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희 기자] 중동 리스크 확산으로 은행권 달러 예금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습니다.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에서 발을 빼고 대표적 안전자산인 달러로 자금을 옮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달러 예금 잔액은 2월 말 기준 658억4336만달러를 기록했습니다. 1월 말 656억7440만달러에서 한 달 새 1억6896만달러 증가했습니다.
달러 예금은 원·달러 환율이 연초부터 가파르게 오르면서 급증한 바 있습니다. 원·달러 환율은 새해 첫 거래일인 2일 1441.8원으로 주간 거래를 마쳤다가 정부의 구두개입과 안정화 조치를 거치며 같은 달 30일에는 1439.2원으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이후 1400원대 중반을 웃도는 흐름을 이어가다 2월25일에는 1429.4원으로 올해 들어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중동 사태가 발발한 이후 4일 기준 1485.7원까지 상승했습니다.
달러 예금도 비슷한 추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1월 초 기준 5대 은행 달러 예금 잔액은 671억1000만달러로 전월 대비 68억달러 넘게 불어났습니다.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자 개인과 기업 자금이 대거 유입된 영향입니다.
하지만 이후 정부가 외화 상품에 개인 자금이 몰려 소비자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우려하자 은행들이 금리 혜택을 없애고 마케팅을 자제하면서 1월 말부터 2월 중순까지는 감소세가 이어졌습니다. 실제 5대 은행 달러 예금 잔액은 약 656억7500만달러 수준까지 줄며 한 달 사이 약 15억1800만달러가 빠져나간 셈입니다. 단기 차익을 노린 자금과 환율이 안정될 것이라는 전망에 일부 자금이 이탈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러나 중동 정세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졌습니다. 코스피가 급락하고 국제유가가 뛰는 등 위험회피 심리가 확산되자 달러 수요도 덩달아 증가하는 모습입니다.
달러화는 전통적으로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서 강세를 보여왔습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불확실성이 커질 때 유동성이 풍부한 달러 자산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도 국제 정세 불안과 함께 미 국채금리가 상승 압력을 받으면서 달러 강세 흐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내 투자자들 역시 자산 방어 차원에서 달러 예금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달러 예금은 환차익과 이자수익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어 대표적인 외화 안전자산으로 꼽힙니다. 특히 환율이 추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올 경우 대기성 자금이 빠르게 유입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시장에서는 중동 사태의 전개 방향에 따라 달러 예금 증가세가 한층 가팔라질 가능성도 제기합니다. 이란 차기 지도자 선출과 미국의 대응 수위에 따라 군사적 긴장이 장기화될 경우 환율 변동성이 다시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입니다.
다만 달러 예금은 환율 하락 시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단기 변동성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환차익 기대만으로 접근하기보다는 포트폴리오 분산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최근처럼 지정학적 변수에 따라 환율이 급등락하는 국면에서는 추격 매수에 나설 경우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면서 "전체 자산의 일부를 외화로 나눠 담는 전략이 보다 안정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연초 달러 예금 수요가 급증하다 한 차례 조정을 거쳤지만 전쟁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달러를 찾는 수요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면서 "중동 정세가 안정되지 않는다면 1월 초 수준을 넘어서는 잔액 확대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중동발 전쟁 리스크가 확산되면서 은행권 달러 예금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습니다. 사진은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이재희 기자 nowhe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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