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의 책상은 온통 숫자의 성벽에 둘러싸여 있다. 매출액, 영업이익률, 투자수익률(ROI), 그리고 최근 더해진 탄소 배출량과 ESG 평가 지수까지. 이 숫자들이 기업의 모든 진실을 말해준다고 믿으며, 매일 아침 대시보드의 파란색과 빨간색 숫자에 일희일비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이 견고한 성벽 뒤에서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보지 못한 채 유폐된 상태인 것은 아닐까.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일찍이 "경영은 인간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통찰처럼 경영의 과업은 단순히 지표를 관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들이 공동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그들의 강점을 결합하고 약점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인문학적 실천'이다. 숫자는 결과일 뿐, 그 결과를 만들어낸 원인과 과정은 살아있는 인간의 욕망, 관계,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영은 숫자가 아니라 관계의 총체성이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집요하게 찾아 헤맨 '되찾은 시간'을 경영의 언어로 번역하면 '지속가능성'이다. (이미지=민음사)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뜻밖의 가이드를 호출할 수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다. 4차 산업혁명의 거대한 파고와 기후위기의 절박함 속에서, 왜 하필 침대 위에서 글만 썼던 100년 전의 병약한 소설가일까. 그 답은 현대 경영이 직면한 한계, 즉 환원주의의 덫을 깨뜨릴 총체성의 열쇠가 그의 텍스트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와 AI시대, 잃어버린 경영의 본질
우선 시간의 개념부터 재해석해야 한다. 현대 경영은 테일러주의 이후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에 갇혀 있다. 1분기, 반기, 회계연도라는 인위적인 구획이 경영자의 시야를 차단한다.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는 명제하에, 분기별 실적과 생산 속도라는 정량적 시간의 노예가 되었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분기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시간 감각을 요구한다. 탄소는 회계연도가 끝나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대기 중에 축적되며, 기업의 평판은 단기 성과가 아니라 오랜 시간 쌓아온 브랜드의 서사에 의해 결정된다.
프루스트는 시간을 흘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융해돼 축적되는 '지속(Durée)'으로 파악했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이 잃어버린 콩브레 마을 전체를 생생하게 소환하듯, 기업의 현재는 과거의 모든 의사결정, 조직 문화, 실패와 성공의 유산(Heritage)이 압축돼 폭발적으로 발현하는 순간이다. 단기 이익을 위해 미래를 저당 잡히는 경영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프루스트가 그토록 집요하게 찾아 헤맨 '되찾은 시간'을 경영의 언어로 번역하면 '지속가능성'이다. 기업의 역사를 단절된 재무제표의 합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질적인 시간, 즉 '카이로스'로 인식할 때 비로소 진정한 지속가능경영 혹은 ESG경영이 시작한다.
이러한 시간의 재해석은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의 조직론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AI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체하고 알고리즘이 최적의 효율을 계산해내는 시대에 인간 경영자와 노동자,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철학자 질 들뢰즈가 프루스트를 독해하며 길어 올린 '차이와 반복'의 개념을 경영의 새로운 좌표로 삼아야 한다.
차이와 반복
대부분의 기업은 벤치마킹과 표준화라는 이름으로 타사의 성공을 복제한다. 들뢰즈라면 이것을 차이를 생성하지 못하는 '벌거벗은 반복'이라 불렀을 것이다. 벌거벗은 반복은 바닥없는 가격 경쟁과 레드오션이라는 죽음의 나선으로 이어진다. 효율을 추구하되 남들과 똑같이 효율적인 기업은 결국 AI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AI야말로 벌거벗은 반복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수행하는 가장 완벽한 기계이기 때문이다.
프루스트의 예술 작업처럼 반복하되 매번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작업을 들뢰즈는 '옷 입은 반복'이라고 불렀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사랑, 질투, 사교계의 욕망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서술하지만, 그 반복 속에서 매번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고 조금씩 진실의 조각을 포착해 독자에게 보여준다. 기업이라면 이런 작업을 혁신이라고 부를 터이다.
현대 조직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성(Becoming)의 과정이어야 한다. 현대의 브랜딩은 제품(원본)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욕망하는 새로운 현실(시뮬라크르)을 창조하는 끊임없는 과정이다. 스타벅스는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제3의 공간이라는 문화를 팔고, 나이키는 신발이 아니라 승리의 서사를 판다.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원본보다 더 강력한 실재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반복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애자일(Agile) 조직의 핵심은 반복 그 자체가 아니라, 반복을 통해 '차이'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AI가 평균을 지향할 때, 좋은 경영자는 데이터 너머의 고유한 특이점을 지향한다. 같은 길에서 남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것. 이것이 들뢰즈가 프루스트의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건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업 생존 전략이다.
들뢰즈는 자신의 대표작 『차이와 반복』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소환한 데 그치지 않고 아예 『프루스트와 기호들』이란 책을 썼을 정도로 프루스트를 천착했다. 국내에 많은 독자를 갖고 있는 알랭 드 보통 또한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을 통해 프루스트식 회복탄력성을 말한다. 프루스트가 자신의 신경쇠약과 실연의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그것을 진실을 발견하는 도구로 삼았음에 주목한 보통의 관점은 기업 경영에선 보편적 일상이다.
기업의 가치는 재무제표에 찍힌 숫자가 아니라 무수한 타자와 형성하는 관계의 총체적 인식 속에서 실현된다. (이미지=픽사베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사람들은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는 스티브 잡스의 말은 널리 인용되는 경구이지만 오독의 가능성을 포함한다. 경영은 결코 무엇 하나로 환원될 수 없다. 프루스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인간이나 사물을 단 하나의 수치나 이름으로 환원하려는 모든 시도에 우아하지만 단호하게 반격한다. 그는 "우리의 사회적 인격은 타인들의 사고가 만들어낸 창조물이다"라고 말했다. 이 문장은 현대 경영의 핵심인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기업의 가치는 재무제표에 찍힌 종이 위의 숫자가 아니다. 고객, 직원, 협력사, 지역사회, 그리고 미래 세대라는 무수한 타자와 형성하는 관계의 총체적 인식 속에서 실현된다. 기업을 오직 수익이라는 단일 숫자로 환원해 보는 것은 프루스트가 비판한 지성의 게으름에 속한다.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기까지" 작동하는 것이 절대 게으른 경영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연재는 프루스트가 구축한 '총체적 소설'의 형식을 빌려, 기업의 생애주기에 맞춘 현대 경영의 핵심 현안을 탐구한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이 잊혔던 전 생애를 불러일으키듯, 이 여정을 통해 단기 실적의 압박 속에 잃어버린 경영의 본질을 하나씩 되찾을 생각이다. AI는 결코 길어 올릴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암묵지, 즉 관계의 총체성을 통해 기업의 영속성을 모색하려는 실용적인 탐색을 수행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을 이 여정에 초대한다.
안치용 ESG비즈니스리뷰 발행인 겸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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