는 구상입니다.
5년 만에 '0%대 성장률'…세 번째로 낮은 수준
정부는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을 발표,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0.9%로 제시했습니다. 올해 초 경제정책방향에서 제시한 1.8%보다 0.9%포인트나 하향 조정한 것입니다. 이 같은 성장률은 코로나19 충격이 덮친 2020년(-0.7%),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0.8%에 이어 세 번째로 낮은 수준입니다.
정부 전망치는 한국은행·한국개발연구원(KDI)·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치(0.8%)보다는 소폭 높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글로벌 투자은행(IB) 평균치인 1.0%보다는 낮습니다. 통상 외부 기관보다 다소 낙관적으로 경기를 전망하는 정부조차도 올해 '0%대 성장률'을 벗어나긴 힘들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정부가 1차 추경으로 13조8000억원, 2차 추경으로 31조8000억원을 각각 편성했어도 0%대 성장률로 끌어내린 것은 미국의 관세 인상에 따른 수출 부진과 건설투자 부진 장기화 이유가 컸습니다. 실제 한국 경제 버팀목이자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수출은 미국의 관세 조치 영향으로 올해 0.2%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반도체·선박은 호조세를 보였으나 자동차·철강, 석유제품·화학 수출이 둔화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기재부는 "한·미 관세 협상 타결로 수출 불확실성은 상당 폭 완화됐으나, 반도체·의약품 품목관세 등 리스크가 상존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 건설업 부진도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정부는 건설투자가 올해 8.2%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는데, 지난 1월 전망치인 –1.3%에서 감소 폭이 7%포인트 가까이 커졌습니다. 앞서 건설투자는 업황 악화로 1분기(-13.3%)와 2분기(-11.7%) 모두 두 자릿수 감소율을 기록했습니다. 내수의 또 다른 한 축인 설비투자 성장률도 종전 전망치보다 0.9%포인트 내려 잡은 2%로 전망했습니다. 기재부는 "수주 등 선행지표 개선으로 하반기 이후 점차 부진이 완화할 가능성이 있지만, 누적된 지방 미분양 등이 제약 요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이마저도 낙관적…"0.9% 달성 쉬운 일 아니다"
문제는 연간 0.9% 성장 전망도 낙관적이라는 점입니다. 올해 우리나라 1분기, 2분기 성장률은 각각 -0.2%, 0.6%입니다. 연간 성장률이 0.9%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올해 하반기 성장률이 1% 중반대를 기록해야 합니다. 하지만 미국 관세 조치 영향으로 하반기 수출이 둔화할 가능성이 크면서 올 하반기 1% 중반대 달성은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 반도체 등 주요 수출 품목에 예고된 미국의 고율 관세가 이번 전망에 반영되지 않은 만큼 추가 하방 위험도 남아 있습니다.
김재훈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은 "연간 성장률 0.9%를 달성하려면 하반기에는 거의 1%대 중반 정도 성장을 해야 하는데,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면서 "성장률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모든 정책 수단을 다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올해 0%대 성장률은 올 초 추경 편성 주문이 빗발쳤지만 정부의 추경 시점이 너무 늦어지면서 1분기 마이너스 성장률을 반등시키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며 "하반기 미국의 관세 조치가 가장 큰 변수인 데다, 건설 경기가 워낙 안 좋아 전망치 달성이 어려워보인다"고 내다봤습니다.
정부는 하반기 내수는 소비심리 개선으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민간소비는 1.3%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또 올해 취업자 수는 보건복지·전문과학·금융보험 등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17만명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으며, 소비자물가는 국제유가 하락으로 물가안정목표 수준인 2.0%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내년 경제성장률은 1.8%로 전망했습니다.
정부는 저성장 돌파구로 인공지능(AI) 대전환과 초혁신경제 프로젝트에 역량을 집중하겠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AI 반도체와 모빌리티, 바이오, 우주, 데이터 등 30대 미래 프로젝트를 선정해 재정 지원을 패키지로 제공할 방침입니다. 또 첨단소재·부품, 기후·에너지·미래대응, K-붐업 등 3가지 분야로 구성된 초혁신경제 15대 프로젝트를 실시해 잠재성장률 3% 달성을 실현할 계획입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전망치는 정부 정책 의지를 담지 않고 중립적으로 결정된 수치"라며 "단기 성장률 끌어올리기보다 미래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데 집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성장전략'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 참석, 발표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기재부)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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