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사이언스)장 속 ‘숨겨진 세균’이 건강의 열쇠
1만여명 장내 미생물 메타게놈 데이터 분석
숨겨진 미생물 ‘CAG-170’ 수치가 건강 신호
2026-02-13 09:37:22 2026-02-13 09:37:22
인체를 이루는 세포의 수는 약 30조 개로 추정되며, 장내에 서식하는 미생물의 수는 약 38조 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 미생물의 대부분은 대장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수치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 몸은 사실상 사람의 세포와 거의 같은 수의 세균이 함께 공존하는 하나의 생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속에는 천문학적 숫자의 미생물이 서식하며 음식물을 분해하고, 면역을 조절하며, 몸의 대사를 돕습니다. 그런데 이 생태계의 핵심 구성원인 미생물 가운데 상당수는 지금까지 그 정체를 알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체외에서 배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장내 미생물 4600여 종의 장내 미생물 가운데 3000여 종은 그동안 미지의 영역에 남아 있었다.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팀의 대규모 군집 유전체 연구에서는 여기에 속하는 특정 박테리아 집단이 우리의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이미지=University of Cambridge)
 
안 보이던 영역 드러낸 메타게놈 분석
 
그런데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연구진은 39개국 1만 1115건의 장내 메타게놈(군집 유전체) 데이터를 통합한 대규모 분석을 했습니다. 그 결과 CAG-170이라는 이름을 붙인 새로운 세균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연구를 이끈 케임브리지 대학교 수의학과의 알레샨드르 알메이다(Alexandre Almeida) 박사는 전통 미생물학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그동안 연구는 ‘배양 가능한’ 세균에 집중됐습니다. 그러나 장내 세균의 다수는 실험실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연구진은 메타게놈학 기법을 이용해 장내에서 추출한 DNA를 통째로 분석하고, 그 유전체 정보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미생물 종을 구분해 냈습니다. 그 결과 4600종이 넘는 세균이 확인됐고, 3000종 이상은 이전에 보고된 적이 없는 세균이었습니다. CAG-170은 바로 이 ‘숨겨진 미생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39개국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건강한 사람들과 염증성 장질환, 비만, 대장암, 파킨슨병, 다발성경화증 등 13가지 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장내 미생물 구성을 비교한 결과는 놀라울 정도로 일관되게 나타났습니다. 
 
건강한 사람의 장에서는 CAG-170이 높은 비율로 발견된 반면, 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장에서는 그 수치가 낮게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국가, 인종, 식습관이 서로 달라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CAG-170이 특정 문화나 환경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 장내 생태계 전반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건강 신호일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연구진은 유전체 분석을 통해 CAG-170이라는 세균 집단이 수행하는 기능을 추정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세균들은 비타민 B12를 생산할 수 있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탄수화물과 식이섬유를 분해하는 다양한 효소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CAG-170이 생성하는 비타민 B12는 인간에게 직접 작용하기보다는 다른 장내 세균들의 활동을 돕는 데 사용될 가능성이 커, 이 세균 집단이 장내 생태계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조력자’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연구진은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CAG-170을 ‘건강의 후보 지표(candidate signature of health)’라고 표현했습니다.
 
불편한 질문, 프로바이오틱스는?
 
이 연구 결과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장내 유익균을 늘려 장내 환경을 개선하고 건강 유지에 좋다고 광고되고 있는 프로바이오틱스는 실제로 장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프로바이오틱스는 락토바실러스균(Lactobacillus)이나 비피도박테리움균(Bifidobacterium)처럼 수십 년 전부터 사용되어 온 소수의 균주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들 균주는 실험실에서 잘 배양되고, 안전성이 검증되어 있으며, 대량 생산이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건강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세균 집단은 현재의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중요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CAG-170은 아직 실험실에서 배양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섭취하는 유산균들이 장내 생태 환경의 핵심 요소라기보다 주변적인 요소일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연구를 이끈 알메이다 박사는 “프로바이오틱스 업계는 장내 미생물 연구의 발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여전히 ??수십 년 전에 사용되던 것과 같은 프로바이오틱스 균주를 쓰지만 최근 CAG-170과 같이 우리 건강과 중요한 연관성을 가진 새로운 박테리아 그룹이 발견되고 있다”며 “이러한 박테리아를 지원하는 프로바이오틱스는 훨씬 더 큰 건강상의 이점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오래된 균주를 반복적으로 소비하고 있을 뿐, 실제 장내 생태계를 좌우하는 세균을 겨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장내 생태계를 충분히 이해하기도 전에, 보충제부터 만들어 복용해 온 셈입니다.
 
케임브리지 대학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건강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장내 세균 집단은 현재의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이미지=게티이미지뱅크)
 
과제는 CAG-170 배양 기술
 
CAG-170의 발견은 장내 미생물을 바라보는 질문의 방향이 바뀌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연구진은 이 세균 집단을 활용해 장 건강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하고, 개인의 장내 환경에 맞춘 차세대 프로바이오틱스를 설계하며, 나아가 질병 위험을 조기에 예측하는 새로운 접근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가능성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CAG-170을 실험실에서 배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장내 미생물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건강의 핵심 열쇠가 그동안 관찰되지 않았던 세균 집단에 숨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서경주 객원기자 kjsuh57@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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