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숨소리) 물고기 사냥의 최고수, 물수리
2025-10-27 15:37:58 2025-10-27 16:58:37
물수리가 포항 형산강에서 작은 물고기를 낚아채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흘러가는 가을입니다. 황금 들녘이 가을걷이를 마치고 여기저기 맨살을 드러낼 무렵, 북녘에서 늘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 있지요. 강 하구나 호수, 바닷가에서 ‘첨벙’ 소리가 나서 바라보면 가을철새 물수리(Osprey)가 대어를 낚아채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멀리 창공에서 점처럼 작은 물체가 하늘을 배회하다가 순식간에 하강해 자기 몸집만 한 물고기를 매달고 다시 멀리 사라집니다. 매목 물수리과의 물수리는 몸길이가 58~60cm이고 펼친 날개 길이는 147~169cm나 되며, 암컷이 수컷보다 큽니다. 몸 위쪽은 갈색이고 배와 머리는 하얀색인데, 머리에는 눈 주위에서 등으로 이어지는 짙은 갈색 선이 있지요. 다른 수리에 비해 날개 폭이 좁고 길며, 꼬리는 짧습니다. 
 
사냥한 물고기를 놓치지 않도록 발가락에 미끄럼 방지용 돌기가 있고, 바깥쪽 발가락을 뒤로 움직일 수 있어(다른 수리에겐 없는 특징) 물고기를 양쪽에서 단단히 잡을 수 있습니다. 빽빽하고 기름진 깃털을 지녀 물에 젖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진화했고, 정지비행도 곧잘 합니다. 전 세계에 단 한 종밖에 없는 물수리는 살아 있는 물고기만 먹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숭어, 잉어, 붕어를 사냥합니다. 뛰어난 시력으로 100m 떨어진 곳에서도 물고기의 움직임을 추적하며, 물고기가 수면에 접근하면 빠른 속도로 하강해 낚아챕니다. 
 
수면 아래 1m 정도에서 움직이는 물고기는 모두 물수리의 표적이 되지요. 물고기를 낚아채서 비행할 때는 공기 저항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유선형의 물고기 머리가 앞쪽으로 가도록 조정합니다. 잡은 물고기는 근처 갯벌이나 모래톱에서 시식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멀리 이동해 방해꾼이 없는 나뭇가지나 전신주 위에서 해치웁니다. 강 하구에 떼 지어 서식하는 재갈매기나 괭이갈매기들이 물수리가 사냥하면 그 뒤를 쫓아 물수리가 잡은 물고기를 탈취하려고 시도하지만 물수리는 더 높이, 더 빠르게 날아 갈매기를 따돌립니다. 해안가나 하천 하류에서 물수리가 비교적 눈에 띄는 까닭은 바다에서 회귀하는 숭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물고기가 수면 위로 부상할 때 두 다리를 앞으로 쭉 뻗어 날카로운 발톱으로 낚아채지만, 몸 전체가 물속으로 ‘첨벙’ 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 두세 번 시도 끝에 성공을 하고, 경험이 없는 유조들은 물고기의 부상 타이밍과 자신의 비행 속도를 적절하게 계산하지 못해 여러 차례 실패합니다. 물속에서 창공으로 비상해서는 여지없이 온몸을 ‘부르르’ 떨며 깃털에 스며든 물기를 제거합니다. 물수리는 북아프리카, 유라시아 대륙, 북미에 폭넓게 분포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한때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서남해안의 가파른 절벽의 소나무에서 소수가 번식했지만, 곳곳이 개발된 지금은 제주도 말고는 번식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 
 
 
물수리가 하늘에서 쏜살처럼 내리꽂다가 수면에 닿기 직전 두 다리를 앞으로 쭉 뻗으며, 날카로운 발톱을 갈코리처럼 모아 물고기를 낚아채는 순간이다. 
 
가을철 러시아에서 월동하러 남하한 녀석들이 동서 해안이나 강을 따라 멀리 제주도까지 이동하면서 탐조객에게 이따금씩 포착되는 것이 전부입니다. 국내에서 물수리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은 강릉 남대천, 포항 형산강, 임진강 하구, 팔당호, 화옹호, 순천만, 만경강 하구입니다. 제주도 해안가는 비교적 긴 기간인 10월부터 4월까지 이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는 기후가 온화하고 물고기가 풍부해 물수리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서식할 수 있는 지역이지요. 우리나라를 거쳐 가는 물수리들은 대부분 중국 남부를 거쳐 동남아에서 월동합니다.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번식한 물수리는 멀리 아프리카에서 월동하고, 북미에서 번식한 물수리는 중앙아메리카에서 월동하지만, 멀리 칠레, 아르헨티나까지 이동하는 개체도 있습니다. 
 
송어나 숭어 양식장 주인이 가장 싫어하는 새가 있다면, 사람 손가락 크기보다 작은 치어일 때는 물총새가 눈엣가시겠지만, 물고기가 상품성 있는 크기로 성장했을 때는 물수리일 겁니다. 남해안의 일부 양식장에서는 물수리가 사냥하지 못하도록 그물을 친 곳도 있답니다. 언제 어디서 날아왔는지 소리도 없이 양식장의 100배가 넘는 하늘을 배회하다가 물고기가 수면 위로 부상하려는 순간 낚아채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볼 뿐이죠. 물수리는 물고기가 하늘에서 움직이는 그림자를 느낄 수 없도록 멀리 사선에서 지켜보다가 쏜살처럼 빠르게 내리꽂습니다. 날개도 활 모양처럼 굽혀 공기 저항을 최소화합니다. 
 
가을 진객 물수리는 월동지에서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북상하면서 다시 한반도를 통과합니다. 하지만 봄철에는 가을에 비해 체류 기간이 짧습니다. 안전하고 먹거리가 풍부한 둥지터를 다른 경쟁자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특히 수컷이 빠르게 이동합니다. 물고기 사냥의 최고수, 멸종위기종 물수리의 개체 수가 더 많아져 과거처럼 한반도에 정착하기를 기대합니다. 
 
글,사진=김연수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겸임교수 wildik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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