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경영을 찾아서)비본느 강과 '메제글리즈 쪽'의 디커플링[전략]
관계의 총체성으로 쓰는 프루스트의 비즈니스 서사
(제4회)1부 스완네 집 쪽으로 3화
2026-02-24 15:27:48 2026-02-24 16:56:44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요 공간 콩브레는 화자가 태어난 곳이 아니지만, 그의 정신적 근원이자 정체성이 형성된 정서적 고향이다. 콩브레에서 어린 날의 화자가 결코 양립할 수 없다고 믿은 두 개의 산책길이 있다. 하나는 스완네 집을 지나는 '메제글리즈 쪽'이고, 다른 하나는 비본느 강을 따라 걷는 '게르망트 쪽'이다. 화자에게 이 두 길은 지리적으로 방향이 다른 산책로란 의미에 그치지 않았다. 서로 다른 풍광, 나아가 서로 다른 우주를 품은 분리된 실체였다.
 
"그 두 '길'은 서로에게 알려져 있지 않았고, 우리는 밖으로 나갈 때 두 쪽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 '메제글리즈 쪽'과 '게르망트 쪽'은 내게 인생의 여러 작은 사건과 결부된 채로 남아 있다(Ces deux «côtés» ne nous étaient pas connus l'un par l'autre, et nous avions à choisir, en sortant, entre les deux côtés. (...) Le «côté de Méséglise» et le «côté de Guermantes» restent pour moi liés à bien des petits événements de la vie)."
—Marcel Proust,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Tome I, Du côté de chez Swann, Gallimard, Bibliothèque de la Pléiade, 1987, p. 133.
 
비본느 강의 모델이 된 루아르 강(le Loir). (사진=위키피디아)
 
두 갈래 길의 세계관: 감각의 사유와 권력의 풍경
 
경영 전략의 관점에서 이 두 갈래 길은 기업이 직면하는 '사업 포트폴리오의 분리'와 '가치 사슬의 해체', 즉 디커플링(Decoupling)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다. 기업은 성장 과정에서 관성적으로 많은 길을 연결하려 하지만, 때로는 고객의 진정한 편익과 기업의 가치를 위해 결합된 기존 사슬을 끊어내고(Decouple), 자신만의 핵심적인 '산책길'을 재정의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프루스트가 묘사한 두 길은 인간이 세상을 대하는 두 가지 근본적인 태도를 상징한다. '메제글리즈 쪽(스완네 집 쪽)'은 개인적이고 감각적인 기억의 세계다. 비가 내린 뒤의 흙내음, 만개한 라일락의 향기, 그리고 이웃인 스완과 그의 아내 오데트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부르주아적 삶의 평온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은 인간의 내면적 진실과 개별적인 정서가 흐르는 감정의 가치 사슬이다.
 
반면 '게르망트 쪽'은 사회적 야망과 권력의 세계다. 비본느 강을 따라 펼쳐지는 웅장한 자연과 그 너머에 군림하는 게르망트 가문의 귀족적 위계질서가 지배한다. 이곳은 사회적 관계와 명성, 거시적인 시스템이 작동하는 권력의 가치 사슬이다. 화자에게 이 두 길은 결코 섞일 수 없는 평행선이었으며,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곧 다른 하나의 세계를 포기하는 전략적 결단을 의미했다.
 
번들링의 시대: 메제글리즈 쪽의 안온한 관성
 
과거의 비즈니스모델은 제조부터 유통, 서비스까지 하나의 거대한 사슬로 묶여 있었다. 경영학에서 번들링(Bundling)이라 부르는 것이다. 기업은 제품의 기능뿐 아니라 구매, 배송, AS까지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고객에게 제공했다. 소설에서 콩브레의 화자 가족이 매번 '메제글리즈 쪽'을 택할 때 그 길이 제공하는 익숙한 풍경 전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모습과 닮았다.
 
번들링은 기업에 높은 수익성과 고객 락인(Lock-in) 효과를 제공한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 시대의 고객은 더 이상 기업이 정해놓은 전체 경로를 따라 걸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구간만을 선택해 걷고 싶어 하며, 불필요한 비용을 지불하길 거부한다.
 
많은 기업이 실패하는 지점은 현대 경영 전략의 대부 마이클 포터가 말한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에 빠질 때이다. 포터는 1980년 저서 『경쟁 전략(Competitive Strategy)』에서 명확한 전략적 선택을 내리지 못한 기업을 '중간에 낀 상태(Stuck in the Middle)'라고 정의했다.
 
"전략이란 경쟁에서 상충 관계(Trade-off)를 만드는 것이다. 전략의 본질은 무엇을 하지 않을지(What not to do)를 선택하는 데 있다(Strategy is about making trade-offs in competing. The essence of strategy is choosing what not to do)." 
—Michael E. Porter, "What is Strategy?", Harvard Business Review, Nov-Dec 1996, p. 68.
 
경영자는 흔히 '시너지'라는 명분 아래 '메제글리즈 쪽'의 안온함과 '게르망트 쪽'의 화려함을 동시에 취하려 한다. 저가 경쟁력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고품질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포터는 이러한 모호함이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고객에게 혼란을 준다고 경고했다. 프루스트 소설의 화자가 두 길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 갈지 고뇌했듯, 기업은 반드시 하나의 '산책길'을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포터의 지적대로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기업은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한다.
 
여기서 마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디커플링이 두 길 사이의 선택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혁신은 선택한 길 내부에서도 일어난다. 화자의 가족이 '메제글리즈 쪽'을 걸으며 습관적으로 향유하던 그 안온한 풍경 속에서도, 화자는 자신만의 특정한 감각, 예컨대 붉은 꽃의 향기나 빗방울의 감촉만을 따로 떼어내어 깊이 응시한다.
 
경영의 관점에서 볼 때, 화자의 이러한 태도는 메제글리즈라는 익숙한 비즈니스모델(번들) 안에서 고객이 진정으로 가치를 느끼는 핵심 구간을 분리해 내는 내부적 디커플링의 과정이다. 기업은 '게르망트 쪽'과 '메제글리즈 쪽' 사이에서 "무엇을 하지 않을지(What not to do)"를 선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의 익숙한 길 '메제글리즈 쪽' 안에서도 켜켜이 쌓인 불필요한 관습과 비용의 사슬을 끊어내고, 고객에게 순수한 가치의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미시적 차원에서도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번들링은 기업에 높은 수익성을 제공할지 모르나, 세분화한 욕구를 가진 현대의 고객은 이제 메제글리즈라는 전체 패키지가 아닌, 그 길 위에서 만난 산사나무 빛깔과 라일락 향기만을 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전통적인 가치 사슬을 끊어내 성공한 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건물 위에 넷플릭스 간판이 걸려 있고, 멀리 할리우드 사인이 보인다. (사진=뉴시스)
 
가치 사슬의 창조적 파괴와 디커플링
 
하버드 경영대학원 탈레스 테이셰이라(Thales Teixeira) 교수는 『디커플링』(2019년)에서 파괴적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고객으로부터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디커플링은 고객이 제품을 인지하고, 비교하고, 구매하고, 사용하는 전체 가치 사슬(Customer Value Chain) 중 기업이 특정 단계만을 분리해 장악하는 전략이다. 예컨대 인지(Awareness), 탐색(Search), 비교(Compare), 선택(Choose), 구매(Purchase), 사용(Use), 유지·관리(Service), 폐기·처분(Dispose), 공유·추천(Share) 등의 한 단계를 떼어내어 집중할 수 있다. 포터의 생각보다 한 단계 더 나간 전략이다.
 
중요한 발상의 전환은 커플링과 디커플링을 동시에 파악하는 데에 있다. 기존 시장이 우리 상품을 구매하면 반드시 우리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는 커플링의 관계였다면, 디커플링은 이 연결 고리를 끊어 고객이 구매와 사용을 서로 다른 곳에서 하도록 유도한다. 기업이 원해서라기보다 앞서 지적했듯, 고객이 필요해서이다.
 
전통적인 유선 방송사가 묶어 놓은 '콘텐츠 제작-편성-송출'의 사슬을 끊어낸 넷플릭스가 대표적이다. 그 결과 고객이 광고를 보는 시간과 콘텐츠 즐기는 시간 사이의 커플링을 완전히 해제하며 넷플릭스는 전 세계 수억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거대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우버 역시 자동차의 소유와 이동 사이의 커플링을 파괴했다. 기존 자동차산업이 차를 사야 이동할 수 있다는 관성에 묶여 있었다면, 우버는 오직 이동 구간만을 떼어내 특화했다. 소설로 치면 우버는 '메제글리즈 쪽'에서 화자가 매혹된 산사나무이다.
 
수련이 떠 있는 비본느 강
 
비본느 강 쪽의 산책길에서 화자는 강물 위에 떠 있는 수련을 관찰한다. 수련은 흐르는 강물에 밀려 떠내려가려다가도 뿌리에 이끌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강물은 그것들을 한쪽 기슭으로 밀어붙였으나, 그것들은 다시 가운데로 되돌아오기 위해 출발하곤 했다. (...) 마치 산책이 목적 없는 동요에 불과한 저 불행한 사람들처럼(Le courant les poussait contre une rive, elles en repartaient pour revenir au milieu, comme des malheureux dont la promenade est une agitation sans but)."
Ibid., p. 167.
 
이 수련의 모습은 변화하는 시장 흐름 속에서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뿌리와 줄기)에 묶여 고통받는 기업의 초상이다. 혁신은 이 단단하고 질긴 줄기를 끊어내고 새로운 물길을 타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사업 포트폴리오의 재구성은 단순히 숫자를 조정하는 작업이 아니라, 기업을 옥죄고 있는 낡은 줄기를 찾아내 절단하는 실존적 작업이다. 고통스러운 작업이기도 하다. 결국 어떤 고통을 선택하느냐의 문제가 된다.
 
경영의 역설은 디커플링이 무한정 '디(De)'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분해하고 연결을 끊어 새로운 가치를 찾아냈다면, '디(De)'는 '리(Re)'로 격상될 수 있다. 그 조각들을 다시 모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기회가 열린다. 리커플링(Recoupling)이다.
 
최근의 토스, 카카오페이 등과 같은 금융 슈퍼앱은 흥미로운 리커플링 사례이다. 과거 고객이 송금, 증권, 보험으로 파편화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각기 다른 앱을 전전했다면, 이 슈퍼앱은 디커플링된 금융 서비스들을 사용자 경험이라는 하나의 줄기로 다시 엮어냈다. 고객은 이제 하나의 접점에서 모든 금융 욕구를 해결하며, 하나의 문맥 안에서 리커플링을 만나 그 가치를 누린다.
 
[안치용의 Critique: 지도의 환상을 버려라]
 
경영자는 종종 책상 위에 놓인 완벽한 포트폴리오 지도에 취하곤 한다. 무슨 매트릭스 같은 도구들은 사업을 깔끔한 칸에 몰아넣지만, 그 칸들 사이의 살아있는 역동성까지 담아내지는 못한다.
 
프루스트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길은 걷는 자의 감각 속에서만 실재한다는 사실이다. 화자는 나중에 이 두 산책길이 사실은 연결돼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깨달음은 지도를 보고 얻은 것이 아니었다.
 
지금 당신의 기업이 걷고 있는 길을 점검하라. 혹시 메제글리즈의 관습과 게르망트의 환상이 뒤섞인 전략적 모호성의 늪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를 살펴보자. 전략가는 모든 길을 가려고 하지 않는다. 전략의 본질은 '무엇을 하지 않을지(What not to do)'를 선택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동시에 '무엇을 하지 않을지(What not to do)'를 선택하는 것이 항상 올바른 전략이 아님 또한 기억해야 한다.
 
'무엇을 할지(What to do)'를 선택하는 것 또한 전략의 본질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What not to do)'를 선택하는 것 또한 '무엇을 할지(What to do)'를 선택하는 행위이니까. 결국 본질은 길이 아니라 산책 자체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길은 산책자에 복속할 수밖에 없으므로. 
 
안치용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겸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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