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앞둔 지난 12일 방문한 롯데마트 월드타워점에서 주부들이 장을 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뉴스토마토 이혜현·이수정 기자] 경기 불황에 차례 간소화 기조까지 겹치면서 유통업계에서는 명절 특수도 옛말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대체로 둔화하고 있는 양상이지만, 수입 농산물을 비롯한 원재료 가격 상승과 원화 약세는 수입단가를 올려 유통 단계에서 가격이 전가돼 체감 물가를 높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연간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2.3%로 둔화했지만, 올해 유통시장 성장률은 0.6%로 5년 내 최저 수준이고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은 -0.9%의 역성장이 전망된다는 통계청과 대한상공회의소 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올해 설 명절특수를 노렸던 유통가도 경기 한파에 직격탄을 맞은 모습입니다. 특히 과거와 달리 소비자들이 차례를 간소화하면서 대량 구매에 나서는 경우가 줄었고, 대형 온라인 플랫폼 확산으로 소비 분산돼 유통업계 명절특수는 시원치 않은 매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번 명절에는 장기 불황 속에 소비 양극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유통업계는 프리미엄 상품군과 가성비 상품군으로 나눠 다양한 소비층을 공략하며 매출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이 두드러졌습니다. 롯데·신세계·현대 백화점 3사는 고물가 시대에 맞춰 이른바 스몰럭셔리를 추구하는 고객층의 수요를 타깃으로 프리미엄 설 선물 라인업을 선보였죠. 지난달 9일부터 11일까지 현대백화점 매출을 살펴본 결과, 프리미엄 선물세트는 전년도 설 같은 판매 기간 대비 35.2% 신장했습니다.
롯데백화점은 명절 시즌 100만원 이상 구매하는 우량 고객 대상으로 특별 혜택 제공하는 '롯데 기프트 클럽'을 앞세워 명절 매출에 동력을 끌어올렸습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롯데 기프트 클럽 출시로 우량 고객 증가 및 매출 확대에 이르는 동반 상승 효과를 거뒀다"며 "론칭 첫 해인 지난 추석 기프트 기간의 전체 우량 고객의 수는 직전년 추석 대비 20% 이상 늘고, 우량 고객의 명절 매출 기여도 역시 역대 최대치인 60%대를 기록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지난 12일 방문한 롯데마트 월드타워점(사진=뉴스토마토)
'초고가 대 가성비'…유통가 '소비 양극화' 뚜렷
유통업계 불황에도 백화점은 프리미엄 고객 매출을 근간으로 실적 선방을 하고 있지만, 대형마트나 전통시장 분위기는 다릅니다. 설 연휴 대목임에도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모두 썰렁한 분위기를 보였습니다. 예년 같으면 제수용품을 사려는 소비자들로 붐볐을 시기지만, 올해는 장을 보는 사람보다 매대를 지키는 상인이 더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고 먹거리 물가가 큰 폭으로 오르면서 명절 특수마저 힘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설 연휴를 앞둔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 전통시장은 비교적 한산했습니다. 수십 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한 상인은 "예전에는 명절 전이면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이제는 평일 장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물가가 너무 올랐다는 손님들이 말에 최대한 가격을 올리지 않을려고 하다보니 마진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형마트는 가성비 중심으로 마케팅을 전개했지만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서울 송파구의 한 대형마트에서는 할인 행사와 선물세트 판촉이 한창이었지만 손님들의 발길은 뜸했습니다. 마트를 찾은 주부 A씨는 "체감상 가격이 두 배는 오른 것 같다"며 "명절 음식 재료를 한 번에 사기에는 부담이 커 필요한 것만 조금씩 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대형마트의 매출 비중은 최근 4년 새 5%포인트 넘게 줄었습니다. 산업통상자원부의 지난해 유통 업태별 매출 동향 자료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작년 유통 업태별 매출 비중 9.8%를 차지했다. 2021년 대형마트의 매출 비중은 15.1%에 달했지만 10%를 밑으로 떨어진 것은 처음입니다. 반면 온라인 매출 비중은 60%에 육박하며, 역대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온라인 소비가 늘면서 대형마트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내수 침체로 인한 소비패턴 변화"
경기 부진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과 먹거리 물가 고공행진 여파는 소비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고가품인 자동차 소비는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인 반면, 신발과 옷, 먹거리 등 생필품은 2022년부터 4년 연속 소비가 줄어 양극화가 소비 시장에서 두드러지고 있죠.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실질적인 체감 소비 지표를 뜻하는 승용차 제외 소매판매액은 전년 대비 0.7% 감소했습니다. 이수치는 0.4% 줄어든 2022년부터 4년 연속 감소한 것으로 2010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장기간 감소세입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내수 침체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종우 아주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는 "1%대 경제성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가성비 위주 소비패턴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명절에서 과한 선물은 줄이고 꼭 필요한 소비만 하는 추세"라며 "유통사들도 예전처럼 명절 특수를 노리긴 어려워지면서 소비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행사를 통해 매출을 방어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다만 이런 일회성 프로모션은 비용을 흡수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이익이 나기는 어렵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규모가 작을수록 불황을 체감하는 강도가 훨씬 높아지는 양극화 현상도 짙어질 것이란 진단도 나옵니다. 장준수 비즈니스컨설턴트는 "예전에는 100억대 흑자를 내던 기업도 최근 이익률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며 "현장에선 코로나19와 같은 특정 이슈가 아니라, 지금은 출구가 없는 침체 국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모양새"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대기업은 포트폴리오 재편 등으로 방어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자영업처럼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이런 변화에 방어가 잘 안되는 상황"이라며 "일각에 경기 선행 지표인 주식시장이 좋아지고 있어 내수도 올라가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나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부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혜현 기자 hyun@etomato.com
이수정 기자 lsj5986@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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