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에 문신처럼 부착해 생체 신호를 띄우거나, 자유자재로 형태가 변하는 디스플레이는 미래 전자소자의 핵심 꿈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기술은 ‘잘 늘어나면 어둡고, 밝으면 늘어나지 않는’ 딜레마에 갇혀 있었습니다.
서울대 재료공학부 이태우 교수팀은 미국 드렉셀대(Drexel University) 유리 고고치(Yury Gogotsi) 교수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이 오랜 난제를 풀었습니다. 연구진은 세계 최고 효율인 외부양자효율(EQE) 17%를 달성한 ‘완전 신축성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개발했다고 지난 15일 밝혔습니다. 이는 기존 기술의 한계를 2배 이상 뛰어넘은 수치로,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15일 자로 실렸습니다.
완전 신축성 올레드 소자의 신축에 따른 발광 사진.(사진=서울대)
소재가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기술
현재 상용화된 폴더블 폰이나 스트레처블 디스플레이 시제품 대부분은 엄밀히 말해 소자 자체가 늘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딱딱한 발광다이오드(LED) 소자(섬, Island)를 유연한 전선(다리, Bridge)으로 연결한 형태입니다. 이 방식은 늘렸을 때 소자 밀도가 낮아져 해상도가 떨어지고, 피부에 완벽하게 밀착되지 않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웨어러블 디스플레이를 위해서는 소자 자체가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완전 신축성’ 기술이 필수적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발광층인 유기물 반도체에 고무와 같은 탄성체(Elastomer)를 섞어야 하는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성 탄성체가 섞이면 전하의 이동이 방해받고, 빛을 내야 할 에너지원인 ‘엑시톤(Exciton)’이 길을 잃어 소멸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기존의 완전 신축성 OLED는 외부양자효율이 약 6.8% 수준에 머물러 상용화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서울대 연구진은 발광 효율 저하의 원인을 ‘에너지 전달 방식’에서 찾았습니다. 기존 방식에서는 엑시톤이 인접한 분자로 직접 에너지를 넘겨주는 ‘덱스터 전달(Dexter transfer)’ 방식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분자 사이가 멀어지는 신축성 소재 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해야 할 분자 사이에 절연체(탄성체)가 끼어들자 이 전달 경로가 끊어진 것입니다.
연구진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엑시플렉스(Exciplex)’ 호스트 물질을 도입했습니다. 엑시플렉스는 서로 다른 두 분자가 들뜬 상태에서 결합한 복합체입니다. 연구진은 엑시플렉스가 삼중항 엑시톤을 단일항 엑시톤으로 변환시키는 특성을 이용했습니다. 단일항 상태의 에너지는 전자가 직접 이동하지 않아도 전자기적 공명 현상을 통해 먼 거리까지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 ‘포스터 전달(Förster transfer)’이 가능합니다. 즉, 탄성체라는 장애물이 있어도 마치 와이파이(Wi-Fi)처럼 에너지를 건너편 발광체로 효율적으로 쏘아 보내는 ‘장거리 에너지 전달 고속도로’를 개통한 셈입니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신축성을 유지하면서도 발광 효율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발광층만 개선해서는 부족했습니다. 전기를 공급하는 전극 또한 유연하면서도 전도성이 좋아야 했습니다. 기존에는 은 나노와이어 등을 사용했으나 표면이 거칠고 전하 주입 효율이 낮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공동 연구진은 2차원 나노 물질인 ‘맥신(MXene)’에 주목했습니다. 맥신은 금속 탄화물·질화물 계열의 소재로, 전기 전도도가 우수하면서도 유연하고 표면이 매끄러운 특성이 있습니다. 연구팀은 맥신을 기반으로 한 신축성 전극을 개발해 소자에 적용했습니다. 맥신 전극은 마치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유연하게 형태를 바꾸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전기를 흘려보냈습니다. 특히 맥신은 일함수(Work function) 조절이 용이해 유기물 층으로 전하가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맥신이 신축성 광전자 소자에 본격적으로 적용되어 성공적인 결과를 낸 것은 이번이 세계 최초입니다.
현재까지 보고된 신축성 발광물질을 사용한 올레드 소자의 효율 및 완전 신축성 올레드 소자의 효율 트렌드 그래프.(이미지=서울대)
상용화 문턱, ‘효율 17%’ 의미
‘엑시플렉스 발광층’과 ‘맥신 전극’이라는 두 가지 소재 혁신이 결합된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연구팀이 개발한 소자는 외부양자효율(EQE) 17%를 기록했습니다. 외부양자효율은 LED 등에 주입된 전자가 얼마나 많은 빛(광자)으로 변환되어 밖으로 나오는지를 나타내는 효율 지표로 수치가 높을수록 적은 전력으로 더 밝은 빛을 냅니다. 17%라는 수치는 기존 최고 기록(약 6.8%)을 2.5배 가까이 경신한 것이며, 현재 시장에서 판매되는 딱딱한 OLED(약 30% 이상)와의 격차를 획기적으로 줄인 수치입니다. 이 소자는 1000번 이상 늘렸다 줄여도 성능 저하가 거의 없을 만큼 기계적 내구성이 뛰어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웨어러블 디스플레이가 실험실을 벗어나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증명한 것입니다.
이태우 교수는 “이번 연구는 신축성 부여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던 효율 저하 문제를 소재와 메커니즘 차원에서 근본적으로 해결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향후 피부 부착형 헬스케어 기기나 자유변형 디스플레이 등 차세대 웨어러블 전자기기의 상용화를 앞당기는 핵심 기술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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